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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Apr 29. 2020

세수하기 귀찮았던 날의 일기




우리는 매일 아침 일어나 세수를 한다. 잘 때가 되면 또 세수를 한다. 화장을 하는 나이가 되면서는 세수는 더욱 중요해졌고, 더 오래 걸렸고, 그럴수록 더 귀찮아졌다. 지금이야 별생각 없이 습관대로 화장을 지우고 클렌징 폼으로 꼼꼼히 세안을 하고(이마저도 매우 귀찮지만) 수분 듬뿍 크림을 바른다. 하지만 피부에 꽤 자신이 있던 20대에는 매우 피곤한 날 밤이나 술에 만취한 날에는 화장도 지우지 않고 그대로 잠을 청한 적도 많았었다. 그게 내 피부에, 위생에 좋지 않은 줄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렇게 나에게 세수란 나의 위생을 위해서 또 사회적인 매너를 위해서 귀찮아도 해야 하는 미션 같은 것이었다. 물론 세수를 안 하면 찝찝한 게 싫고, 세수를 하고 나면 상쾌하니 기분이 좋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 모든 걸 알면서도 세수를 하는 게 아주 귀찮은 시기가 종종 찾아온다. 그렇게 평생을 살아오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의문이 든 것이다. 




이렇게 매일 하루에 두 번씩 꼬박꼬박 하는데도, 왜 세수는 오늘 또 해야 할까?



생각해보니 세수는 고양이가 나보다도 더 부지런히 하는 것 같았다. 얼마 전에 본 디즈니 네이처의 돌고래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에서도 돌고래가 몸을 씻는 법에 대해서 보고 신기해했던 기억도 났다. (돌고래들은 특정 산호 위로 몸을 슬라이딩하듯이 헤엄쳐서 몸을 씻는다. 이것은 그들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나레이터는 말했다.) 적어도 지구 상에서 살아서 움직이는 생물은 다 자기 몸을 씻는 것 같았다. 그래, 하물며 파리도 늘 앞발로 얼굴을 비비지 않는가! 꽃과 나무도 새벽이슬과 빗방울이 씻어준다. 세수를 귀찮다고 생각하는 건 인간뿐이려나? 




곰곰이 생각하다 나름의 결론에 이르렀다. 과학 쪽은 문외한이지만, 어쩌다 가끔 다큐를 볼 때가 있는데, 그중 지구에 있는 에너지들은 기본적으로 사방으로 퍼지려 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려는 성질이 있다고 한 내용이 있었다. 예를 들면, 유리병이 충격을 받으면 사방으로 조각이 산산이 흩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어떤 물질을 고체화시키기 위해서는 그 성질을 억제할만한 힘(압력, 화력 등)이 필요한 것이다. 생명도 마찬가지다. 모든 생명은 매 순간 태어나고 자라고 또 죽어간다. 그래서 아무리 세수를 하고 또 해도 내 얼굴은 어젯밤 세수한 직후처럼 상큼한 게 아니라 자고 일어나면 또 씻어줘야 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자연의 섭리이긴 하다.




그럼 자연의 섭리에 따라 - 위생과 매너의 관념을 떠나서, 찝찝함을 다 견딜 수 있다는 전제 하에 - 세수를 하지 않고 산다면 어떻게 될까? 점점 고약한 냄새가 나고 여드름이 점점 더 얼굴을 덮고 더러워지는 것을 상상하니 진저리가 쳐졌다. 아무리 예쁜 꽃도 그 잎에 벌레의 대변이나 새똥이 가득하다면, 아무리 향기가 좋았던 꽃이라 해도 더 이상 벌레조차 찾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아마 자연도 바라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내 몸에서 매일 노폐물이 나오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면, 그것을 깨끗하게 씻는 것도 자연의 섭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이르렀다. 자연스럽게 더러워지는 것이 있는 만큼, 움직일 수 있는 동물들은 그것을 청소해서 자연의 밸런스를 맞춰가는 게 아닐까. 사소하지만, 내 얼굴을 깨끗하게 씻는 오늘의 내 행동이 내 위생과 사회를 위한 매너를 떠나서 자연을 환경을 깨끗하게 하는데 한몫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내 삶을 만들기 위한 좋은 습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너무나 당연하고 사소해 보이는 일들이 사실은 아주 중요한 일이고, 뿌듯해해도 되는 일일 수 있다는 걸, 가끔은 되새겨 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글: 노이

커버 이미지: Photo by Tadeusz Lakot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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