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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Mar 16. 2020

갑자기 주위에서 3명이 기침을 했다

마스크도 없이, 손수건도 없이



오늘 아침 6시에 일어나 비자 신청을 하기 위해서 외국인청에 갔다. 원래는 다음 달에 돌아가야 하는 비자이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3개월 더 머물 수 있는 비자를 받기로 되어있었다. 관청이 문 여는 시간이 8시인지라 혹시 밖에서 덜덜 떨까 싶어 20분 전까지 갔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있었다. 7시까지 가라던 어떤 블로거의 팁을 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지난번에도 9시에 가서 한 시간 기다려서 잘 일처리를 하고 왔기 때문에 번호표를 받고 바깥 대기 공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독일의 대부분의 관청은 시스템이 아날로그식이다. 여전히. 어쩌다 부족한 서류를 이메일로 내도 된다는 말을 들으면 기쁠(?) 정도이다. 온라인으로 예약이 가능한 관청은 이메일을 보낸 지 며칠이 지나도 답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가서 기다리는 관청으로 왔다. 7시 40분쯤 도착했는데도 내가 받은 번호는 70번이었다. 



나는 주위를 유심히 살폈다. 왜냐면 지난 일요일 오후에 이 곳도 일반 마트나 식당을 제외하고는 전부 문을 닫도록 결정이 났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공기가 바뀐 게 느껴졌다. 공공 도서관, 헬스장, 펍, 클럽, 사우나 등 사람들이 실내에 모여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시설물들이 임시 휴업 결정이 났고 크고 작은 이벤트들도 당연히 취소가 되었다. 허용하는 건 100명 미만의 개인/가족의 결혼식이나 장례식 정도인데 이마저도 가능하면 취소할 것을 권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때문인지 원래는 주르륵 놓여있던 대기 의자 수가 반 이하로 줄어있었다. 서로 간격을 유지하고 앉을 수 있게 띄엄띄엄 놓여 있었다. 나도 어느 정도 거리가 띄어진 의자에 앉아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번호는 70번. 보통 같으면 노이즈 캔슬링을 켜서 소음을 차단하고 노래를 들었겠지만, 이 곳은 번호 계기판이 없고 사람이 나와서 일일이 '1번부터 10번 들어오세요~', '20번까지 들어오세요~'하는 시스템이라 소리를 놓치지 않고 듣기 위해 노래도 끈 채 친구와의 카톡으로 지루함을 달래고 있었다. 









그 외에도 눈에 띄었던 건 마스크를 하고 있던 외국인이었다. 아시아 쪽 사람이 아닌데 마스크를 한 건 처음 보았다. 신기했다. 여긴 놀라울 정도로 아무도 마스크를 하지 않는다. 하는 사람이 보인다면 99% 아시아 사람이다. 어쨌든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돌도 안돼 보이는 쌍둥이를 유모차에 끌고 나온 히잡을 쓴 여자가 유모차를 이리로 저리로 끌고 다니며 아이를 달래고 있었다. '아이가 너무 어린데 여기에 와있어도 괜찮으려나?' 아마 대부분이 나처럼 급해서 온 사람들이겠거니, 돌봐줄 사람이 없었겠거니 넘기긴 했지만 걱정이 되는 건 매한가지였다.  



그런데 갑자기 왼쪽 대각선에 앉은 남자가 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휴지로 코를 풀었다. '응?' 그때부터 나는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지난번 외국인청을 방문했을 때 '코로나가 의심되거나 일반 감기 증상만 있어도 방문하지 말고 이메일로 접수하라'는 공지를 봤었는데 전혀 지켜지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중요한 건 그 공지가 외국인청 내부에 사무실 문 앞에 붙어있고 건물 입구에는 안 붙어있음...) 그 옆에는 아내로 보이는 여자가 딱 붙어서 앉아있었다. 그리고 몇 초 뒤, 이번에는 오른쪽 대각선에 서 있던 남자가 기침을 했다. 누가 들어도 '아픈 사람'의 기침 소리였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갔다. 그는 마스크를 하고 있지 않았고, 팔로 입을 가리지도 않았고, 자기 손으로 대충 막고 있었다. 그리고 또 희한하게도 몇 초 있다가 이번엔 뒤에서 기침 소리가 들렸다. 안 봐도 비디오였다. 나는 일단 앉아있던 자리를 벗어나 뒤에 인적이 드문 공간으로 피했다. 나도 갑자기 기침이 나올 것처럼 목이 간질거려 왔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는 주위 사람들의 감정이나 신체 통증에 예민한 편이다. 주위에 누가 두통이 있으면 나도 두통이 오거나 기침 하면 나도 기침이 나올 때가 종종 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뜨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 







비자 상담을 위해 사람들이 기다리는 대기 공간 (앞쪽)

