어느새 교재 하나를 배우는 과정이 끝났다. 온라인 불교 대학의 전체 교과목이 크게 4개로 나뉘어 있고, 그중 하나를 마쳤으니 1/4 정도를 마친 셈이다. 온라인 불교대학은 작년 11월에 시작해서 아직 한창이지만 한국은 지금 한창 불교대학 입학 신청을 받고 있다는 소식도 들렸다. 한국에 있었을 때 왜 진작 듣지 못했나 하는 후회가 여러 번 될 정도로, 심지어 매주 금요일 저녁이 기다려질 만큼 이 수업이 참 좋다. 불교대학 수업을 듣기 전에 금요일 저녁은 오히려 외로웠다. 내가 좋아서 집에 있는 것임에도, '다른 사람들은 모두 불금이라고 친구들을 만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겠지.' 하는 생각에 상대적 외로움을 스스로 만들어내며 마음앓이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매주 금요일 새로운 것을 배우고 수행 과제를 얻고, 또 그 과제를 한 주 내내 실천하며 느끼는 바들을 서로 공유한다. 제대로 하는 날도 있고, 못하는 날도 있고, 심드렁한 날도 있고, 감명 깊은 날들도 있지만 한 뼘 더 행복한 날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은 분명하다.
크게 한 과목이 끝날 때마다 다음 과목이 시작되기 전에 특별수업이 들어가 있는데 오늘이 그 날이었다.
오늘의 주제는 '복지'.
지금까지는, 아니 사실 법륜스님이 '복지'에 설명하시기 전까지 나에게 '복지'하면 떠오르는 건 '회사의 복지'였다. (창-피-) 언젠가 대한민국이 좀 더 행복해지는데 기여하고 싶다고 생각했으면서도 복지에 대해 생각하지 못한 내 어리석음에 또 한 번 깨달음이 온다.
복지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이 없겠지만, 오늘 나는 조금 다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복지라는 것은 결국 나누려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 나누는 마음은 내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생기는 법인데, 우리는 그러기엔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살아간다. 이 바쁘게 돌아가는 한국 사회를 생각하니 갑자기 오래된 추억의 게임 하나가 생각이 난다. 옛날 국민 프로그램이었던 가족오락관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볼거리는 시한폭탄을 들고 하는 게임들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풍선이나 폭탄을 손에 들고 벌벌 떨면서 게임을 진행하는 모습들이 가족오락관을 보는 묘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왠지 그 모습이 마음의 여유가 없이 사는 현대인의 모습 같다는 생각도 든다. 빨리빨리 해치우고 상대에게 바통을 넘기지 않으면 결국 내 앞에서 터져버린다. 어쩔 땐 그 폭탄이 대표에서 말단 직원으로 전해지기도 하고, 어쩔 때는 말단 직원에서 대표로 전해지기도 한다. 어디서 터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긴장 속에 산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 폭탄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늘 치를 떠는 '스트레스'가 바로 그 폭탄이다.
어디 외딴섬에 가서 나 혼자 사는 게 아닌 이상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결국 혼자 살 수 없고, 내가 사는 사회가 이렇게 치열한 사회인데, 스트레스를 어떻게 안 받고 살 수가 있을까. 내가 가장 싫어했던 말은 바로 한국 의사들의 '스트레스 때문이네요. 스트레스 너무 받지 마세요.'라는 말이었다.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아니 어떻게?'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의사 자신들도 못하는 일을 환자에게 저렇게 쉽게 말하고 진료비를 받는 다고 생각하니 어이가 없어 화가 치밀어 오른 적도 있었다. (지금은 아니에요.ㅎ)
그런데 오늘 불교대학에서 공유해준 영상 속에서 법륜 스님이 스치듯 말씀하신 이 한 마디가 내 생각을 180도 뒤집어 놓았다.
스트레스라는 건 '내가 옳다.'라고 생각할 때 받는 게 스트레스예요.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할 때는 스트레스가 없어져요.
나는 그동안 스트레스의 원인은 잡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부딪치는 온갖 사람과 일들 여기저기에서 랜덤으로 나를 덮쳐오는 스트레스의 원인이 그 수만큼 많을 텐데, 그 원인을 해결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저 스트레스를 잘 푸는 방법에만 집중했었다. 하지만 스님의 이 말씀을 듣고 보니 의외로 간단한 방법이 있었구나, 하고 무릎이 탁 쳐졌다.
내가 스트레스받는 상황들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 상황들을 한 꺼풀 벗겨 더 아래를 들여다보면 결국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내가 있다.
'상사가 내가 올린 기획서에 반대할 때'
: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이 치열한 경쟁 시장에서 누구의 의견이 옳고 그른지는 사실 알 수 없는 것이다. 그저 내 뜻에 반대되는 의견이라 스트레스를 받는다.
