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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Feb 10. 2017

아르바이트에 대한 회상

  학창 시절에는 곧잘 아르바이트를 하였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난 이들 중에도 여러 사정이 있었다. 집안이 너무 어려워 생계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어린 나이부터 사회에 뛰어들어야 하는 친구부터 시작하여, 집에 돈은 많은데 취미로 하는 사람까지 그 범위는 다양했다. 

  나는 그 중간의 어디쯤에 속했다. 부모님에게 벌리고 있는 손의 크기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한 것도 있었고, '나'라는 존재가 사회에서 하나의 역할을 하며 '노동'이라는 것을 하고 '급여'를 받는다는 느낌이 설레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이 재미있었다. 몸은 너무나도 힘들었지만, 서비스직 일이 싫다고 여긴 적은 없었다. 일부러 더러운 꼴 -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더러운 두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하여 - 을 볼 수도 있는 술집 아르바이트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아무튼  내 생애 첫 아르바이트는 중2때 했던 '어린이 뮤지컬 홍보 전단지'를 아파트 집집마다 돌리는 일이었다. 그때 메고 다녔던 가방이 지금도 생각난다. 빳빳한 직사각형의 카키색 크로스백이었다. 그 때 어린 중학생들에게 어마무시한 양의 전단지를 주고서는, 돈은 쥐꼬리만큼 주었던 양심없는 그 고용자는 누구였을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그 날 나는 그 전단지를 다 돌리지 못해 대부분은 버렸고, 버리면서도 걸릴까봐 조마조마했고, 집에 돌아와서 너무 피곤해서 초저녁잠을 잤는데 태어나 처음으로 가위에 눌렸다. 지금도 그 기억은 생생하다.


 두번째 아르바이트는 고3 졸업반에 친구가 일하던 벌집삼겹살 고기집에서 1일인지, 2일인지 단기 알바를 했었다. 작은 항아리 솥에 담긴 삼겹살을 1층에서 2층을 왔다갔다하며 날라야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끔찍해서 고기집 아르바이트는 다시는 안했다.


 성인이 되어 처음했던 건 하남시청 아르바이트였던 것 같다. 스무살 지방에서 갓 올라와 사촌언니의 손에 이끌려 지원했다. 공공기관이라서 그랬는지 더 긴장되고 자신이 없어서 '차라리 안되었으면...' 하고 빌었는데 되버렸다. 이게 모여서 흰색 공, 주황색 공 중에 제비뽑기처럼 그냥 뽑아서 고르는 랜덤 방식이었는데 되버렸다. 그렇게 안되길 빌었는데! 일한 기억보다는 썸탄 기억만 더 남아있네. 헤헤.


 그 때까지는 아르바이트의 초보초보왕초보. 그 이후로는 만화방, 편의점을 전전하며 일하다가 나의 제대로 된 아르바이트 경험이 시작된 건 CGV.

 미아삼거리점의 오픈 스탭으로 들어가 그 때 처음으로 제대로된 서비스 교육이라는 걸 받아보았다. 이 때가 CJ와의 인연이 시작된 첫 계기이자, 서비스직에 제대로 재미붙인 기간.


 그리고 일본 힐튼 호텔에서의 1년 라운지 근무까지. 돌아보니 그 시간들의 어렸던 내 모습에서 지금은 어디 내놔도 기본적인 서비스 업무 정도는 거뜬히 해낼 수 있는 내가 되기까지 감회가 새롭다. 만약 서비스직이 나랑 안맞았으면, 다른 길을 모색해봤겠지만 사실 몸이 힘든걸 빼면 꽤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체력적으로 따라주지 않는다는 걸 심각하게 깨달은 뒤에, 대학을 졸업하고는 사무직으로 발길을 틀었다. 남들 다쉬는 휴일에 못쉬는 것도 싫었고. 


뭐, 이 정도면 나중에 내 사업해도 눈치없고 개념없는 사장 소리는 안듣겠지.


그립다, 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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