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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Jun 01. 2020

영어로 일하다 생겼던 웃픈 이야기 하나

불금이라고 말하고 싶었을 뿐인데 19금이 되었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으면서 더 잘 알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어려운 것이 있다. 바로 ‘커뮤니케이션’이다. 평생을 매일 같이 써온 모국어이지만 여전히 나는 표현의 어려움에 부딪치고 종종 누군가에게 뜻하지 않은 오해를 만들면서 살고 있다. 하물며 남의 나라 말을 쓰다 보면, 그런 일이 더 자주 일어나기 마련이다. 서로가 잘 아는 쉬운 표현이라도 상황에 따라 오해가 생길 때가 있고, 혹은 상대의 표현을 내가 잘 몰라서 액면 그대로 이해해서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또는 내 마음대로 만든 표현으로 상대방을 당황케 하기도 한다.


최근 한 독일인 친구와 정말 사소한 오해로 서로 기분이 상하는 일이 있었다. 예전에는 함께 일했던 동료지만 지금은 가장 친해진 친구인데 서로 표현이 솔직하고 직설적인 편이라 종종 오해가 생긴 적은 있었지만, 이번 일은 정말 서로 전혀 의도하지 않은 아주 사소한 일로 둘다 오해를 했고, 분위기가 생각보다 많이 안좋아지기까지 했었다. 예전의 우리였다면 며칠 정도 서로 연락을 하지 않았겠지만, 이번에는 서로가 생각해도 아무 것도 아닌 일이었던지라, 다행히도 생각보다 금방 오해가 풀렸다. 그리고 우리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서로를 이렇게  인정해야 했다.







우리 진짜 커뮤니케이션 못한다, 그치 ㅋㅋ







사실 그 친구는 내가 지금까지 겪어본 회사 상사, 동료를 모두 포함해서 가장 스마트하고 말을 잘하는 친구다. 독일인이지만 영어도 아주 잘하고, 다소 깐깐할 때도 있긴 하지만, 의견을 제시할 때는 늘 논리적이고 업무에 감정을 이입하는 법이 없었으며, 팀장이었지만 직위를 이용해 업무를 처리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고 늘 업무 자체의 타당성을 두고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이유들로 오랜 시간 리스펙트해왔던 친구였는데도 업무와 사생활은 역시 다르기 때문인걸까, 우리는 그 날 정말 커뮤니케이션 바보였었다. 그 날 이후 우리는 ‘오해’에 대해 더 자주 언급하게 되었다.






내가 ‘또’ 오해한거 아니지?







그래서 오늘은 그 친구와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던 그 시절, 영어로 일을 하면서 생겼던 너무 부끄럽고 당황스러웠던 에피소드 하나를 공유해볼까 한다.





당시 내가 일하던 회사는 독일계 회사의 한국 지사였고, 나는 독일 본사로 장기 출장을 나와있는 상태였다. (지금 내가 독일에 와있는 가장 큰 계기가 되어준 곳!)

독일 게임 회사들은 매주 목요일 저녁에 ‘맥주 파티’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다니던 회사도 목요일마다 직원들이 회사 키친에서 맥주를 거의 무제한으로 가져와 마실 수 있었다. 나도 현지 동료들과 더 친해지기 위해 정말 급한 일이 있는게 아니면 목요일 저녁 1층 야외 로비로 내려가 함께 맥주병을 부딪치곤 했다. 그 날은 웹사이트에 수정 사항이 생겨 웹팀에 업무 요청을 해둔 상태라 맥주병을 들고도 계속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이메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이슈가 별일없이 해결되었다는 연락이 왔고, 남은 건 웹사이트에 반영만 하면 되는데 언제 하면 좋을지 일정을 정해야 했다. 당시에는 웹사이트가 불안정해서 무언가를 수정하면 또 다른 오류가 생기는 일이 많았다. 빠르면 다음 날인 금요일 수정할 수도 있었지만, 그랬다가 문제가 생기면 주말까지 이어질 수 있어 리스크가 있었다. 그 정도 리스크를 감수할만한 오류 수정은 아니었던지라 그 다음 주 월요일에 수정 사항을 반영하자고 결정을 내리고 간단히 답장을 적었다. 당시 다른 팀에 비해 웹팀이랑은 워낙 많이 친했던지라 평소의 나답지 않게 내 나름의 농담을 덧붙였다. 메일 분위기는 대충 이랬다.







