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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Jan 17. 2020

친구의 아이를 만날 때

친구와의 수다 2 : 아이 쫓아다니기 8


오늘은 대학 동기 친구를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갑자기 몸이 아픈데도 약을 먹고서라도 얼굴을 보러 나오겠다는 친구가 걱정이 되어 몸부터 신경 쓰라고 했지만, 그래도 나오겠다는 의지를 꺾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건강이 우선인데, 한국의 정이라는 것이 아직 이렇게 강하다 싶다. 그녀의 네 살배기 귀여운 딸과 함께 밥을 먹고 아이 뒤를 쫓아다니고, 커피를 마시다 아이 뒤를 쫓아다니고, 케이크를 먹다 말고 아이 뒤를 쫓아다녔다. 아이에게 계속 신경을 쓰면서 오래 묵힌 수다를 풀어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지금 내 마음에 남은 아쉬움은 친구와 충분한 수다를 떨지 못했다는 것만큼이나 아이를 위해 인형 뽑기에서 인형 하나 뽑아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남는다. (우리나라의 인형 뽑기는 거의 사기로 고소해도 되는 거 아닌가...ㅠㅠ)

이미 인스타그램으로 어깨 넘어 아이의 넘치는 재롱은 많이 봐왔지만 역시 실물로 보는 것만 못했다. 친구 입술을 똑 닮은 도톰한 입술로 자기소개를 하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이 아이는 아마 나중에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아이의 가장 어여쁠 시기에 직접 그 모습을 눈으로 담는 경험은 참 소중한 것 같다. 삼십대를 접어들면 아이가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일을 겪게 되고, 또 호불호가 생길 것이다. 당연하게 느꼈던 친구하고 만나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들이 누군가에게 아이가 생기는 순간부터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닌 귀한 시간이 된다. 물론 아이를 바라보는 일은 즐겁지만, 수시로 옆을 쫓아다니며 챙기는 일은 편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일이고, 웃는 만큼 울기도 하고, 수다가 깊어질 때쯤이면 나 잡아봐라 하고 도망가버리는 존재들과의 외출은 녹록지만은 않다. 그래서 아이를 데리고 친구를 만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매번 느끼는 건 한 생명의 가장 순수한 시기에 그 아이를 만나 손잡고 대화하고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건 아주 소중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몸도 마음도 너무너무 힘든 순간이 와도 그걸 다 녹여버릴 한 방을 가졌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어차피 몇 년만 지나면 같이 나오라고 해도 안 따라 나올 것을 우리는 너무 잘 아니까. :)

오늘 못다 한 이야기는 많았지만, 친구에게 얻던 힘과는  다른 종류의 힘을 친구의 아이에게서 얻고 왔다. 결국 중요한  그녀도 그녀의 아이도 만나면 기분이 좋다는  아닐까.




꼬마 아가씨가 찍어준 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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