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게 왜 없어요

by 노이의 유럽일기

회사를 다니지 않은지 오래 되면서 점점 날짜 감각이 사라진다. 오늘이 몇일인지 적어야 할 때면 늘 두번 확인을 해야한다. 맞은 적 보다 틀린 적이 더 많다. 사실은 시간 감각조차 잊고 싶다. 낮과 밤만 알면 되는 단순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 순간에 집중하다 보면 생각보다 날짜와 시간은 쉽게 잊혀진다. 더 나아가 내 나이까지도 말이다.



아무튼 오늘 아침 일어나서 눈을 뜨자마자 창밖에 보이는 새파란 하늘을 보고 기분은 좋았는데 의욕이 없다. 쌓인 일이 많을 수록 한시라도 더 빨리 움직여서 하나라도 빨리 끝내야 할 것 같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예를 들어 매일 매일 벽돌을 하나씩 날라서 한 달에 30개를 쌓기로 했는데, 오늘이 아닌 다른 날, 또 다른 날로 미루다가 또는 미뤄지다가 내가 옮겨야 할 벽돌이 300개쯤 밀려있으면 도무지 그 압박에 못이겨 벽돌을 보고 싶지조차 않게 된다. 어차피 내가 한 번에 할 수 있는 일은 하나 뿐. 한 번에 옮길 수 있는 벽돌은 한 개인데, 내 눈앞에 쌓인 벽돌이 1개냐, 300개냐가 이렇게 다르게 다가오다니 우습지 않은가.




마음의 위안을 받아볼까 하고 휘적휘적 인터넷을 뒤지다 위안이 되는 글을 하나 읽는다. 나처럼 혼자 일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자주 또 많이 새로 시작하는 일들을 실제로 돌아가게 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이런 '지연' 상태에 머무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불확실한 미래에서 오는 불안감, 과거의 한 켠에 쌓인 후회들. 하지만 오늘은 '과연 이 일을 계속 지속하고자 했을 때 내가 계속 해낼 수 있을까?'라는 마음이 더 컸다.




이럴 때일수록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다. 내 자신은 내 존재 자체만으로도 소중하다는 사실이다. 우리 집앞에 커다랗게 서있는 한 그루 나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아도 제일 중요한 일을 하고 있고) 살아있는 그 자체만으로 소중하듯이, 나 또한 그렇다. 만약 나무 하나가 인위적으로 잘려나가고 사라진다면, 미미할지라도 그 영향은 분명히 생태계에 미치게 되어있다. 아마존의 숲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그 말은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나무 한그루가 그러할진데 하물며 사람의 영향력은 어떨까? 살아있는 생명들 중에서도 꽤 많은 걸 할 수 있는 사람의 영향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내가 얼마나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지 내 소망 여부는 별개로 생각할 문제이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는 여기저기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주 작은 예를 들어 보자. 당신은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 있다. 덮고 있던 이불을 손으로 집어올려본다. 내가 손으로 잡아서 들어올림으로써 이 이불의 모양이 변했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이불이 움직였다.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사실은 그 아주 사소한 일은 다른 존재에게는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것들을 움직인다는 것. 우리가 가벼이 여겨왔던 움직임치고는 뜯어보면 꽤 굉장한 영향력이지 않은가?



또 다른 예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내가 다짜고짜 욕을 한다면 상대방은 어떨까?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이든 그 사람은 기분이 나쁠 가능성이 아주 높다. 내가 뱉은 말은 눈 앞에 보이지 않지만 다른 존재의 감정을 건드릴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저 ‘내 기분’에 따라 나오는대로 내뱉는 경우가 더 많은 건 아닌지 고민해 봐야 한다. 반대로 내가 내 친구에게 그 존재에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때 친구는 조금 오글거려 할지는 몰라도 분명 그 순간 좋은 기분을 느낄 것이다.



깨끗하고 지저분하고를 떠나서 내 방은 ‘내가 물건을 둔 대로’ 일정한 모습을 갖추고 있으며, 길 바닥에 버려진 담배 꽁초들은 그냥 저기에 버려진 담배 꽁초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영향력을 행사한 행동의 결과다. 이 모든 것은 어떤 존재의 영향력이다. 저절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태풍이 휘몰아치든 지진이 나든 평생 한 자리에서 살아야 하는 한 그루의 나무가 깨끗한 공기를 만들 때,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든 한 인간으로 태어난 내 손으로 나는 무엇을 만들고 싶을까? 인생의 방향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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