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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Nov 16. 2019

독일 헬스장에서 처음으로
웨이트 리프팅을 배우고 왔다



독일에 와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는 바로 꾸준히 헬스장을 다니고 있는 것이다. 새해 결심으로 작년 1월부터 시작을 했으니 이제 2년이 다 되어 간다. 처음에는 그저 헬스장이라고 하면 그렇게 고개를 절레절레하던 나라는 사람이 헬스장을 꾸준히 다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성취감을 느꼈고 동기부여도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언젠가부터는 시들시들해져 갔다. 언젠가 김종국 씨가 말한 것처럼, 자고로 헬스라는 것은 애인에게 주는 서프라이즈 선물처럼 우리 몸에게 다양한 움직임을 선물해줘야 하는 운동이다. 하지만 걸핏하면 허리가 아프고, 심각한 저질 체력에 끈기가 많이 부족한 나는 늘 내가 아프지 않고 안심하고 할 수 있는 운동을 위주로 제한적인 운동만 해왔다. PT도 없이 혼자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더더군다나 다칠까 걱정이 많이 되었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병원에 갈 일은 되도록 만들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한몫했던 것 같다. 그래서 더더욱 헬스장 안에서 내가 다가가지 못했던 영역이 있었는데 바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공간이었다. 철컹철컹 무거워 보이는 바벨을 번쩍번쩍 들어 올리는 남자들이 수컷 냄새 풀풀 풍기며 근육을 자랑하고 있는 그 공간은 나에겐 꽤나 범접하기 어려운 공간이었다. 한 번은 유튜브에서 보고 따라 하고 싶었던 운동이 그 구역 안에 있는 기구를 이용해야 해서 몇 번인가 사람이 많지 않은 틈을 타 간 적은 있었지만, 주위 사람들의 반의 반도 안 되는 무게로 낑낑대고 있는 내 모습이 왠지 초라하게 느껴져서 괜한 주눅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한 두 번 그 구역을 염탐한 뒤로는 발길을 끊었다. 같은 헬스장을 다니는 남자 사람 친구는 그런 내게 여자들이 웨이트 리프팅에 대해서 더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고, 오히려 그게 더 도움이 되니 더 자주 해야 한다고 했다. 친구는 있는 그대로의 현상과 팩트를 이야기한 것뿐인데, 괜히 나를 겁쟁이라고 여기는 것만 같아 그 당시에는 친구의 그 말이 고깝게 들렸다. 




“그건 그냥 요가 클래스에서는
남자를 보기 힘든 거랑 똑같은 거 아닐까?
유연성도 중요하잖아.”



이렇게 맞받아치는 내 대답에 친구는 내 의중을 읽었는지 더 이상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대화 때문인지, 나는 웨이트 리프팅에 대해 더 마음을 굳게 닫았다. 그리고 반년 정도가 지났을까. 여전히 무리하는 걸 싫어하고 겁이 많은 나는 늘 조심해서 운동을 했고, 덕분에 크게 다치는 일은 없었지만 도대체 내가 얼마큼 나아지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다 며칠 전 팔로우하고 있던 헬스장의 인스타그램에 한 포스팅이 올라왔다. 웨이트 리프팅을 처음 해보는 여성 초보자들만을 대상으로 특별 수업을 연다는 소식이었다. 혼자서 도전할 생각조차 못하던 웨이트 리프팅을 무료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눈 앞에 나타나자 닫혀있던 내 마음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활짝 열렸다. 인원 제한이 있으니 신청을 서두르라는 말에 부랴부랴 이메일을 보냈다. 다행히 늦지 않았는지 참여가 확정되었다는 회신을 받을 수 있었다. 




사실 그동안 이런 클래스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동안은 독일어를 못하니까 가봤자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겠지 라는 걱정과 많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나만 강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게 될 상황이 많이 부끄러웠다. 그래도 이제 조금은 배웠다고 용기가 났다. 그러니까 이번 수업은 독일어로 운동 수업을 듣는 것도 웨이트 리프팅을 하는 것도 모두가 나에게 처음인 도전 같은 한 시간이 될 것이었다.





