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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Jul 06. 2020

가장 자유로운 날에,
가장 자유롭지 못했던 추억

Fourth of July

여행이든, 유학이든, 출장이든 7월 초에 미국에 있어봤던 사람이라면 아마도 다들 좋든 싫든 7월 4일에 관한 기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왜냐면 이 날이 되면 미국 전역 곳곳에서 불꽃놀이를 하느라 난리가 나기 때문이다. 독일은 연말에 새해 맞이를 기념하여 폭죽을 터뜨리지만, 우리에겐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7월 4일, 왜 미국인들은 이렇게 폭죽을 터뜨려 대는 것일까?



그건 바로 7월 4일이 미국의 독립기념일이기 때문인데, 당연하게도 이 날은 미국의 대표 공휴일 중 하나이며, 낮에는 가족들과 야유회를 가거나 퍼레이드를 구경하러 가고 밤에는 각종 연주회와 불꽃놀이 행사가 펼쳐진다. 1776년 7월 4일 영국의 통치로부터 자유를 지키기 위한 독립을 선언하고 독립선언서에 서명을 한 날. 자유의 나라인 미국의 역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날이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사람들은 보통 이 날은 Fourth of July 또는 날짜로 July 4th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의 광복절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상대적으로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마음이 더 커서 그런지 오히려 엄숙해지는 마음이 더 큰데, 생각해보면 미국처럼 모두가 함께 즐기고 축제를 벌임으로써 더 많은 사람이 이 날을 기억하고 자유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은 후손들에게 그 행복을 물려주고자 조상님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던 것이니 말이다.



미국에 오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딱 한 번 7월 4일을 미국에서 보낸 적이 있는데, 미국을 떠나고 나서도 종종 그 때의 일이 추억처럼 피어오르곤 한다. 처음 미국에서 이 7월 4일을 보냈을 때 나는 당시 다니던 회사의 미국 지사로 파견을 나가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놀러나가던 그 날도 우리는 (한국 직원들만...) 일을 해야했다. 지사는 로스앤젤레스에 있었기 때문에,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바닷가까지 차를 몰고 달려가서 밤바다의 불꽃놀이를 즐길 수 있었는데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야근을 째고서라도 놀았어야 했는데!)



휴일은 커녕 칼퇴조차 포기하고 야근을 하려고 당시 친하게 지내던 회사 동료 언니와 함께 저녁을 먹고 후식으로 커피를 마시려고 회사 근처 스타벅스로 갔다. 번화가는 아닌지라 평소에 사람이 많은 곳은 아닌데 그 날 따라 유난히 밖에서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워낙 회사만 모여있는 동네인데다 딱히 눈에 띄는 것은 없어서 언니와 카페 안에서 커피를 홀짝 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뻥-! 뻥-!'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근처에서 폭죽을 터뜨리는 모양이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건물만 빽빽한 곳이었기에 그다지 멋스럽다고 할 풍경은 전혀 없었고 하늘도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아서 사실 폭죽이 멋있다거나 하진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폭죽구경을 하는구나 위안은 되었다. 그런데 더 재밌는 일이 그 다음에 일어났다. 갑자기 스타벅스 앞에 주차되어있던 차들이 일제히 경보음을 울리기 시작했다. 다들 또 다른 소리에 놀라서 주차장을 쳐다봤는데 주차장에는 딱히 차에 충격을 가했을만한 사람도, 어떤 물건도 보이지 않았다. '뭐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하며 차주들이 하나씩 경보음을 끄기 시작하는데, 더 많은 차들의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알고 봤더니 근처에서 터지는 폭죽소리의 충격(?)으로 자동차들의 경보 시스템이 작동한 것이다. 마치 폭탄처럼 터져대는 폭죽소리와 비상 사태가 일어난 것 처럼 앵앵앵 울려대는 경보음 소리에 뒤섞여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비록 낭만적인 밤바다의 불꽃놀이는 눈에 담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참 우습다 싶은 추억 하나는 남겼다. 사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가치관이 상당히 많이 바뀌어서, 폭죽이 더 이상 아름답거나 낭만적인 대상이 아니라 돈낭비, 에너지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언젠가 또 다른 7월 4일의 어느 날에, 그때는 한국 상사 눈치를 보는 외국인 노동자가 아니라, 자유로운 한 사람으로 퍼레이드를 구경하며 미국식 핫도그를 입에 물고 친구들과 웃을 수 있는 날이 올까? 생각해보니 자유를 대표하는 나라 미국의 자유를 기념하는 독립기념일에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자유롭지 못한 존재였던 것은 아닌지. 참 아이러니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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