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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May 31. 2020

코로나 이후 독일 카페의 바뀐 모습들

두 달 반만에 처음으로 카페를 찾았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한국에 또는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지인들이 혹시나 이 지독한 바이러스에 고통받고 있지는 않는지 서로 안부를 주고받고는 한다. 다행스럽게도 내 가족과 친구들은 모두 건강하지만, 어느 나라에 있든 ‘평범했던 일상’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심리적인 고통은 누구도 피해갈 수가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온도차가 느껴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나라마다 제한 정책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뉴스를 통해 독일 코로나 상황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던 독일어 과외 선생님에게 (나는 독일에 있고 독일어 과외 선생님이 한국에 있는 아이러니함) 내가 독일의 코로나 락다운으로 인해 느끼는 고충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선생님은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말로 나를 위로했지만, 독일에서 바라보는 내 눈에는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자발적이고 민주적으로 바이러스에 잘 대처하고 있는 나라이며, 그래서 독일과는 또는 유럽과는 상황이 꽤 다르다. 심지어 어떤 친구는 내게 혹시 독일에서 한국 드라마를 촬영한다는 소식을 들은게 있는지 물어왔다. 국경을 다 막은 마당에 과연 한국 드라마 촬영팀이 독일에 입국이나 할 수 있을지 나로선 상상이 안가는 일이었지만, 비교적 자유로운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는 혹시나 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역시 실제로 그 상황에 있지 않는 이상 그 곳의 상황을 이해하긴 어렵구나 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물론 나도 한국의 상황을 지인들의 이야기와 인스타그램, 뉴스들로 전해들을 뿐 온전히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마스크를 쓰고서라도 어디든 갈 수 있는 한국은 조금은 숨통이 트인 것 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었다. 어쨌든 한동안 99% 집에만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이야깃거리가 없었는데, 얼마 전 부터 조금씩 제한이 풀리기 시작해서 두달 반 만에 외출다운 외출을 했다.






독일의 락다운 정책은 한국보다 강경했는데, 쉽게 생각하면 생필품을 사야하는 마트를 제외하고는 전부 다 아예 문을 강제로 닫게 했다고 보면 된다. 놀이터에는 들어갈 수 조차 없었고, 규정뿐만 아니라 실제로 경고문이나 빨간색 흰색의 테이프가 붙어있었다. 많은 식당, 카페가 문을 닫았고, 쇼핑몰이나 옷가게 등도 모두 문을 닫았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밖에 나가도 갈 곳이 없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한국처럼 카페를 가는데 마스크를 쓰거나, 헬스장을 가는데 마스크를 쓰거나 하는 선택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도시 전체가 문을 걸어잠근 분위기였다. 그것이 거의 두 달이 넘게 계속 되었었다. 그러다보니 인권의 기본적인 자유를 침해한다며 락다운 정책을 반대하는 시위도 빈번히 일어날 정도였다. 락다운 규정을 지키지 않아 벌금을 내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그래도 처음 한 달은 그럭저럭 버틸만 했는데, 두 달이 되어가니 점점 힘이 들었다. 이러다간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고독사를 하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 그러다가 독일도 처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면서 신규 확진자 수가 많이 줄어들었고 (그래도 한국에 비하면 여전히 많다)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서서히 정책을 완화하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그리웠던 것은 두 말 할 것 없이 ‘카페’ 였다. 거의 지난 두 달 간 카페들은 문이 닫혀 있거나 제한적으로 테이크 아웃으로만 커피를 살 수 있었다. 가끔 비자 때문에 센터에 나갈 때 자주 가던 카페들을 들여다보면, 의자는 모두 테이블 위에 얹어져 있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빨간 테이프가 붙어있었다. 무언의 강력한 신호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다 일주일 전쯤 위생 정책을 지킨다는 조건 하에 착석이 허용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럼에도 모든 카페가 다 문을 연 것은 아니었고, 나 또한 방문이 조심스러웠다. 거기다 한국에서 이태원 클럽 뉴스가 들려왔기에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반드시 집을 나가야 겠다고 결심했다. 그동안 참아왔던 윗집에서 나는 소음이 오늘은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평소 자주 가던 카페를 찾아가서 위생 관리 상태를 보고 카페에서 공부할지 말지를 정해야겠다 마음먹고 자전거를 타고 센터로 향했다. 일전에 두어번 외국인청에 가느라 나왔을 때는 텅텅 비어있다시피 했던 길거리가 오늘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아무래도 식당과 카페가 착석이 가능하도록 바뀐 것과 아주 오랜만에 20도나(!) 되는 따뜻한 날씨가 이유인 듯 했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 늦게 오는 기분. 함부르크는 아직도 기온이 20도까지 올라가는 날이 드물다.)









