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웨이 1일 차
2016년, 내가 명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어느 모임에서였다. 그곳에서 누군가 추천해 준 아티스트 웨이(Artist's way, 저자 줄리아 카메론, 임지호 옮김)라는 책을 읽고 꽤 오랜 시간 동안 비정기적이지만, 꾸준하게 모닝 페이지라는 것을 쓰고 있다. 원서는 1992년에 처음으로 출간되었으며 한국어판은 그로부터 3년 뒤인 1995년에 출판되었다. 그러니까 올해로 만 28세가 되는 이 책은 거의 한 사람의 인생의 책이 무르익어가는 나이만큼 꾸준히 사람들에게 읽혀왔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 것일까. 함께 실천하는 모임들도 종종 눈에 띄었기에 이미 많이 알려진 책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막상 주위를 둘러보면 생각보다 이 책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이 보였다. 나는 이 책이 나처럼 힘들어하던 누군가에게 또 힘이 되리라 믿는다. 그래서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이 책이 말하는 모닝 페이지가 뭐고, 거기서 내가 얻는 구체적인 경험들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이 책을 요약하자면, 아티스트의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창조성을 찾아주고 개발하는 연습을 하도록 가이드가 적힌 실천형 자기 계발 도서이다. 하지만 꼭 아티스트가 아니라도 누구에게든 도움이 될 수 있는 힘을 가진 책이다. 나는 이 책을 2016년쯤 혼자서 읽고 12주 과정을 듬성듬성 따라 하다가 모닝 페이지라는 것이 썩 마음에 들어서 매일은 아니지만 나름 지금까지 꾸준히 쓰고 있다. 그러던 것이 아무래도 책 전체의 내용을 다시 한번 제대로 실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에는 아는 지인분과 함께 소규모 2인 그룹을 만들어서 함께 실천해 보기로 했다. 그러다 지인, 그러니까 H양이 약 5일 정도 모닝 페이지를 쓰면서 겪은 약간의 애로 사항을 토로하였고, 돌아보면 나도 그녀와 똑같은 생각과 과정을 거쳤기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작은 팁도 함께 남긴다.
우선 모닝 페이지라는 것의 콘셉트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멍한 상태면 더 좋다) 생각나는 대로 아무거나 3페이지를 쓰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공통적으로 고민했던 부분은 모닝 페이지가 '나의 아침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는다는 것'이었다. 모닝 페이지 외에 명상도 중요한 아침 일과 중 하나인데, 모닝 페이지를 쓰느라 기존에 하던 아침 활동이 지장을 받는 것이다. 내가 처음 모닝 페이지를 시작했을 때 미라클 모닝 (명상, 독서, 확언, 감사, 글쓰기 등...)도 같이 하고 있었는데 그것만 해도 최소 30분이 걸리기 때문에 나 또한 모닝 페이지를 쓰는데 소비되는 시간이 적잖이 부담이 되었다. 게다가 처음엔 멋도 모르고 일반 크기의 노트에 3페이지를 빼곡히 쓰려고 하다 보니 처음에는 모닝 페이지를 3페이지 쓰는데 1시간이나 걸리기도 했다. 예쁜 글씨도 포기하고 나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필기체로 써내려 가도 시간이 너무 빠듯할 정도였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방법을 택했다. 일단 노트의 크기를 줄였다. 우리가 흔히 아는 공책 사이즈에서 손바닥만 한 수첩으로 모닝 페이지를 쓰는 수첩을 바꿨다. 만약 작은 노트가 없다면, 페이지의 수를 줄였다. 3페이지가 아니라 1페이지 아니면 2페이지를 썼다. 그렇게 하면 대략 바쁠 때는 10-15분 내에, 여유 있을 때에도 30분 내에 모닝 페이지 쓰기를 마무리할 수가 있다. 또 아침에 내가 실천하는 모닝 루틴 중에 글쓰기와 겹치는 부분이 있으면 (예. 감사 일기 쓰기 등) 모닝 페이지를 쓸 때 같이 써버려도 괜찮다. 중요한 건 일단 쓰는 것이다. 처음에는 힘들어도 나중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내가 좋아서 30분 넘게, 3페이지 넘게 쓰게 되는 날도 오고는 한다.
