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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Mar 19. 2020

독일 코로나 셧다운 전후 일기



2020년 3월 14일 토요일



그동안 헬스장에 가지 못했다. 갈까 말까 고민을 하다 결국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슈퍼에서 마스크를 써도 눈치가 보이는데 헬스장에서 운동하면서 쓸 용기는 나지 않았다. 독일에서 마스크를 쓰고 밖으로 나가는 일이 노브라를 하고 나가던 날보다 더 어려웠다. 쓰고 계단을 내려가다가 현관문을 열기 전에 벗고 나가서 또 썼다가 벗었다가 다시 마트에 들어가기 전에 쓰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아직 직접 인종차별을 겪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다른 한국인, 동양인들이 인종차별받은 사례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프다. 다른 외국인 친구에게 인종 차별에 대한 우려를 털어놓았을 때 그런 행동에 굴하지 말고 오히려 더 당당해지라는 응원을 받았고 그러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다. 어쨌든 헬스장을 당분간 못 갈 것 같아 다니던 헬스장에 전화를 걸었다. 코로나 때문에 그러니 멤버십을 일시정지시킬 수 있냐고 물었다. 감염 증상이 있느냐고 물어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내 우려를 이해하지만 아직 시에서 방침이 내려온 게 없어서 개인을 따로 정지시켜 줄 수는 없다고 했다. 일단 알겠다고 하고 끊었다.


오후에 마트에 갔다. 독일은 사재기하는 사람들을 Hamsterkäufe라고 한다. 직역하면 '햄스터 구매'라고 하는데, 햄스터가 볼에 먹을 것을 저장하는 모습에 착안해서 만든 단어인 듯하다. 독일 곳곳에서 사재기가 시작됐다는 소식이 들렸어도 함부르크는 아직 괜찮다. 하지만 마스크와 손소독제는 품절이라 약국들은 문 앞에 공지를 써붙여 놨다. 어떤 약사가 추천해준 소독제 대용품을 샀다. 알코올이 70% 이상 들어있다고 했다. 이거라도 살 수 있어 다행이다.




2020년 3월 15일 일요일



드디어 독일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 뜨거웠나 보다. 코로나 핫라인도 평일 아침-저녁 시간에만 운영하고 주말엔 쉬는데 웬일로 정부에서 일요일에 셧다운 정책을 발표했다. 마트, 슈퍼마켓, 빨래방 등 정말 생활에 꼭 필요한 곳만 제외하고 모든 곳이 문을 닫아야 한다고 했다. 내 신경은 오로지 헬스장에 집중되어 있었다. 당연히 헬스장도 문을 닫는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 밖에 모든 박물관, 사우나, 도서관(학교 도서관, 공공 도서관 포함), 학교, 공연장 등 정말 생존에 필요한 것이 아니면 다 폐쇄되고 있었다. 식당은 오픈할 수 있지만 테이블 간 간격이 1.5m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내일 헬스장에 다시 전화를 해봐야겠다.





어제 마스크에 대한 고민을 너무 심하게 해서 왜 유럽은 마스크를 안 쓰는지 조사를 엄청나게 했다. 결국 과학적/문화적 요인이 동시에 있는 문제였다. 과학적으로 마스크는 비말 감염을 막는데, 주위에 기침하는 사람이 없다면 막아야 할 비말이 없으니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만약 기침을 하더라도 2m 이상 거리를 두면 괜찮다는 논리였다. 접촉 감염은 손을 씻어서 예방하고. 하지만 과학도 맹신하고 싶진 않았다. 좁은 공간에서는 써야 하는 거 아닌가? 여기 사람들은 그냥 아예 쓰질 않는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독일 친구 왈, 살면서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다고 한다. 나보고 그냥 웬만하면 나가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했다. 조언 고맙다. 근데 내가 너보다는 잘 지키거든...ㅠㅠ 그래도 마스크는 안 써도 집에는 있을 모양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이 사람들한테는 일상에서 마스크를 쓰는 일이 무슨 산소 호흡기 쓰는 것처럼 어색한가 보다. 어떤 한국 사람이 유튜브 댓글로 '미세먼지 덕을 이렇게 볼 줄 몰랐네요. 미세먼지 덕분에 마스크가 익숙해요.'라는 말을 했는데 공감이 가면서 웃픈 일이었다.