실내에서 안전 거리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어디든 한 번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고 그러다보니 인원수 제한이 생겨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던 스트리트 브랜드 옷가게 앞에도 마치 샤넬 매장 앞처럼 사람들이 입장하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사람들이 쇼핑을 하러 많이 오는 길거리에 손소독제가 비치되어 있기도 했다. 실내에서의 마스크 착용은 의무화되어 있지만, 야외에서는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밖을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거의 절반 이상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며 조금 걱정이 되었다. 아무리 안전 거리를 지키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지키기 힘든 상황이 생기기 마련인데 사람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 했다. 게다가 이 곳 사람들은 대부분 장소에 상관없이 일반 마스크를 착용하는 비율이 더 많은 것 같아 좀 더 걱정이 되긴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활기를 띤 시청 앞 풍경을 보자니 웬지 조금은 예전의 그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땐 정말 몰랐는데. 이런 풍경이 이토록 소중하게 느껴질 줄은.








어쨌든 나는 장당 2만 5천원을 주고 산 비싼 KF94급의 마스크를 쓰고 (아껴왔던 마스크를 카페 방문을 위해 특별히 뜯었다) 내가 가장 애정하는 카페 중 한 곳을 찾았다. 코로나 락다운 기간의 장점은 많은 곳들이 부담없이 공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이 카페도 여러가지 보수 작업을 한 듯 했다. 올라가는 계단의 색깔도 바뀌고 반짝반짝 빛이나고 있었고, 로고는 초록색에서 실버로 색깔이 바뀌어 있었다. 원래는 아름다운 풍경이 훤히 내다보였던 통유리창에는 블라인드가 새로 달려있었다. (예쁜 뷰가 가장 매력 포인트인 곳이었는데 햇살이 너무 직사광선이라 앉아있는 손님들에겐 힘들긴 했다. 그래도 많이 아쉬웠던 부분...)












코로나 전까지는 원래도 사람들이 늘 북적거리는 곳인데다 제한이 풀린 지금도 착석이 가능한 카페는 많지 않아 사람들이 이곳으로 다 몰려있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날씨가 좋아서인지 실내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주문을 하기 위해 줄을 서있다가 옆테이블을 보니 초록색 종이 테이프 같은 것이 붙어있다. 이게 무엇인고, 1초 고민을 하다가 ‘아, 착석 금지 테이블 표시구나’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자체적으로 손님들간 간격이 1.5미터 이상 띄워지도록 세팅을 해야한다는 것이 뒤늦게 생각났다. 그동안 기사로만 봤지, 실제로 식당이나 카페 안에 들어온 것이 처음이라 신기했다. 찬찬히 둘러보니 이 카페는 실제 수용할 수 있는 손님 수의 거의 절반 이하를 제한하고 있었다. 최대 수용 가능 인원은 12명 정도. 일단 안심이 되었다. 평소라면 가장 경치가 잘보이는 자리를 찾았겠지만 오늘은 가장 구석진 자리를 맡아두고 주문을 하러 갔다. 당연히 손님들도 카페 직원도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커피와 간식거리 하나를 주문했는데, 직원이 작은 종이를 주며 이름과 내 주소, 연락처 등을 적어달라고 했다. 혹시나 특정 가게에서 전염이 발생했을 경우, 감염 추적을 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내 정보를 적어서 건네주자 직원은 그 종이를 반으로 접어서 뒷면에 내가 방문한 시간을 기록했다.











