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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Feb 17. 2017

일본어과라서 죄송합니다

우리는 일본에게 역사를 기억하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가

 우리나라는 일본에 대해 예민하다. 당연하다고 생각하기에 이 글을 쓰는 일이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오해가 없기를 바라며 끄적여 본다.

 

 일문학과다 보니 가끔 일본에 대한 '비난'이 내 전공과 엮여서 상대가 '일본'을 비난하고 있는데, 왠지 그 자리에서 그걸 듣고 있는 내가 욕을 듣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어제도 독일어 수업을 듣다가 독일어 선생님에게 내가 카톡 단체방에서 사용했던 '차주'라는 표현에 대해서 태클을 받았다. 보충수업 일정을 잡다가 '차주 수요일은 제가 어렵습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차주라는 표현은 일제시대의 잔재'라며 신랄한 비판을 해대는 통에 독일어를 배우다 말고 한참을 그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했다. 내가 일본어 전공인 걸 몰랐다면 그냥 넘어갔을 일을, 내가 일문과라서 '더' 긴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는 것은 기분 탓일까. 왜냐하면 그는 내가 일본어 전공인 것을 알고 있었고,  '그렇다고 OO 씨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고 하며 굳이 나에게 하지 않아도 될 변명을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갑자기 수업시간에 왜 그 이야기가 나왔는지 나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내가 '차주에 어쩌고'라는 이야기를 한 것도 한참 전의 일이었기 때문인데, 아마도 그는 그것을 계속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나 보다.


 나는 '차주'라는 표현을, 회사를 오래 다니다 보니 직업병처럼 사용하게 된 표현이라고 대답했지만, 독일어 선생은 계속해서 '일본어의 잔재가~' 이야기를 이어가며 나를 점점 고개 숙이게 했다.


  나는 조금, 아니 많이 갸웃했다. 나는 정작 대학 시절에는 '다음 주'라는 의미의 일본어로 '내주(来週)'라는 표현만 배웠지, '차주(次週)'라는 표현은 배운 기억이 별로 없고, 내가 '차주'라는 표현을 일상생활에서 쓰기 시작한 계기는 정확히 '한국 회사'에서 배우면서 습관으로 베였기 때문이다.

 

  독일어 시간에 왜 그렇게 일본어의 잔재에 대해 열을 내는고 생각해보니 본인이 문예창작과라서 그런 듯하였다. 그 상황이 너무도 불편했던 나는, 그대로 두면 끝이 날 것 같지 않았던지라 수업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빨리 수업 진도를 나가자고 황급히 화제 전환을 시도하면서 상황을 적당히 마무리해야 했다.


 그래도 궁금하긴 해서 찾아보니 어디서도 명확히 답을 찾기는 어려웠다.


 혹시나 요즘은 워낙 다양한 해석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미리 말하지만, 나는 일본의 침략에 대해서 변호 따위를 하자는 게 아니다. 그 정도로 일본을 애정 하진 않는다. 소녀상 이슈처럼, 그들의 만행에 분노하는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 중 한 명이다.


 하지만 가끔 이런 사람들 - 일문과라는 이유만으로 일본 침략 및 일본 침략의 잔재에 대한 비난을 왠지 모르게 나를 향해 하는 사람들 - 을 만날 때마다 불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마치 내가 일문과 졸업생이라는 사실이 죄인인 것처럼. 지피지기를 위함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은 채 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비난의 대상이 잘못되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일본어를 배워서' 일본식 표현을 쓰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내 윗 세대들에게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쓰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일문학과를 나오지 않았어도 나는 일본식 표현을 쓰고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나는 일문학과이기에 무엇이 일본어고, 무엇이 한국어인지를 오히려 '구분' 하여 쓸 수 있고, 일본어인지 아닌지 모른 채 일본어를 쓰는 - 이것이야말로 잔재에 물들어 있는 - 것은 오히려 일본어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어 선생이 '일본어의 잔재'에 대해서 비난할 때, 그는 왜 나에게 변명을 하였으며, 나는 왜 죄의식을 느껴야 했을까. 그건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역사에 대한 올바르지 못한 태도' 때문이라는 것을, 최근 우연히 한 강연을 보면서 깨달았다. 이 강연은 SBSCNBC에서 2014년 말쯤 방영했던 'Who am I?'라는 프로그램에서 '한명기 교수'의 강연이다.



- 동영상 링크: https://youtu.be/z7 lw456 knD4? t=21m27s





한명기 교수는 말한다.




우리는 일본에게 역사를 기억하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가?




 임진왜란 발생 1년 전에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추천한 유성룡은 임진왜란의 원인과 전황을 기록한 '징비록'을 남기며, 비운의 역사를 기록함으로써 훗날을 대비하고자 하였지만, 이 '징비 정신'은 계승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났다. '위기'가 사라지니 '위기의식'이 사라지고, '개혁 의지'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조선의 징비 정신이 잊혀져버린 반면, 오히려 일본이 이 징비록의 가치를 알아보고 더 적극적으로 연구한다. (물론 목적은 달랐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나라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일본 자체의 침략성이 기본적으로 잘못된 것이지만, 우리나라도 위기의식을 잊어버린 채 발전하지 못했던 것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의미이다.


일본어의 잔재도 마찬가지이다.  

소중한 우리말 표현의 일부를 계승하지 못하고, 전쟁이 끝난 지금까지도 그 잔재를 지우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것의 책임은 그것을 전파한 일본뿐만 아니라,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그것을 사용해 온 대한민국 국민에게도 있다. 소중한 한글을 되찾아오고 싶었던 사람들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국민이, 나라의 분위기가, 또다시 일제강점기가 끝나자마자 위기의식을 잊은 채 그들이 남겨놓은 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의 진짜 속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다시 본래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일본어의 잔재를 사용하는 것이 싫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사용하자.'라는 취지는 백번 좋다. 하지만 그것을 빌미로 정당한 대상이 아닌 사람에게 교묘한 비난을 하는 것은 '나는 이런 훌륭한 의식을 가진 사람이야'라며 상대를 낮춤으로써 본인의 우월함을 강조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내 눈에 그는 우리말을 사랑하는 척하며 '스스로를 내세우기' 바쁜 사람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기분이 나빠도 별말을 하지 못한 채 시선을 피하며 참았다. 왠지 나에게 잘못이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시절은 이제 졸업을 하였고, 앞으로 이런 사람들을 만났을 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나 사뭇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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