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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Mar 08. 2020

리얼리티와 감수성의 사이에서

이 글은 아티스트 웨이 책 1주차를 실천하고 쓰는 일기. 

매거진의 목적에 맞게 아주 편하게 마구 의식의 흐름대로 써내려 갈 예정이다. 


책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모닝 페이지는 일주일 중 6일을 썼다. 벌금, 아니 기부금이 천원 적립되었다. 그래서 그런가 하루 빠진 것 정도는 마음이 그렇게 무겁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한 번 빠진 걸로 '역시 난 작심삼일러야'라고 좌절하고 바로 포기했겠지.) 가볍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니 하루 빠졌다고 좌절하거나 하지 않고 덤덤하게 다음 날 아침 다시 모닝 페이지를 쓸 수 있었다.

모닝 페이지를 쓰기 전에는 항상 뭐가 나올지를 모른다. 원래 생각없이 글을 쓰는 편이기는 해도 최소한의 주제나 목적을 가지고 글을 쓰는데 모닝 페이지를 쓰는 건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심지어 일기랑도 또 다르다. 일기도 '그 날 하루 있었던 일, 느낀 점'이라는 주제가 있기 마련인데 모닝 페이지는 그냥 한마디로 제한이 없다. 일반적인 글쓰기는 '이번엔 ㅇㅇ을 써야지’라고 생각하고 그에 맞춰 가지를 쳐내려가는 방식이라면, 모닝 페이지에서 쓰는 글은 그냥 엎질러놓은 물 같다. 일단 병을 엎지르면 (글을 쓰기 시작하면) 물은 아무 곳으로나 흘러내려 간다. 그러다 어느 곳에 보이지 않았던 구멍이 보인다. 그 곳으로 물이 흘러들어간다. 가까이 가서 구멍을 파보면 나도 묻어 놓고 잊어버렸던 내 상처가 보이기도 하고, 보물 상자가 나오기도 한다. 정말 뭐가 나올지를 모른다. 이번 주에는 내가 잊고 있던 나의 잘못된 생각 패턴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이 어느 누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나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걸 봤을 때 나는 그 패턴을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정말 요즘은 마음이 많이 건강해져서 마구 써놓고 다시 살펴봐도 자잘자잘하게 부정적인 생각은 잘 안나오는데 나도 모르게 아주 뿌리 깊이 박혀있는 부정적인 생각 패턴이 숨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주의 깊게 파고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티스트 데이트는 무엇을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늘 마음 한 구석 걸림돌처럼 자리잡고 있는 그림그리기를 다시 해보기로 했다. 처음엔 그냥 좋아하는 인스타툰이나 따라 그려봐야지 했는데 아티스트 산책을 할 겸 서점으로 가서 드로잉북을 사기로 했다. 한국엔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버전이 많지만 독일에선 찾기 어렵다. 다 전문적이고 클래식한 드로잉 뿐. 그래서 한참을 한참을 뒤지다가 겨우 하나를 발견했는데 너무 잘 그리라고 하지도 않고 대충 그린 듯한 예시들이 딱 내 스타일이었다. 가격이 조금 부담되긴 했지만 큰 마음 먹고 브러쉬펜 하나랑 같이 책을 샀다. 밤에 지브리 스튜디오 음악을 틀어놓고 그리니 너무 좋았다. 생각보다 잘 그려졌다. 그리고 그림을 끝내고 지브리 음악에 꽂혀서 한참을 듣다가 잤다. 예상치 못했던 두번째 아티스트 데이트 같은 시간. 이런 스타일의 일본 애니메이션 음악들이 너무 좋다. 잊고 지냈었다는 걸 또 새삼 깨달음. 귀에 쏙쏙 들어오는 일본어 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내 감수성을 마구 흐트려 놓는 기분. 아, 혹시 일본 불매 운동에 노래도 포함인가. 하지만 이건 내 추억인 걸. 




모닝 페이지와 아티스트 데이트에 너무 집중해서 다른 과제들은 조금 ‚빨리 감기‘ 모드로 진행했다. 나의 창조성을 가로막는 존재들을 생각해보니 사실 뚜렷하게는 없었는데, 일반적인 사회의 인식이나, 지나치게 현실적인 사람들이 조언 등에 너무 크게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다시 먹고 살기 위해 회사로 돌아가야 할 수도 있는 지금 상황에서 (아직 모르지만) 어쩌면 아티스트 웨이를 시기적절하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적인 투쟁에 매몰되지 않고 밸런스를 잡아주는 기분. 워크&라이프 밸런스가 중요하듯이 리얼리티&감수성 밸런스도 나에겐 매우 중요한 것 같다. 참, 나에 대한 칭찬 적는 부분에서 여전히 매우 부끄러웠다. 정말 좋아하는 칭찬을 적을 때에도 어디 숨어버리고 싶을 정도였는데, 그건 실제로 내게 부담이 되어서 글쓰기를 멈추게 하는 역할이 되기도 했었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초창기 이 매거진의 제목을 정하고 글을 한창 적을 무렵, 어떤 분이 내 매거진의 주소를 다른 커뮤니티에 공유하면서 '훔쳐보라고 쓰는 일기'라는 이 타이틀이 완전 자기 스타일이라고 강렬하게 좋아해주시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너무너무 기분이 좋으면서도 그 분의 기대에 못미치게 될 것이 두려워 망설임이 더 커졌다. 비판의 두려움보다 칭찬에 따라오는 사람들의 기대에 대한 부담감도 만만치 않게 큰 것 같다. 차라리 비판성 댓글이 나를 더 글을 쓰게 하려나? 칭찬을 즐기며 글을 쓰기보다, 내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마 라는 전투적 글쓰기가 아직 더 익숙한걸까? 칭찬에도 비판에도 흔들리지 않고 싶다, 무엇을 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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