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오늘은 마음이 참 답답해.
아니 정확히는 어젯밤부터 그러네.
시작은 아무 것도 아니었어.
친구의 농담같은 한 마디가 어쩐지 서운한거야.
왜냐면 그 친구는 거짓말을 못하는 애라서 티가 다 나거든.
분명 농담인데 그 속에 걔 진심이 보이는 거야. 그동안 내 행동에 얘가 좀 귀찮았구나 깨달아지더라.
나는 걔가 좋아서 그랬던 건데...
알지, 내가 좋아하는 거라고 해서 다른 사람도 항상 좋아할 수는 없다는 거.
그래서 서운해도 심각하게 만들지 않고 가볍게 넘어가려 했는데...
근데, 나도 똑같잖아. 숨기기 싫은 건 거짓말을 잘 못해. 티가 다 났나봐.
작은 일 크게 만들지 말고 그만 자라는 그 친구의 말에 오히려 불이 확 지펴졌던 것 같아. 맞는 말인데 누구도 잘못한 게 없는 일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서글퍼졌어.
마치 누가 내 마음에 피다 만 담배꽁초를 버리고 간 기분이었어.
평소 같으면 그런 건 발로 비벼서 끄면 되는데, 하필 거기에 아무도 없었어.
내 마음의 문지기가 잠깐 어딜 좀 간 사이에 그게 떨어져서 불이 붙었나봐.
그래도 아주 작은 불씨라 괜찮을 줄 알았어.
그런데 그 뒤로 잠도 잘 안오고, 심장은 빠르게 쿵쾅거리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감정들이 하나 둘 나타났어.
친구의 말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으로 불똥이 튀었어.
또 다시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에 휩싸였어.
마음 속 문지기가 뒤늦게 돌아와서는 괜찮다, 괜찮다, 내 마음을 달래주었어.
예전같으면 끊임없이 불안에 온 몸을 떨다 잠도 제대로 못잤을텐데, 이제는 그러지는 않아.
그래서 다행히 잠은 잘자고 일어났는데 예상치 못한 일로 아침 일정이 꼬여버린거야.
갑자기 달리던 도로 한 가운데 길이 막혀서 브레이크를 밟고 선 것 같은 기분이었어.
우회할 길도 없이 뒤돌아서 다시 가라고 하는 거야. 막막해서 그냥 서있었지.
그러더니 마음이 또 답답한거야. 불이 타올라서 연기가 이 속에 꽉 찬 것 처럼.
그런데도 딱히 꼬집어서 무엇때문이라고 말하기 힘든 슬픔이라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더라구.
이제 어쩌나... 하고 있는데 갑자기 엄마가 매일 보내주는 부처님 말씀이 눈에 들어오더라.
사실은 엄마가 매일 매일 보내주는게 너무 고마우면서도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해서 읽는 날도 있고 안읽는 날도 있었어.
근데 오늘은 읽지도 않았는데, 그걸 보자마자 마음 속 문지기가 그러는 거야.
‘엄마, 오늘은 마음이 참 답답하네’
울컥 눈물이 고였어.
그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이 바싹 말라 있었나봐.
가을 산불이 순식간에 퍼지듯 내 마음도 그랬나봐.
분명 별거 아닌 정말 작은 불씨였는데.
마른 나무와 마른 풀만 가득한 내 마음 속에서 불이 화르륵 번지고 말았나봐.
그래서 그 불을 끄려고 눈물이 나나보다 했어.
있잖아 엄마,
살다 보면 잘 살고 있는 것 같다가 별 생각 없이 ‘엄마’ 이 두글자를 속으로 불렀을 때 눈물이 왈칵 쏟아질 때가 있어.
아빠도 그래.
내가 힘들면서 힘든지도 모르고 살고 있다가 엄마, 아빠를 부르면서 깨닫고는 해.
‘아, 나 지금 힘든 거구나.’
엄마는 참 대단해.
내 옆에 없어도 엄마라는 이름만으로도 나를 위로하나봐.
지금은 바깥 벤치에 앉아 있어.
그래서 펑펑 울고 있지는 않아.
나도 꽤 눈물을 참을 수 있는 어른이 되었나봐.
엄마는 내가 말을 안 해도 다 알지.
아빠도 내가 말을 안 해도 다 알지.
내가 언제 행복하고 언제 힘들고 언제 슬픈지.
하지만 이런 날은 몰랐으면 해.
당연히 이 편지는 엄마에게 보여주지 않을거야.
살면서 내가 한 번도 엄마한테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은 적은 없잖아.
앞으로도 난 엄마에게 힘든 이야기보다 좋은 이야기를 더 전하고 싶어.
그래도 엄마,
이렇게 글로라도 엄마에게 털어놓으니까 마음이 좀 한결 낫다.
사랑해요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