커피가 나오길 기다리며 픽업 코너 옆에 섰다. 원래는 일회용 빨대, 냅킨, 설탕 등으로 꽉꽉 채워져 있던 통이 텅텅 비어있었다. 손님들간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두 안으로 넣어버린 듯 했다. 늘 투명한 유리잔이 꽉 차 있던, 자유롭게 물을 마실 수 있던 곳도 컵은 모두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카페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구나라고 판단한 나는 카페에서 못다한 공부며 글을 쓰기로 했다. 늘 북적거리고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시끄러울 정도였던 곳이 너무나 조용했다. 게다가 원체 규모가 큰 카페가 아니기에 화장실을 갈 때마다 사람들과의 안전 거리를 두기 위해 신경을 써야했기 때문일까, 편안해야 할 카페에서의 시간 속에 왠지 모를 긴장감이 맴돌았다. 하나하나의 작은 변화들이 당연한 조치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늘 방문하던 예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위화감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와 디저트를 받아들고 테이블에 앉았을 때는 마치 밀물 파도처럼 묘한 기쁨과 설렘과 감동이 밀려왔다. ‘그래, 이거지. 이 기분이지.’ 마치 오래오래 그리워하던 옛 연일을 만난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인간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고, 그 중에서도 나는 적응을 잘 하는 동물이라 처음에는 허전하게 느껴졌던 카페 분위기도 어느 덧 차분하게 집중하기 좋아서 금방 마음에 쏙 들어버렸다. 한참을 공부를 하고 있는데 더 좋은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창가 자리가 비었다. 평소 같으면 바로 그 곳으로 옮겨갔을테지만, 다른 사람이 자리를 뜬지 얼마 안된 자리라 앉을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보기 드문 아주 희귀한 풍경(?)이 내 앞에 펼쳐졌다. 손님이 나가자마자 직원이 소독제와 행주를 들고와서 그 사람이 앉았던 테이블을 깨끗이 닦았던 것이다. 이게 무슨 희귀한 풍경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독일 카페의 평소 위생 관리는 아주 비위생적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깨끗하게 관리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서비스직에서 일했던 경험에 비추어 관찰해 봤을 때 독일에서 일반 서비스직에서 종사한다는 건 한국보다 좀 더 프리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었다. 뭐 전체적인 비교를 하기엔 너무 내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것이니 그 부분은 배제한다고 하더라도, 이 카페를 그동안 수없이 다니면서 이렇게 깨끗하게 테이블을 닦는 모습을 처음 봤다. 물론 오픈 전후에는 그렇게 닦겠지만, 영업중에는 크게 눈에 띄게 더러운게 묻은 게 아니고서야 사람들이 두고 간 컵 정도만 치웠지 테이블을 이렇게 꼼꼼히 닦은 적은 거의 없었다. 덕분에 테이블이 아주 반짝반짝 광이 나고 있었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리를 옮기지 않았는데, 그래도 오랜만에 온 김에 바깥 풍경 사진을 찍고 싶어서 잠깐 그 자리에 가서 사진만 찍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랬더니 직원이 와서 닦은지 얼마 되지 않은 그 테이블을 또 한 번 닦았다. 아마 내가 그 자리에 다녀갔기 때문인 듯 했다. 딱히 테이블에 앉거나 손을 대지 않았는데도 아주 철저히 관리하는 모습이었다. 괜히 직원이 일을 두 번 하게 만든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꼼꼼한 그 모습에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테이블을 이렇게 닦아주는 건 코로나가 사라진 후에도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럴리는 없을 것 같다.











그렇게 그리웠던 근 두 달 만의 카페 타임을 카페가 문닫기 직전까지 즐기고 나서야 나는 미련없이 집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거리는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한국의 맛집 앞에서나 보던 긴 줄을 옷가게, 신발가게 앞에서 보는 기분은 여전히 적응이 되질 않는다. 오랜만에 헬스장을 찾은 헬스장 매니아 친구도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고 했다. 비록 탈의실도 이용할 수 없고, 샤워도 사우나도 할 수 없는 반쪽짜리 헬스장이 오픈되었지만, 오랜만에 원하는 만큼 마음껏 운동을 했다고 한다. 클럽이나 술집은 여전히 모두 문을 닫은 상태이다. 독일에 이렇게 많이 확산되었던 가장 커다란 이유가 오스트리아 스키장의 술집이었기 때문에, 클럽이나 술집은 아마 가장 나중에 열게 될 최후의 마지노선이 아닐까 싶다. 이런 걸 보면 한편으로는 차근차근 잘 대처해나가고 있는 독일 같은데 다음주 부터 야외 풀장이 오픈된다는 소식은 조금 아이러니하다. 거기다 다음주에는 오랜 기간 준비한 독일어 시험을 보기 위해 라이프찌히로 가야한다. 한참 전에 예매한 시험이라 그 때는 상황이 이렇게 될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는데. 2월에 끝날까, 3월에 끝날까 하던 이 시간은 5월말이 되도록 끝나질 않는다. 라이프찌히는 함부르크에서 기차로 대여섯시간 걸리는 먼 곳이라 어쩔 수 없이 1박을 하고 와야해서 걱정이 되지만, 최대한 조심히 다녀오려 한다. 오늘의 외출은 라이프찌히로의 여정에 대비한 예비 연습으로 적당하지 않았나 싶다. 그 곳에 가서도 전부다 문을 닫아서 밖에서 갈 곳 없이 헤매야하면 어쩌나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오늘처럼 카페 한 구석 자리는 차지할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다행이다.













지금 이 시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가지 이유로 힘든 시간이지만, 내가 아무 걱정 없이 누릴 수 있었던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절절히 깨닫는 경험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일인지를 생각해보면 힘든 내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드는 듯 하다. 두 달 전까지는 그 날이 제일 힘든 날인줄 알았는데, 지금 이 상황에 비하면 그건 너무 감사한 날이었고 전혀 힘든 날이 아니었던 것처럼, 오늘 하루도 나중에 돌아보면 내가 아직 가진 것들이 많은 감사하고 소중한 날들일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더 힘을 내봐야지. 툭툭 털고 계속 걸어봐야지. 가만히 앉아있으면 계속 이 곳에 머무르겠지만, 한 걸음이라도 걷다보면 이 또한 지나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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