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이의 유럽일기 May 21. 2020

독일어 시험 공부를 하다가 의식의 흐름대로 쓴 일기



지금 나는 테스트다프라는 독일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독일어 시험 중에서는 쉬운 편에 속한다고 해서 골랐는데도 어려워서 죽을 맛이다. 살면서 시험을 준비하는 건 토익이 마지막이길 바랬는데, 나는 또 시험이라는 걸 준비하고 있다. 독일어 공부는 영어나 일본어보다 훨씬 어렵다. 그래도 공부하는 재미가 있다. 그것은 비단 새로운 언어뿐만이 아니라 독일 사람들이 어떤 주제를 어떻게 다루며 살아가는지를 엿볼 수 있는 순간들이 종종 찾아오기 때문이다. 영어 공부를 하던 더 어린 시절에는 영어 공부에 대한 반감이 너무 강했던 탓인지 아니면 너무 어려서 였는지 어려운 독해 지문들은 그저 시험을 위해 준비된 ‘가짜 글’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읽었던 모든 지문들은 그저 문제를 풀기 위해 읽어야 할 ‘과제’였을 뿐 그 지문안에 들어있는 내용에 대해 의식적으로 관심을 가졌던 적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독일어를 공부하면서는 독해에서 읽는 지문이나 쓰기에서 나오는 토론 주제들이 상당히 흥미롭게 다가온다.



오늘 쓰기 문제를 풀면서 나왔던 주제는 ‘제2외국어’에 대한 주제였다. 글로벌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기 위한 ‘외국어 학습’에 대한 니즈는 독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더 열성적인 느낌. 사실 독일에 와서 놀랐던 것이 모국어를 제외하고도 외국어를 3~4개 하는 사람들을 드물지 않게 보게 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유럽 연합 국가들은 단순히 이웃하고 있는 나라가 아니라 국경과 화폐를 공유하는 또 하나의 국가로서 살아가고 있으니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배우고 교류하는 일이 훨씬 더 많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현상인 듯도 했다. 우리나라야 주위에 일본과 중국이 가장 가까우니 그 두 언어를 가장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지만, 유럽은 워낙 많은 나라가 함께 하다보니 제2외국어를 어떤 것을 골라야 하는지가 부모의 고민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독일에서도 가장 많이 배우는 제2외국어는 당연하게도 영어가 가장 압도적으로 많다. 다음은 프랑스어, 그 뒤는 라틴어나 러시아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이 있는데 최근 몇년 동안은 중국 경제의 급성장으로 중국어에 대한 관심도 상당히 높아졌다고 한다. 아이들은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학교를 다닐 때 기본적으로는 외국어를 2개씩 공부하는데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를 통틀어서 총 3~4개의 외국어를 배우게 된다. (실제 구사 능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유치원때부터 외국어를 가르치는 곳의 비율은 아직 그렇게 많지는 않다고 한다. 그 중에 외국어를 함께 가르치는 유치원은 각 반마다 선생님을 2명을 배치하여 한 선생님과는 독일어로(즉, 그들에게는 모국어) 다른 선생님과는 외국어로 대화하도록 가르친다고 한다. 외국어 교육을 겸하는 유치원을 운영하는 어느 선생님 말로는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외국어를 접해야 더 부끄러움이나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어 효과적이라고 한다. (이 선생님의 개인적인 의견) 이 선생님의 인터뷰가 인상깊었던 것은 그 곳에서는 무조건 영어만 먼저 가르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직 초등학교도 안간 아이들이 영어가 무엇이 중한줄 알아서 영어를 진득하게 배우겠는가? 아이들의 출생 배경과 환경에 맞춰서 아이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외국어, 실제로 써볼 수 있는 외국어 위주로 교육을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이민 가정인 경우 독일에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아랍계열의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는 첫번째 외국어로 아랍어를 배우게 한다. 독일 아이라면 실제로 방학 때 놀러가서 직접 들어보고 사용해볼 수 있는 언어, 그러니까 가까운 프랑스나 네덜란드, 체코 등의 언어를 위주로 가르치는 식이다.




아무튼 오늘 쓰기의 주제는 모든 대학 졸업생들이 2개의 외국어는 ‘매우 잘하는 수준’으로 졸업하도록 해야한다는 주장이었는데, (문제를 위해 제시된 주장일 뿐 실제 독일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아니 독일어도 힘들어 죽겠는데 2개라니요.’ 보자마자 반감이 들었지만, 어느 덧 3번째 외국어를 배우고 있는 나를 보고 있자니 그것이 그렇게 말도 안되는 일은 또 아닌 것 같다. ‘매우 잘함’의 기준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기왕 배운 외국어 실생활에서도 쓸 수 있는 만큼 실력을 높여놓아서 계속 쓸 수 있다면 정말 더할 나위 없는 자산이 된다.




하지만 단지 취업을 위해서 외국어를 2개, 3개씩 배워야 한다면 너무 힘든 일이다. 나는 지금까지 외국어 공부를 그냥 좋아서 아니면 필요해서 해왔지만, 솔직히 요즘 내가 공부하는 독일어 단계가 너무 어렵게 느껴져서 ‘아니 꼭 독일어 배워야 하나? 내가 이걸 꼭 해야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런 마인드를 컨트롤 할 겸, 독일어 공부도 유지할 겸, ‘외국어를 배우면 좋은 점’을 독일어로 찾아봤다. ‘더 많은 취업 기회, 해외에서 생활해볼 수 있는 기회’ 등등 장점이 많긴 많지만, 그 이야기들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우리가 진절머리 나도록 듣고 있으니 직업과 학업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좋은 점들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봤다. 그리고 의외랄까,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장점을 발견했다. 그건 바로 자신감, 그리고 건강이다. 외국어를 하나만 하는 사람보다 더 많이 하는 사람들이 치매에 걸릴 확률이 낮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어렴풋이 들어봤던 것도 같다. 어려운 외국어를 배우고 학습하고 사용함으로써 우리는 뇌세포를 자극하여 우리 몸을 더 건강하고 생기있게 만들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 공부만 한다고 앉아있으면 허리가 나가므로 주의. 이것은 좀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그리고 외국어 실력이 향상되어 갈 수록 자신감을 얻게 된다는 것도 의외의 장점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이 독일어 공부가 내 건강을 망치고(허리가 너무 아팠고 앉아만 있으니 더욱 확찐자가 됨) 너무 어려운 독일어 공부 때문에 자신감을 더 잃게 한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하기 나름이었던 것이다. 미친듯이 머리를 써서 머리가 하얗게 불탄 기분은 내 뇌세포들이 열심히 운동한 뒤에 오는 나른함이었던 것이고, 내가 못하고 있는 저 높은 목표만 바라보면 지금 내 모습은 초라하지만, 독일어의 알파벳도 제대로 몰랐던 내가 지금은 기사를 읽고 반의 반이나마 내용을 추측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뿌듯한 일인지.



결론은 나는 지금 잘하고 싶어서 아둥바둥 거리는 독일어를 모국어로 쓰는 이 독일 사람들도 또 영어니 프랑스어니 중국어니 하는 다른 제2외국어를 3개, 4개씩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세상이 그렇게 불공평하지는 않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만큼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독일도 또 다른 종류의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와 취업 스트레스로 다들 고군분투하고 사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정작 우리나라 인력이 세계에 나갔을 때, 우리는 영어 하나 잘하기도 벅차 할 때 저들은 3개국어, 4개국어를 하고 있다면 조금 긴장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자, 그러니까 더 열심히 독일어를 공부해야겠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내일부터.)

매거진의 이전글 독일 산책길에 예쁜 뱀이 나타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