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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Feb 05. 2020

어디에 있어도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돌아왔다, 독일에. 거의 한 달 만이다.

이번에는 한국에서 연말연시를 보내느라 독일 집을 오래 비웠다. 한국에 있을 때는 독일의 집이 눈 앞에 아른거리고 걱정이었는데(혹시나 곰팡이가 생길까 늘 걱정이었다) 막상 돌아오니 어색했다. 아니, 편한데 어색했다. 편한데 어색하다? 참 이상하고 묘한 기분이었다. 오히려 지난번 한국 방문 후에 돌아왔을 때는 독일이 너무 반가웠는데, 이번에는 이도 저도 아닌 묘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한국에 두고 온 그리운 사람들과 그리운 모든 것이 한참을 내 마음속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녔다.

마치 나는 바닷가에 다리만 담근 채로 서있고, 이따금 커다란 파도가 밀려오면 버텨내지 못하고 이리 휘청 저리 휘청하듯이 마음이 휘청거리는 기분이었다. 바다는 한국이고, 모래사장 앞으로 펼쳐진 이 잿빛 도시가 독일 같았다. 지난번에는 신이 나서 모래사장으로 뛰어들어 갔는데, 이번에는 웬일인지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모든 것에 이유를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또 생각했다. 이유가 뭘까. 왜 지난번과 느낌이 다를까?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는 답이 나올 때까지 이 질문을 머릿속에 계속 입력했다. 가장 첫 번째 이유로 떠오른 것은 '한국 체류 기간'이었다. 나는 이번에 거의 4주라는 시간을 한국에서 보냈다. 다들 '와, 꽤 오래 있네?'라는 반응이지만 나에게는 그 시간도 쏜살같이 흘러간다. 일단은 유럽과 아시아를 왕복하려면 1주일은 짧기도 하고, 매우 피곤하다. 시차 적응을 '제대로' 하는데 보통 1주일 정도가 걸리는데 시차 적응을 하는 동안은 아무것도 안 해도 피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유럽에서 한국을 온다면 (반대도 마찬가지) 2주 정도는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의이다. 하지만 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내게 여행보다는 출장 같은 느낌이 더 크다. 만나야 할 사람도 많지만, 병원 순찰도 돌아야 하고, 처리해야 할 일 또는 한국에 왔을 때 해야 이득인 일 등등이 꽤 많이 쌓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한국에서 두개 도시를 왔다갔다 해야한다. 그래서 한 도시에서 2주씩을 쓰면 4주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 기간을 4주로 정한 것인데, 4주 동안 있었던 건 좋았지만 너무 길었던 탓인지 그 사이 한국에 동화되어서 독일이 어색해져 버렸다. 그래서 독일로 돌아왔을 때, 다시 또 독일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해져 버려서, 시간적인 면에서 상당히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에 한국에 들어간다면 3주를 넘기지 말자고 다짐을 했다.



두 번째는 바로 '계절'이다. 나는 주로 내가 처음 독일에 왔던 3-4월에 한국에 들어갔는데 그때는 한국도 날씨가 좋고, 돌아왔을 때 독일 날씨도 꽤 좋을 때이다. 어디에 머무르든 바깥을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를 얻는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겨울에 한국을 다녀왔는데, 한국도 독일도 딱히 춥지는 않았지만, 한국에서 쨍쨍한 햇빛을 마구 쬐다가 우중추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한 잿빛 하늘의 겨울의 독일로 돌아오니 상대적인 박탈감이랄까, 햇빛을 잃어버린 상실감이 너무 컸다. 이것은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르는 느낌인데, 북독일의 겨울은 밤이 너무 길고, 낮에도 해가 없는 날이 너무 많아 실제로 독일에서 태어나서 사는 사람들도 독일 북부 지역의 이 회색 겨울의 영향으로 정신적, 신체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연말이 되면 그렇게 우울했던가...) 그냥 한국의 흐린 날씨가 아니라, 구름의 틈새도 안 보일 정도로 그냥 하늘 전체가 통 구름으로 덮여 있다. 딱히 불평을 하는 건 아니다. 내가 사는 곳에 대해, 특히 내가 바꿀 수 없는 날씨에 대해 불평하는 것은 나답지 않다. 하지만 대책은 분명 필요한 일인지라 이번에 즐겨보는 독일 웹툰 작가님이 알려준 인공 태양빛을 내뿜는 램프를 사보려고 한다.




그런데 말이다. 한국인이니까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한국에 재빠르게 동화되었다거나, 독일에 돌아오니 겨울이 너무 우울하다거나 이런 건 그냥 아무 쓸데없는 변명거리 같다는 생각이 내 최종적인 결론이었다. 예전에 한국을 다녀올 때면 마음속에 한국에서 불편했던 점, 실망했던 점들을 마음에 담아왔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역시 독일이 좋아,라고. 그런데 이번에는 내 마음이 많이 바뀌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 한국의 좋은 점, 안 좋은 점을 모두 받아들이고, 다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마음을 집중했다. 그랬더니 독일에 돌아와도 한국에서 힘들었던 점보다는 좋았던 점들만 생각이 났다. 그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그렇게 했더니 독일에 돌아온 기분이 예전처럼 썩 좋지가 않았다. 왜냐면 한국에서 나를 행복하게 해 주던 존재들이 여기게 없기 때문이다. 분명히 독일에도 나를 웃게 하고,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 나를 나답게 살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점들이 많이 있는데, 왜 그것을 다시 깨닫기까지 이렇게 시간이 걸려야 하는 걸까?



돌아보니 나는 그동안 너무 이분법적으로 내가 있던 곳(과거)/내가 지금 있는 곳(현재)들을 비교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냥 내가 지금 있을 수 있는 곳에서 그곳의 아름다운 것들을 즐기며 살면 되는데, 지금 내가 있지 '않은' 곳의 흠을 생각하면서, '내가 지금 여기 있는 건 옳은 선택이야.'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는 버릇이 있었달까.



예를 들면 한국에 있을 때도 그랬다. 독일의 안 좋은 점, 예를 들어 우중충한 하늘, 을 생각하며 한국의 파란 하늘을 보며 기뻐했다. 하지만 그냥 파란 하늘을 보며 기뻐하면 됐을 일이다. 굳이 독일의 우중충한 하늘과 비교할 이유가 없었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무의식 중에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모든 것을 비교해 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건 한국은 이렇고, 독일은 저렇고. 이런 식으로. 계속, 계속해서 이건 좋아, 이건 나빠, 이건 좋아, 이건 나빠,라고 습관처럼 모든 것을 평가해 온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문화 차이에서 얻는 '배움'을 얻고자 하는 생각에서 시작된 것었지만, 어느새 그건 내 마음을 갉아먹는 못된 생쥐처럼 변해있었다.




사실이 그렇기도 했다. 3년 전의 나는 한국이 싫어서 독일에 오고 싶었다. 하지만 무언가가 싫어서 하게 된 선택에는 행복이 따라올 수 없다. 이제는 그냥 마음이 편하다. 내가 독일에 있을 때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알고, 내가 한국에 있을 때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확실히 알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한국에 있어도 행복하고, 독일에 있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안다. 그 사실에 깨어있으면 나는 어디에 있어도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나는 늘 그랬듯이 앞으로도 발길이 닿는 대로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그 곳에 내가 살던 곳들을 비교하는 마음은 없을 것이다.




한국에 있어서가 아니라, 독일에 있어서가 아니라, 나는 그냥 지금 여기에, 나라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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