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부처님은 출가를 하고
나는 퇴사를 했다.

by 노이의 유럽일기




요즘 법륜스님의 온라인 불교대학 이야기가 뜸했다. 그렇다고 공부에 소홀한 것은 절대 아니다. 배울수록 생각이 많아지고, 많아지는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는 날들이 쌓이면서 쉽사리 글을 쓸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떤 날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글을 쓰려고 억지로 생각을 끄집어내는 건 아닐까?' 또는 '사람들에게 멋진 생각을 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마치 난 대단한 걸 오늘 깨달았다고 보이고 싶어 하는 욕구는 아닐까?'

그리고 모든 걸 탁 내려놓았다.



'아 내가 또 너무 힘을 주고 있었구나.'




그래서 오늘은 아주 가볍게라도 이야기를 나누어보려고 한다. 요즘은 부처님의 일생에 대해서 배우고 있다. 오늘은 부처님이 어떻게 태어났고, 왜 출가를 결심했으며, 어떤 과정으로 출가를 하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배웠다. 수업이 끝나고 서로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을 한 문장씩 적고 그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나누었는데, 그 내용을 공유하려고 한다.






하나. 물은 셀프, 퇴사도 셀프




"부처님은 처음으로 궁을 떠나 노예의 삶을 살펴보고는 큰 의문을 가집니다. 하나가 행복하기 위해서 하나가 불행하고, 하나가 풍요롭기 위해서는 하나가 빈곤하고, 하나가 편리하기 위해서는 하나가 불편한 현실. 왜 그래야 하는 걸까. 왜 다 함께 살고, 다 함께 행복하고, 다 함께 풍요로울 수 없는 걸까? 이런 큰 의문을 가지며 출가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런 경쟁하는 사회, 약육강식의 사회를 사람들은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거기에 의문을 가지고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출가를 했습니다.


부처님이 바라본 사회는 지금으로부터 약 2천5백 년도 전의 인도의 모습인데, 어쩜 현대 사회가 당연한 듯 떠오르는 것인지, 일단 가장 첫 번째로 든 생각은 씁쓸함이었어요. 어쨌든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사회는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약육강식이다. 그걸 바꿀 수는 없다. 그래도 저는 그런 사회가 싫었어요. 내가 잘되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상대를 밟는 회사 정치를 이해하지 못했죠. 무엇보다 그런 환경에서 출세도 하고 싶지 않았고, 나에게 의미 없는 경쟁을 위해 내 몸을 혹사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퇴사를 했습니다. 부처님에 대해 배우기 전, 불교에 대해서도 배우기 한참 전 일입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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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직도 세속의 즐거움을 너무 사랑하는 중생이에요. 하지만 내가 행복하기 위해 다른 누군가는 불행해지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아요. 나는 부처님 같은 성인이 아니니까 중생을 구제하는 것 까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나는 나를 구제했구나! 하고 왠지 모를 확신 같은 게 생겼어요. 잘했구나, 하고요.

(사실 퇴사라는 것이 큰 맘먹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와도, 나오고 나서도 늘 흔들리기 마련이거든요.)




그리고 지금 입사하고 퇴사하고 입사하고 퇴사했던 지난날들을 돌아보고 생각하면, 퇴사를 함으로 인해 조금 더 행복해지는 삶을 위해 한 걸음 내딛는 데에 있어서는 부처님의 구제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었던 것 같아요.

주위의 조언을 구할 필요도, 부모님의 허락을 구할 필요도 - 물론 벽에는 좀 부딪쳤지만 -, 친구나 선배에게 상담을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해도 좋지만 필수는 아니라는 거죠.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의 허락이었어요.

그리고 내가 해야만 하는 것.

누구도 책임져줄 수 없는 결정과 행동이기에, 사실 누군가에게 상담해도 그들도 조언을 하기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결국 퇴사는 셀프서비스 같아요."








둘. 스물아홉, 부처님은 출가를 하시고 나는 퇴사를 했다.





"제가 20대 후반이 다되어서 퇴사를 생각했을 때, 특히 아예 탈회사를, 탈직장인을 하겠다는 결정은 쉽지 않았어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의 뒤꽁무니 정도 겨우 찾은 것 같은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는 더더욱 힘들었어요. 무엇보다 '너무 늦은 거 아닐까?'라는 불안과 초조가 제 마음을 야금야금 갉아먹죠. 그런데 오늘 부처님이 열아홉에 출가를 결심하고, 스물아홉에 출가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왠지 모를 공감대(?)가 느껴졌어요. 물론 부처님은 이루고자 하는 뜻은 분명했죠. 하고자 하는 일이 그토록 확신했던, 그 운명을 위해 태어났던 성인조차도, 열아홉에 결심을 하고도 부모의 만류에 본인의 직분을 다하고자 노력한 후에 출가를 했어요. 왕이 되기 위한 공부도 하고, 큰 지역을 다스려 보기도 하고, 그렇게 왕자로서 아들로서의 직분을 다하려고 애쓰고, 부모님이 소개해준 여자와 결혼을 해 남편이 되어보기도 하고, 아들을 낳아 아버지가 되기도 해요. 그런데도 도저히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 출가를 한 거죠. 저는 솔직히 조금 위로가 됐어요. 왜냐면 오히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되고, 살고 싶은 삶을 살게 될수록, 제 과거가, 그러니까 부모님에게 착한 딸이 되려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좋은 학교, 좋은 회사를 쫓았던 과거의 시간들이 한심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거든요. 나는 왜 이걸 더 빨리 깨닫지 못했나 하고요. 그런데 부처님도 본인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보고 그래도 안돼서 출가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위로가 되더라고요. 나도 헛시간을 보낸 건 아니구나. 그리고 참 우연히도 제가 탈직장인 라이프를 결심하고 나온 가장 마지막 풀타임 잡 퇴사가 스물아홉, 부처님의 출가도 스물아홉!(이라고 끼워 맞춰 봅니다) 그러니 나는 늦은 게 아니었어!라고 스스로의 결정에 두 번째 확신이 들었어요. 심지어 부처님 살던 시절에는 스물아홉이라는 나이가 지금의 스물아홉보다 훨씬 많은 나이었을 테니까요."

















그나저나 가볍게 적으려고 했는데,

또,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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