'상사가 갑자기 말도 안 되게 일을 던져줄 때. 마감 시한이 너무 촉박하거나,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거나'
: 내 생각에 '말도 안 된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리고 내가 싫으면 싫다고 '말을 못 해서' 시키는 대로 따를 것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정말 말도 안 되게 매일 업무가 진행되는 곳이라면 내가 나오면 되고, 그게 아니라면 개선안을 서로 논의하면 되는데, 나는 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시키는 대로 하면서 스트레스만 받았다. 그것도 결국은 나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동료 및 부하 직원이 내가 시킨 일을 제때 처리하지 않았을 때'
: 내 생각대로면 이때쯤 이 일이 완료돼야 하는데 안 돼있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결국 '내' 생각이다.
'남자 친구가 나를 위한답시고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다 사고 쳤을 때'
: 깜짝 선물이라고 거금을 들여 선물을 사 왔는데 내 취향도 아닌데 돈은 바가지를 썼는지 비싸게 내고 왔다. 고마운 마음보다는 스트레스가 먼저 온다. 그것도 그냥 그 결과물이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짜증 나고 스트레스받는다. 나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 했던 그 마음을 먼저 헤아렸다면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았겠지.
'아이가 말도 안 듣고 제멋대로 일 때'
: 그게 아이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아이의 입장에선 그것이 재밌고 신나는 일이지만, 내 입장이기 때문에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게 될 때가 생긴다.
모든 것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대부분의 것들이 '내가 옳고', '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옳다는 마음을 낮추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더 나아가 스트레스를 받는 원인 자체를 개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건 법륜 스님이 스트레스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어떤 분이 '왜 108배를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해서 그 답변을 하다가 나온 이야기였다. 절을 하면 전신 운동의 효과도 있고, 무의식을 개선하는 효과도 있고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효과도 있다며, '스트레스 해소'에서 스치 듯 나온 이야기였다.
이해를 받으려고 하면 스트레스를 받고 이해를 하려고 하면 스트레스를 안 받아요.
<왜 108배를 해야 하나요? 법륜 스님의 희망 세상 만들기 영상 중>
절이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는 것도 처음 알았지만, (게다가 나는 스트레스 원인 제거의 가능성도 내포되어 있다고 본다) 이게 종교적인 의식이 아니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절은 그저 기독교에서 하는 기도처럼 일종의 종교적인 의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저 나를 낮추는 행위였다.
간단한 예도 나오는데, 이게 참 명쾌하다.
친구와 내가 누워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그런데 친구랑 의견 다툼이 생겨서 말싸움으로 번졌다.
그럼 우리는 일어나서 앉을까, 아니면 계속 누워있을까?
보통은 일어나서 자세를 고쳐 앉고 언쟁을 계속 이어나갈 것이다.
그 언쟁이 점점 더 심해지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것이고, 그래도 끝나지 않으면 고개를 빳빳이 들고 몸을 부풀리며 자신의 말이 맞다고 언성이 더욱 높아지게 된다.
하지만 내가 잘못한 경우는 어떤가?
일단 시선이 아래로 내려간다. 고개를 숙인다. 잘못한 강도가 셀수록 허리를 숙이거나, 무릎을 꿇거나, 머리를 조아리게 된다.
우리 몸의 이런 동작들은 우리 마음을 나타내는 거울인 것이다.
진심으로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사람한테 돈 1억을 준다고 해도 쉽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을 것이다.
거꾸로 정말로 사죄하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나서서 허리를 숙일 것이다.
그래서 거꾸로 그 감정이 들기 전에 내가 내 몸을 스스로 낮춤으로써 스스로를 겸손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사죄하는 마음을 내면서 절을 해야 하지?'라고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절을 하면서 내 몸을 완전히 낮춤으로써 나는 내 마음이 들고 있던 시한폭탄을 내려놓을 수 있다. 내 온몸이 바닥에 붙어 있으니 이 폭탄을 들고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더 이상 이 폭탄을 내가 가지고 있지도, 또 남에게 던져주지도 않을 것이고, 그럼 이 폭탄이 내 앞에서 터질 일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터지게 해서 상처 줄 일도 없어진다.
돈도 들지 않고 건강에도 좋은 스트레스 해소법, 내일부터 작게 21배부터 다시 새롭게 시작해 봐야겠다.
<내 랜선 스승님은 법륜스님>
이 매거진은 '정토회 불교대학 온라인 수업'을 들으면서 생기는 에피소드, 느낀 점 등을 적은 에세이 매거진입니다. 종교 없이 평생을 살아왔고 불교에 대한 지식은 거의 전무한, 말 그대로 불교 신입생의 입장에서 온라인 불교대학을 경험하면서 느끼는 생각, 법륜스님의 강의를 통해 느낀 점, 함께 공부하는 분들에게서 배우는 점 등 제 생각이 미치는 모든 것을 써내려 갑니다.
※ 에세이에 담긴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법륜스님이나 정토회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정토불교대학 행정처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 최대한 검토해서 올리고 있지만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을 경우 언제든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 글: 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