이쯤 되면 대체 아티스트 웨이를 하면, 모닝 페이지를 하면 뭐가 얼마나 좋길래, 라는 의문이 들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른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각자 다른 결과를 얻을 것이기에, 한 가지로 단정 지어서 말할 수는 없다. 일단은 나의 경험을 공유해 본다. 내가 아티스트 웨이를 완벽하게도 아니고 듬성듬성 실천하면서 얻은 것은, '나는 전문적으로 글 쓰는 사람이 될 수 없어.'라는 스스로를 묶었던 사슬을 풀고 지금처럼 이렇게 브런치라는 공개적인 공간에 사람들을 향하여 글을 쓸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이 가장 크다. (이전에는 혼자 비공개로 쓰면서 담아두기만 했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바로 '아이디어 창고'라는 것이다. 모닝 페이지는 명상과 비슷하면서도 또 다르다. 명상을 하면서도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마구 떠오를 때가 있다. 하지만 명상은 자고로 생각을 흘려보내야 하는 것, 그 생각을 붙잡고 있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모닝 페이지는 다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무엇이든 적어 내려갈 수 있다. 정말 신기하게도 아무 말이나 적다가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또는 글감이 샘솟는다. 이런 경험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니 이제는 모닝 페이지를 안 쓰다가도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싶으면 내가 먼저 모닝 페이지를 찾게 된다.
아티스트 웨이 1일 차를 지나가며,
3월 2일, 오늘은 다시 본격적으로 모닝 페이지를 쓰고, 아티스트 웨이의 1주 차 과제도 함께 실천하기로 한 날.
벌써부터 너무나 뿌듯한 성과를 얻었다. 이번에는 아이디어는 아니었지만, 지난날 내 마음의 상처 하나를 잘 어루만져 줄 수 있었다. 밤 사이 마음이 안 좋게 헤어졌었던 옛날 남자 친구가 나오는 꿈을 꿨다. 오래 잊고 지냈는데 아마도 얼마 전 지인과 대화를 나누다 그 이야기가 나와서 꿈에 나왔나 보다 했다. 지인에게 잊고 있던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면서도, 꿈속에서도, 꿈에서 깨어나서도 내 마음은 계속 무거웠다. 헤어짐의 원인이 나에게 있었고, 그 사람을 힘들게 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었다. 하지만 모닝 페이지에 그 이야기를 적다 보니 내가 어느 순간 그 연애 경험에 '피해자와 가해자 프레임'을 씌워 놓고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두고 있었구나, 하는 것이 보였다. 그동안 나는 그 남자는 불쌍한 피해자고, 나는 나쁜 가해자인 것처럼 스스로 이야기하면서 불쌍하지 않은 그 사람을 불쌍하게 만들고,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 나를 나쁜 사람인 듯 자책하고 있었다. 이렇게 써내려 가지 않았으면 생각하지 못했을 관점이었다. 왜냐면 그 이야기를 아는, 또 만들어낸 사람은 오직 나뿐이라 아무도 거기에 대해서 '정말 그게 맞아?'라고 태클을 걸 수가 없었다. 막상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무거운 마음을 적어 내려가다 보니 사실은 그때 그 이별이 꼭 그렇게 기억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새롭게 이야기를 써보았다. 앞으로 누군가에게 그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어떻게 이야기하고 싶은지 말이다. 다시 쓴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사랑과 연애와 이별 이야기 중 하나처럼 평범해졌다. 많은 커플이 그러하듯 그 와 나는 성격차이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고 그 사람이 너무나 착했기 때문에 상처 줄 것이 두려워 나는 그걸 한 번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그것이 어떤 것을 계기로 마음이 갑자기 돌아서는 것처럼 표현되었을 뿐이었다. 그도 나도 누구도 잘못한 것은 없었다. 그저 더 오래갈 인연이 아니었을 뿐. 첫 번째 방식도, 새로 쓴 방식도 어디에도 거짓은 없었다. 그저 내가 어떤 부분을 과장하고 축소하느냐에 따라 또는 현실을 냉정하게 보느냐 감정적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러자 미안했던 마음이 훨씬 가벼워지면서 뭉쳐있던 응어리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모닝 페이지를 쓰기 시작할 때는 꿈 때문에 마음이 갑갑했는데, 3페이지를 마무리 해갈 때쯤에는 꼬고 있던 다리의 발끝이 덩실덩실 춤을 출 만큼 기분이 좋아져 있었다. 마치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강아지의 꼬리처럼. 독일은 지금 밤 00시 17분. 내일도 모닝 페이지를 쓰기 위해서는 이만 잠을 청해야겠다.
글: 노이
사진: Photo by Green Chameleon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