그렇게 모두들 친구들을 만나러 가기 바쁜 금요일 오후 7시,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헬스장으로 향했다. 데드리프트는 유튜브를 보고 몇 번 따라 해 본 적은 있었지만, 웨이트 리프팅처럼 바벨을 가슴 높이까지 들어 올리는 건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아니, 할 생각도 못했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나이가 드니까 몸을 다치기 쉬워, 위험한 운동을 하면 안 돼’ 라던가, ‘나 분명 제대로 못해서 낑낑거릴 텐데,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하기엔 너무 쪽팔릴 것 같아’라는 바보 같은 생각이 나를 막고 있었다는 게 더 맞는 말이려나.




체크인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운동기구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오늘 수업을 해줄 코치님을 마주쳤다. 이미 사진을 통해 코치님의 얼굴을 알고 있었기에 반갑게 인사를 하고 짧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코치님을 따라 남은 계단을 마저 올라가니, 수업을 받을 장소는 헬스장의 한가운데 Free Style 공간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수업은 따로 별도의 룸에서 진행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일부 수업은 이렇게 헬스장의 모든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다 쳐다보는 뻥 뚫린 공간에서 진행이 된다. 이렇게 수업을 진행하면 헬스장의 분위기에 활력도 더 해주고, 이 수업을 몰랐던 사람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보게 되기도 하고, 여러 가지의 긍정적 시너지 효과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소심한 나는 그냥 거기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부끄러웠다. 이것도 나에게 하나의 벽이었구나. 나는 오늘 이 부끄러움도 이겨내고, 현실 버전 독일어 리스닝도 하고, 웨이트 리프팅도 해내야 하는 것이로구나! (아이고) 




실제 수업을 받았던 공간




처음엔 아주 가벼운 바벨봉을 가지고 기초 자세부터 시작했다. 분명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해주신 말씀들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갔는데, 막상 수업이 시작되니 귀를 쫑긋 세우랴, 들린 말을 해석하랴, 따라 하랴, 정신이 없었다. 못 알아듣는 부분은 그냥 옆 사람을 따라 하면서 어느 정도 맞춰나갔다. 수업에 참여한 사람은 총 6명 정도였는데, 보조 코치님이 한 분 계셔서 두분이서 우리 6명을 한 명 한 명 꼼꼼히 봐주셨다. 내가 못알아 들을 때는 영어로 다시 한 번 설명해주시기도 했다. 제대로 된 동작을 할 때면, “Sehr gut! Das war das! (잘했어요! 바로 그거예요!)”라고 해주시는 칭찬에 나도 모르게 배시시. 칭찬은 고래를 운동하게 한다. 그렇게 당근에 이끌려 홀리듯이 한 단계 한 단계씩 나아가면서 기초 자세를 배우고, 다음엔 중량이 제법 나가는 바벨봉으로 연습을 한다고 했다. 사실 얼마 전 팔운동을 조금 격하게 한 뒤로 오른쪽 어깨가 약간 아파서 오늘 수업에 올지 말지 고민을 했었고, 코치님께도 이야기를 했었다. 코치님은 부담이 되면 바벨봉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날 봐주는 코치님이 있다고 생각하자 또 용기가(?) 생긴 나는 괜찮다며 도전해 보겠다고 했다. 그럼 이걸로 하라며 무거운 바벨봉 중에서도 그나마 가벼운 바벨봉을 건네주셨는데, 좌우에 바벨을 끼우지도 않았는데도 꽤 무게가 나가서 아주 얼굴에 오만상을 찌푸리면서 들어 올려야만 했다. 