2020년 3월 16일 월요일



오늘부터 셧다운 시작이다. 비자가 다음 달이면 만료인데 지금 이 시국에 한국을 오가는 건 아닌 것 같아 비자 연장을 받으러 외국인청에 갔다. 지난 목요일에 오케이 승인을 받았고 오늘 서류만 가지고 가면 되는 날이었다. 아침 7시 40분쯤 도착했다. 대기번호는 70번이었다. 2시간을 넘게 기다렸는데 10시가 되니까 갑자기 어떤 직원이 나와서 뭐라고 이야기를 했다. 주위에 기침하는 사람들 때문에 너무 신경 쓰여서 한참 뒤로 물러나 있었던지라 이야기를 처음부터 듣지 못했다. 아무래도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 같았다. 내가 있던 대기 공간도 집단 감염되기 딱 좋은 조건이었던지라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내 비자 연장을 받지 못했다. 언제 다시 여는지 내일 어떻게 될지조차 지금 모르니 홈페이지를 확인하라고 했다. 정부가 일반 가게들을 닫으라는 셧다운제를 발표하면서 관공서는 어떻게 업무를 진행할지 아직 논의를 마무리하지 못했을 정도로 급하게 진행된 게 보였다. 사람들은 모두 혼란스러워했다. 어떤 사람은 지인에게 전화를 하며 혹시 모르니 다른 외국인청에 가본다고 했다. 나도 그럴까, 잠시 생각했지만 기침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던 것이 너무 찝찝해서 바로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했다. 독일에 온 이후로 가장 화가 나는 순간이었다. 브런치에 분노를 삭이며 글도 썼다. 독일 사람들을 답답해하는 독일 친구와 한참을 독일 사람들 험담(?)을 했다. 친구 말로는 어제 온 놀이터가 아이를 데리고 온 학부모들로 만원이었다고 했다. 학교는 닫으라고 항의하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서 만나는 아이러니함이라니.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들이다. 같이 욕을 하고 나니 속이 좀 풀렸다. 돌아보니 너무 예민했던 것 같다. 불투명한 체류 상황과 앞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 상황과 당황한 모습이 역력해 보이는 독일 정부의 모습과 생계비를 올해야말로 벌고야 말겠다는 내면의 투쟁이 모두 섞였다. 한번 빵 터지고 나니 차라리 덤덤해졌다. 




2020년 3월 17일 화요일



아침 일찍 다시 외국인청을 찾아갔다. 어젯밤 홈페이지에 올라온 기사를 읽었는데 비자 업무는 종료하지 않은 것 같았다. 어제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경비원이 완전 현관문 입구까지 나와있었다. 지금은 긴급 업무만 해결을 해준다고 했다. 비자가 한 달 남았다고 설명을 했지만 그건 긴급이 아니란다. 그래도 나에겐 긴급이라고 하자 그럼 일단 가서 기다려봐라, 하지만 3-4시간 기다려서 들어가도 긴급이 아니라서 처리를 안 해줄 거다,라고 했다. 일단 들어가 봤다. 사람들의 이름을 호명하는 직원에게 다가가 내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려 하니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분이 갑자기 등장해서 자기에게 이야길 해보라 했다. 이야기를 듣더니 내 상황은 긴급이 아니라고 했다. 긴급은 예를 들면 당장 다음 주에 비자가 끝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니 2주 뒤에 다시 와보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며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경비원도 다른 직원도 다 까칠한 사람들만 보다가 고개까지 숙이며 사과하는 외국인청 직원을 처음 만난 나는 당황해서 같이 고개를 숙였다. 한국에서 맨날 하던 건데 독일 와서 고개 숙이며 사과하는 독일인을 보니까 너무 어색했다. 비자 일은 또 해결하지 못했지만, 친절했던 그분 덕분에 기분은 괜찮았다. 친절이 이렇게 중요하다. 


