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머릿속에 계속 맴돌던 주제가 하나 있었다. 인간은 왜 이렇게 늘 더 나아지고 싶어 할까. 자존감이 낮을 때는 이런 생각에 의문조차 품지 않았다. 당연히 '지금의 나는 별로'이기 때문에 아주 전체를 다 뜯어고쳐야 한다고 생각했으니. 하지만 드디어 낮은 자존감만큼 바닥도 낮았던 착각의 구렁텅이에서 벌떡 일어서서 나는 지금 있는 그대로 소중하고 이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마음의 평안을 얻었는데도 나는 계속해서 분투하고 있다. 계속 실패하면서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를 도전하고, 계속 실패하면서도 4개 국어에 도전하고, 계속 실패하면서도 홀로서기에 도전하고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에 실패한 건 몇 년인지 셀 수도 없고, 독일어와 홀로서기와 씨름한지는 꼬박 3년이 되었다. 그런데도 난 좌절하기는커녕 더 눈을 반짝이며 올해는 정말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또 혼자와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잘 돼가는 이 시점에 왜 이런 의문이 든 것인지 의아했다. 그저 '모두가 좋다고 해서' 어떤 길을 따라가는 것을 그만둔 지 오래다. 그렇지만 좋은 습관 만들기는 함께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좋고, 있어줘서 너무 고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물음표는 떠다녔다. 우린 모두 지금 이대로 충분한데 어째서 더 나아지고 싶어 하는 것일까?
가장 첫 번째로 떠오른 건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 이론이었다. 인간에게는 5가지 욕구가 있다는 이 이론은 다들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가장 꼭대기에 있는 저 '자아실현의 욕구'를 이루기 위해서 나는 이토록 분투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 아마도 그 말이 맞겠지,라고 수긍하면서도 대체 나는 습관 만들기에 도전하는 걸 왜 그만두지 못할까 하는 의문은 남았다.
그런 생각도 잠시, 오늘 저녁에 잠깐 시간을 내서 마트에 과일을 사러 갔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저녁 7시에 마트가 문을 닫는 법은 없었는데, 우리 동네 마트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나? 아니면 그새 독일 락다운 정책이 강화되었나?' 놀라서 친구에게 연락을 하니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오늘 공휴일이잖아 ㅋㅋ"
아차, 오늘은 부활절 월요일. 독일의 공휴일이었다. 공휴일을 이렇게 보낸 게 조금 억울할 정도로, 그리고 공휴일인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나는 오늘 하루를 아주아주 오랜만에 꽉꽉 채워서 보냈다. 큰 태스크와 작은 습관들이 서로 엉켜서 수많은 크고 작은 성과들을 만들어 냈다. 뿌듯했다. 이런 기분이 너무 오랜만이었다. 하루를 정말 잘 살아내는 기분, 지금을 살아가는 기분 말이다. 그렇게 하루를 마감하며 잠옷을 갈아입는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구매대행 샵을 리뉴얼하고 나서 갑자기 주문이 많이 밀려들어오면 어떡하지? 공부할 시간이 줄어들진 않을까?'
뭐, 늘 해오던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었다. 하지만 평소와는 좀 달랐다. 예전 같으면 이런 생각이 올라오면 그 걱정이 점점 커져서 불어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 나에게는 공부가 더 중요하니까 돈 버는 일은 다 멈추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의외로 걱정이 거기서 멈췄다.
'그러면 일하는 시간이랑 공부하는 시간을 조정하면 되지.'
이 생각 하나로 뭉게뭉게 피어오르던 쓸데없는 걱정이 전부 수그러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에게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절제력'이라는 게 생겼다고.
나는 그동안 나 자신이 무엇에 빠져드는 것을 잘 절제하지 못했다. 즉, 브레이크를 잘 밟지 못하는 사람.
좋게 말하면 집중력이 좋은 것이지만, 그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집중력이 좋은 게 되거나 아니면 중독이 되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이제 와서 돌아보니 더 최악이라고 생각이 드는 건 외부에서 나에게로 향하는 스트레스나 과중한 업무, 지나친 언어폭력들에 대해서도 브레이크를 밟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안팎으로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달려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 브레이크가 이 습관 만들기를 하면서 생겼다. 오늘 나는 아침 6시에 일어나 모닝 페이지를 쓰고, 명상을 하고, 확언을 하고, 설거지를 했다. 매 끼니를 직접 차려먹고, 영양제를 챙겨 먹었고, 6시간 독일어 공부를 하고, 3시간 개인사업 업무를 봤고, 5가지 감사일기를 쓰고, 나에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쓰고, 독일어 3 문장을 손글씨로 쓰고, 블로그에 글을 썼고, 또 브런치에도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이 작지만 많은 일들을 하나씩 클리어 해내고 나니 자신감이 붙었다.
이제 나는 내 몸이 과하게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 내 속도에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고, 내가 예측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겠다는, 나를 지나치게 희생하지 않고 갈아 넣지 않을 것이고 그럴 수 있다는 확신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아주 작은 습관들이 그래서 중요하다고 하나보다. 아침에 침대 이불을 정리하는 것이, 매일매일 이를 닦는 것이 정말 사소해 보여도 그 아래에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품고 있다는 것을, 좋은 습관 한 번 가져보겠다고 몇 년씩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다가 드디어 실제로 그 기분을 느끼는 감회가 너무나 새로워서, 이 글을 꼭 쓰고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좋은 습관 만들기 플랫폼을 만들어주시는 모든 분들과 함께 참여하는 익명의 모든 분들에게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