난 원래 운동할 때 땀이 안나는 체질인 줄 알았는데(평소에 혼자 운동할 때는 땀을 잘 안 흘림) 자꾸 땀이 주룩주룩 흘러서 물을 마시러 자주 왔다 갔다 했는데, 멀리서 이쪽을 바라보던 어떤 하얀 머리의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그 분은 날 보며 힘내라는 듯 인자한 미소로 웃어주셨다. ‘아 역시 사람들이 보고 있었어. 흑.’이라는 부끄러움과 ‘그래도 응원해주시니 고맙네’라는 감사함도 잠시,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연습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어느덧 50분이 지나고 마지막 남은 10분은 땅바닥에 엎드렸다 일어나서 점프하는 (이름 모름…) 전신 운동으로 마무리를 하셨다. ‘와우…’ 나는 어느 순간부터 실성한 사람처럼 웃으면서도 어쨌든 끝까지 꾸역꾸역 해내었다. ‘한국인의 자존싀임!’이라는 갑분애국심 넘치는 동기부여를 하면서. 




수업이 모두 끝나자 온 몸에 힘이 풀렸다. 다들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수고했다는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러자 내 뒤에서 수업을 받던 분이 다가와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그동안 내가 가져왔던 ‘웨이트 트레이닝 구역’에 대한 벽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활기찬 이미지에 자신을 37세 에디터이자 꿈은 운동 코치라고 말한 그녀는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맞아요. 많은 여자들이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절대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저 공간은 남자를 위한 공간이 아니에요. 여자도 강해질 수 있어요. 전 더 많은 여자들이 저기서 운동을 했으면 좋겠어요. 전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여기서도 대부분의 여자들은 주로 머신 위에서 시간을 보내요. 특히 지루하기 짝이 없는 러닝 머신 말이에요. 유산소만으로는 살을 뺄 수가 없는데 말이에요. (그녀는 최근 22kg를 감량했다고 한다)”






22kg을 뺐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여자들이 운동을 할 때에 스스로 여성과 남성의 사이에서 선을 그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이렇게 밝고 좋은 에너지를 담아 이야기는 하는 그녀와 이야기하는 것이 굉장히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그렇게 우리는 그 자리에 선 채로 한 시간이나 수다를 떨었다. 웨이트 리프팅에서 시작된 우리의 수다는 비건, 베지테리언을 넘어 중국어, 한국어까지 넘어갔다. 그 한 시간을 꽉 채운 수다를 끝내고 굿바이 인사를 하기 직전에서야 통성명을 했을 정도로 참 즐거운 대화였다.






사실 어깨 통증 때문에 오늘 수업에 참여를 할지 말지 하루 종일 고민을 했었는데, 괜찮으니 와서 가볍게 배워보라는 코치님의 말을 듣길 참 잘한 것 같다. 

누군가 나를 비웃기라도 할까 봐 걱정했지만, 오히려 어느 이름 모를 인자한 할머니의 미소를 마주했고,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독일어는 친절하게 영어로 다시 설명해주는 코치의 배려가 있어 뒤처지지 않을 수 있었고, 낑낑거리며 힘들긴 했지만 처음으로 힘겨운 무게를 턱끝까지 올려본 그 순간은 너무나 통쾌했으며,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함께 이 첫 경험(?)을 이겨냈다는 동지애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교감하고, 그중엔 생각지도 못했던 좋은 대화와 함께 헬스장 친구까지 생겼다. (독일 헬스장 출근 약 2년 만의 이벤트?!)







그동안 너무 바쁘게 살아오느라 한국에서는 배우지 못했던 타인과 교류하는 법을 이제야 조금씩 배워간다는 느낌이 드는 함부르크에서의 삶.

여전히 낯을 가리고 새 친구를 사귀는 일은 어렵지만, 이렇듯 불현듯 찾아오는 기분 좋은 만남들이 참 좋은 도시라는 생각에 오늘 밤도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뭐 물론 내일 다가올 근육통은 조금 두렵지만...

내 근육들아, 화이팅!












글: 노이

커버 이미지: Photo by Danielle Cerullo on Unsplash

본문 이미지: picsandplan Architektur - Fotograf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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