돌아오는 길 집에 바로 가기가 뭐해서 마트에 들렀다. 아침 8시쯤 마트에 와보긴 또 처음이다. 식료품 코너가 듬성듬성 비어있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 덜 채워서 그러려니 했다. 실제로 직원들이 카트를 끌고 와 식료품을 채우고 있었다. 그런데 파스타 코너에 가니 이건 정말 사재기구나 하는 풍경이 내 앞에도 펼쳐졌다. 마트 전체가 텅 빈 것은 아닌데 장기 저장이 가능한 품목들 중 사람들이 자주 사 먹는 것은 텅텅 비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사재기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늘 1주일치 장을 봤다면 이번에는 2주일치 장을 봤다. 계산을 하고 나가면서 작은 사이즈지만 캐리어를 끌고 와서 같은 종류의 식품을 여러 개 꾹꾹 눌러 담는 젊은 독일 여자를 봤다. 주위를 살피면서도 그 여자는 열심이었다. 그렇게 많이 담았는데도 아직 옆에 있는 카트의 절반이 자신을 가방에 담아달라고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 돌아왔다. 마음을 새롭게 먹었다. 상황을 냉정하게 보고 지금 내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을 지키는 데 힘쓰자. 원래 집순이라서 집에 있는 것이 힘들진 않다. 하지만 코로나에 걸리기 전에 코로나 스트레스로 몸져 누을 것 같았다. 과하게 두려워서 사재기를 하거나 하는 정도는 아닌데 괜찮은 것 같은데도 은근히 계속 신경이 쓰인다. 아무래도 지금 내 상황이 맞물려서 더 그렇다. 만약 다음 달에 한국을 가야 한다면, 집도 정리해야 하고 가구들도 정리해야 하는데, 만약 한국에 가지 않아도 된다면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근데 비자 연장을 하려면 2주는 더 기다려야 한다. 거의 한국 가기 직전에 다시 이야기하라는 건데... 이게 더 피곤하다. 생각해보면 언제 내가 내 앞날을 제대로 알고 산 적이 있었나 싶다. 그냥 마음을 놨다. 어떻게 되든, 될 대로 돼라. 난 내 할 일 하련다.




2020년 3월 18일 수요일


코로나에 걸리는 꿈을 꿨다. 

꿈에서 나는 진주성 앞의 다리 위를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기침이 막 나왔다. 온 사방에 사람들이 있었고 거리에는 무슨 행진을 했다. 난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목을 잡고 숨이 멎을 듯이 기침하여 내 주위에 오지 말라고 팔을 휘두르다 잠이 깼다. (어제 마음 비우자고 한 사람 어딨죠?) 


오늘 드디어 독일의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한국의 확진자 수를 넘어섰다. 

독일의 셧다운 정책 이후로 마트가 관공서를 제외하고는 일체 방문을 하지 않았다. 유럽이 본격적인 코로나의 중심지가 되기 전까지 한국의 모습을 지인들을 통해 보고 전해 들으면서도 정말 많이 갑갑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독일이 더 심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한국은 국민이 자체적으로 안 나가는 거라면, 독일은 나가도 갈 곳이 없다. 다 닫혀있다고 보면 된다. 게다가 열려있는 곳이 있다 해도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나 혼자 마스크를 쓰면, 마치 한국에서 다 마스크 썼는데 혼자 안 쓴 사람이 받는 시선과 비슷하다. 프랑스는 더하다. 프랑스 정부는 보건 전쟁을 선포했다. 친구들과 공원 산책하는 것도 금지됐다고 한다. 외출할 때는 본인의 신상과 외출 목적을 적은 외출증 같은 걸 들고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독일은 공원이라도 나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생각하며 공원에 가봤다. 사람들이 많았다. 날씨가 좋아진 탓도 있겠지만, 유독 눈에 띄는 건 헬스장에서 할 법한 운동을 삼삼오오 모여 공원에서 하는 사람들이 전보다 더 많이 보였다. 전신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복싱 연습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마저도 공원에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 집으로 빨리 돌아왔다. 밖이라서 마스크를 안 썼는데도 괜히 사람들 눈을 의식하게 된다. 그리고 나도 사람들과 거리가 좁혀지면 경계심이 생긴다. 

그래도 어제 마음을 다잡은 뒤로 어제부터 오늘까지 평소보다 더 열심히 글을 썼다. 이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이 세상에, 각 나라에, 또 개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인생의 주인으로서 나는 이 위기를 내게 기회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쓰지못했던 글을 이제 정말 마음껏 써보기로. 그리고 전문 블로거로 거듭나 보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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