그래서 뒤에 인적이 드문 공간에 물러서 있는데 이번에는 3~4살쯤 돼 보이는 여자 아이가 탄 유모차가 내 앞을 지나갔다. 그 아이는 해맑게 재채기를 하고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는데 이미 코 주위에는 콧물이 한가득 이었다. '그래 네가 무슨 죄니...' 어쨌든 나는 갑자기 정신이 아찔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없다. 위기의식이 전혀 없다. 이 사람들. 아무렇게나 기침을 하는 사람들이나 그런 곳에 아이를 데리고 오는 부모들이나. 참고로 내가 목격한 이 사람들은 독일 사람은 아니다. 유럽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나처럼 비자를 상담하러 온 사람들일 것이었다. 하지만 국적은 상관이 없다. 어쨌든 이런 사람들이 이 곳에 산다는 것이 나에겐 위기로 다가왔다. 공무원들은 이걸 몰라서 그냥 두는 걸까? 뒤에서 보고 있자니 진심으로 이 상황이 개판으로 보여서 가서 어떻게든 조치를 하라고 말을 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구석으로 우르르 몰렸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따라가 보니 직원 한 명이 나와서 공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 알아듣지 못했지만 대충 '지금 코로나 때문에 모든 기관들이 문을 닫고 있고 그래서 우리도 지금 닫는다. 언제 다시 열지는 모른다.'였다. 




다들 패닉에 빠져서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댔지만 당연히 저 직원이 지금 혼자서 이 사람들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이 와중에 다들 예의는 지키더라. 그나마 다행. 내 비자를 못 받은 건 황당하지만 관공서가 문을 닫은 건 잘한 결정이었다. 누가 봐도 그곳은 집단 감염되기에 딱 좋은 자리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일을 주먹구구식으로 진행할까? 내가 알던 독일이 아니었다. 열지 않을 거라면 처음부터 번호표를 나눠주지 않아야 했다. 정작 번호표를 다 나눠주고 문을 열고 2시간이 지나서 갑자기 코로나 때문이라며 문을 닫아버렸다. 애초에 번호표를 줄 때 사람들의 증상을 체크하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 소독을 한 사람만 들여보내는 식으로라도 운영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것조차 일체 없었다. 그냥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하는 아이들을 보는 느낌이었다. 




웬만하면 밖에 안 나가려고 하지만 비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했던 요 며칠, 다른 일도 있었다. 며칠 전 공공 도서관에 프린트를 하러 갔을 때도 문 앞에 코로나 관련 공지가 있고 평소에 없던 직원분이 앉아계시길래 내가 먼저 다가가서 '무슨 검사를 해야 하나요?'라고 물었는데, 그분은 '아니요. 그냥 들어가세요.'라고 했다. 도서관 안에도 기침을 하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토요일에는 헬스장에 전화를 걸어 코로나 때문에 내 멤버십을 일시정지시키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헬스장에서는 시에서 방침이 내려오지 않는 이상 힘들다고 했고 나는 일단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일요일에 헬스장도 문을 닫으라는 방침이 내려졌다. 월요일 오전이 되니 당분간 헬스장은 문을 닫을 것이며 대신 멤버십 기간이 끝나면 8주 무료 기간을 주고, 인바디 체크를 할 수 있는 쿠폰 같은 걸 준다는 이메일이 왔다. 차라리 헬스장이 외국인청보다 준비가 더 잘되어있었던 것 같다. 어느 나라나 관공서의 관료주의는 어쩌기가 참 힘이 든가 보다. 



물론 긍정적인 부분들도 있다. 그나마 홈오피스는 지난주부터 더 빨리 시행을 했고, 독일은 인구밀집도가 서울보다는 낮아서 밖을 다니면서 사람들과 부대낄 일이 웬만해선 잘 없다. 1.5~2미터의 안전거리는 본인이 신경쓰면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고층 건물이 많이 없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같이 탈 일도 별로 없다. 계단을 이용해도 충분하다. 학교는 모두 개강을 미룬 상태. 다행히 모든 곳이 정부의 결정을 잘 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동물 구조 센터에서 코로나 감염으로 인해 자신의 애완동물을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애완동물을 대신 돌봐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현지인들도 처음에는 코로나19에 대해 '흥 그게 뭐 대수라고'의 여론이 강했지만 지금은 다들 몸을 사리고 안나오는 사람들도 늘었다. 여전히 그게 뭐 대수라고, 라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오늘 외국인청에서의 경험에 대해 페이스북에 글을 쓰자 어떤 독일 친구가 나름 조언이라며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던 것 중 이런 말이 있었다. '대부분은 일반 감기 일거야.'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었겠지만, 좀 격앙되있던 나는 이렇게 외쳤다.









"난 일반 감기 바이러스도 싫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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