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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May 11. 2020

독일 산책길에 예쁜 뱀이 나타났다




독일은 한 때 하루에 몇 천 명에 이르는 코로나 신규 확진자수를 기록하다가 거의 나라 전체를 폐쇄한 것이나 다름없는 엄격한 락다운 정책을 실시하면서 지금은 600-700명대로 많이 줄어들었다. (지금은 조금씩 규제가 완화되고 있다.) 우리나라에 비하면 적은 숫자라고 볼 수는 없지만 어설픈 대처로 상황이 더 나빠진 미국이나 영국에 비하면 발빠르게 잘 대처한 편에 속한다. 길거리 모든 상점, 식당, 카페가 문을 닫고 갑갑하게 지내는 시간이 어느 새 두 달이 다 되어간다. 처음에는 마스크를 거들떠도 안보던 사람들도 이제는 의무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놀라운 변화와 공원 벤치에 친구와 둘이 캔맥주를 들고 앉아 캔맥주의 입구에 소독제를 뿌리던 젊은 사람들이 기억에 남았던 날들. 그런 답답한 생활 속에서 그나마 사람들이 할 수 있었던 건 신선한 공기를 쐬며 산책을 하고 달리기를 하는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하루에 한 번 정도 가까운 공원에 나가서 30분 정도 걷다 오는 것과 장을 보는 것 외에는 정말 집에서만 지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며칠 전에도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는데 눈에 확 띄는 무언가가 있었다. 형형색색 물감이 그려진 돌들이 나란히 놓여져 있었다. 집 근처 유치원 담벼락에서 봤던 돌들과 비슷했다. 그때는 그저 유치원생들의 숙제였나라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옆에 안내문 같은게 함께 놓여져 있었다. 









사람들은 이 예쁘게 칠한 돌들을 Steinschlange, 즉 '돌뱀'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Stein은 독일어로 돌, Schlange는 뱀을 뜻한다. 의도는 이러했다. 코로나로 힘든 시간들을 보내는 사람들을 위한 응원의 메세지이자, '함께함'을 보여주는 의미랄까. 왜냐면 이 '돌뱀 캠페인'의 시작은 학교에 갈 수 없어 심심했던 한 소년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소년과 소년의 엄마는 각자 돌에 좋아하는 그림이나 응원하는 마음을 담은 그림을 그려서 메세지와 함께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산책길에 놓아두었다. 코로나로 힘든 시간을 응원하는 글과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다는 조건과 함께 말이다.








소년의 어머니는 친구들과 나가서 뛰어놀 일이 많이 줄어들어 집에서 심심하게 보낼 다른 아이들에게도 재밌는 일이 될 것이라 생각했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잠깐이나마 웃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다는 것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인터뷰 출처)




소년이 만든 돌 3개와 소년의 어머니가 만든 돌 5개. 그렇게 10개도 되지 않는 돌로 시작한 이 캠페인은 지금 약 300개가 넘어가고 있고 독일 전역으로 퍼져 내가 사는 함부르크까지 건너왔다. 








때마침 얼마 전 있었던 부활절을 평소처럼 즐기지 못한 아쉬움도 모두에게, 특히 아이들에게 남아있었고, 계란에 그리던 그림을 돌에 그렸다는 아주 쉬운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것도 사람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게 만들었다. 

머리가 다 자란 내가 봐도 이렇게 찡하고 뿌듯한데 자기가 그린 돌이 이 길다란 돌뱀을 만들어내는 일부가 되었다는 체험이 얼마나 아이들에게 인상깊은 추억으로 자리잡을지 상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내가 그린 돌도 하나 얹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돌도 물감도 없어서 너무나 아쉬웠다. 평소 간간히 인스타로 근황을 보곤 하는 인친님도 아들과 함께 돌에 예쁜 그림을 그려 또 하나의 예쁜 돌뱀을 만들고 있는 소식도 보이는 걸 보니, 정말 독일 전역으로 퍼진 모양이었다. 그저 집에만 있기 심심했던 8세 소년의 아이디어 하나가 컬러풀하지 '않기로' 유명한 독일의 풍경을 알록달록 물들이고 있다. 하나하나 또 돌들이 어찌나 예쁜지 다 모아서 전시회를 열어도 되겠다 싶을 정도였다. 밖에 나가 뛰어놀지 못해 답답해 할 아이들이 힘든 시간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좋은 경험이 되길 바래본다.









ps. 오늘도 달팽이 손님 한 마리가 길을 건너는 것을 도와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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