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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Feb 21. 2017

이건 훔쳐보지 마세요

부끄러우니까

 어젯밤부터 불현듯 찾아온 불안님과 무기력님을 등에 업고 조금은 우울한 얼굴빛으로 집을 청소했다. 2017년 2월의 시점에서 나의 가장 소중한 벗인 친구 M이 오랜만에 우리 집을 찾아오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거기 누가 있었냐는 듯, 내게 찾아온 불청객을 가볍게 멀리 날려 보내 주었다.

 내가 나의 불안과 무기력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그 시간들이 너무 좋아서 짧게 기록으로 남기려고 한다.


#8시간 동안 술 없이 수다만 떨기


 3시, 4시, 5시... 세어보니 8시간 동안 끝도 없이 수다를 떨었다. 친구가 웬일로 집에 가기 싫다며 앙탈(?)을 부린다.


#편리한 관계

 이 친구는 누구인지 굳이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내 이야기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을 다 알고 있다.

 

#필터 빼고 수다 가능

'내가 다소 엉뚱한 이야기를 해도 너는 반대하지 않을 걸 아니까 난 너한테 먼저 말해'라고 말하는 사이가 되었다. 17년이 지나서 이런 표현을 하기 시작함.


#건방진 자세로 대화 가능

어떤 자세로 이야기를 나누어도 어색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카페 소파에 거의 누워있었다. (집에선 졸려서 카페로 이동...)


#기억에 남는 이야기 - 똥꼬 발랄한 친구네 고양이들

친구네 고양이 이야기가 네이트 판 '오늘의 판'에 올라갔다고 한다. (궁금한 사람은 여기로 http://pann.nate.com/talk/335667092) 보통 이 녀석들 보러 내가 친구네 집에 가는데, 오늘은 나 허리 다쳤다고 친구가 우리 집으로 왔다. 독일 가기 전에 이 녀석들 보러 또 놀러 가야지.


하루 형님 품에 코박고 자는 꼬마 후유


#기억에 남는 이야기 2

친구의 남자친구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 새 '주위 환경', '20대 초반의 경험', '만나는 사람'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했던 경험들이 우리에겐 이제 아무렇지 않은 경험 같아 보여도 다른 시각에서 보면 사실 대단한 일을 무사히 마쳐낸 것이라고, 조금 더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함께.


#새로운 시작

친구도 나도 철두철미한 계획은 없지만, 하지만 확실하게 인생의 방향키를 틀었다. 나도, 이 녀석도 큰 탈 없이무사히 한 해를 보냈으면 좋겠다.


#가지마

 '독일 가지 마' 이 말을 오늘 10번은 넘게 들은 것 같다. 내게 지금 남자 친구가 있었어도 이 녀석보다 더 나를 붙잡진 않았을 것이다. 둘이서 이렇게 수다를 떠니까 이렇게 좋을 수가 없는데... 독일 가지 말라는 녀석의 말에 아무 대답하지 않았지만 사실 나도 많이 아쉬웠다. 17년을 만나온 친구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소중함이 더 뚜렷해지고 고마움이 더 커지는 친구라 울림이 더 크다. 이 시간이 너무 좋다며, 집에 가기 싫다고 외치기에 좀 더 좀 더 이야기하자고 한 게 8시간을 수다를 떨고서야 지하철 막차 시간 때문에 끝이 났다. 남들이 보기에는 이런 대화가 평범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굉장히 특별했다. 둘다 중학교 시절부터 '오빠야~' 하는 경상도 가스나보다는 '뭐어쩌라고' 하는 머스마처럼 자라왔던 우리다. 서로의 솔직한 모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둘 다 우정 표현에는 서투르고 말이 아닌 느낌으로 쌓아온 우정이었는데, 오늘 친구는 정말 아쉬웠는지 솔직하게 말로 표현하는 순간이 평소보다 훨씬 많았다. 나는 아직도 솔직하지 못한데.










 아씨, 왜 눈물이 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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