- 수신인: Web team (개발자 한명에게 답장을 하고, 웹팀의 다른 직원들에게도 모두 참조가 걸린 상황, 즉 내 이메일을 웹팀 전체 5-6명 정도가 보는 상황이었다)


- 메일 본문: Let‘s fix it next Monday. Because tomorrow is Hot Friday Night!

(내가 하고 싶었던 말: 내일은 불금이니까 다음주 월요일에 고쳐요!)






평소라면 그냥 다음주 월요일에 해요, 라고 했겠지만 한국의 표현인 ‘불금’을 전파하고 싶었던 마음이 갑자기 어디선가 솟아났는지, 나는 내 나름대로 불금을 번역해서 ‘Hot Friday Night’이라고 적었다. 간단한 메일이었고 추가로 논의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 아무도 답장이 없었다. 그리고 나서는 맥주 파티로 흥이 오른 몇몇 동료들과 함께 번화가로 나가 다른 술집에서 2차로 술을 마시기로 했다. 앞에 말했듯 웹팀 사람들과는 전부 친했어서 같이 가기로 한 사람들 중에는 웹팀 동료도 두 명이 있었다. 그 중 한 명과 지하철 옆자리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이 친구가 갑자기 내가 두어 시간 전에 보낸 이메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다.




(독일인 동료와 나눈 대화였으나 편의상 한국어 사용)




“있잖아. 너 아까 이메일 보낸 거 무슨 뜻인지 알고 보낸 거야?”



“응? 내일 금요일이고 주말에 다 쉬고 싶을테니 이슈 생길까봐 월요일에 하자고 한건데. 왜?”



“ㅋㅋㅋㅋㅋㅋ 아 미치겠다”



“엥? 왜? 나 뭐 실수했어?”



“아니 이게 실수를 했다기보다는... 아 뭐라고 해야 되지. 너 왜 Hot Friday Night 이라고 한거야?”



“아~ 그거 재밌지? 한국에서는 금요일을 불금이라고 하거든. 그래서 써봤어.”



“아 그랬구나 ㅋㅋ 아니 그게... 영어에서는 보통 거기서 Hot을 쓰면 좀 섹슈얼한 의미를 가지거든 ㅋㅋ”



“(완전 당황) 진짜????????”





그랬다. 섹슈얼한 영어 표현에는 능숙치 않았던 나는 hot이 Friday Night과 만났을 때 그런 의미를 가지리라곤 전혀 생각치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친구 말로는 ‘Hot’이 ‘Night’이라는 표현을 만나면, 예를 들어 뭐, 뜨거운 밤을 보낸다는 그런 의미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전부 다 남자 직원 밖에 없는 웹팀 전체에 답장하는 이메일에 ‘내일 나는 뜨거운 금요일 밤을 보내야 되니까 월요일에 고쳐요’라고 했던 것. 아무리 친분이 있는 사이라고는 하나 친구가 아닌 동료들이었던지라 나는 너무나 부끄러워서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말 부끄러움을 넘어서서 못난 내 영어 실력에 자괴감이 든 나는 급 침울해졌다. 축 쳐진 나를 보자 내게 그 얘기를 해준 동료가 오히려 당황하며 그 상황을 본인이 수습(?)하기 시작했다.




“아냐 괜찮아. 그게 중의적인 의미라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 우리팀 사람들 대부분 다 순수해서 그렇게 안 읽었을 거야. 나랑 필립만 음흉해서 그렇게 읽고 우리끼리 웃은거야. 우리가 더티 마인드인거지 니가 실수한게 아니야.”





그 때는 그 말이 내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고, 나는 아마도 그 날 평소보다 맥주를 더 많이 마셨던 것 같다. 그때는 마치 부족한 내 영어 실력이 들통난 것도 같고, 이상한 직원으로 비춰졌을 까봐 진심으로 너무 창피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글을 쓰면서도 계속 웃음이 나는 재밌는 추억이 되었다. 그리고 음흉한 그 두 동료와는 여전히 친구로 잘 지내고 있는 걸 보면 나도 사실 그렇게 순수하지만은 않은가 보다.







추신. 영어에서 불금을 의미하는 올바른 표현은 ‘Friday night out’이라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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