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이의 유럽일기 Aug 11. 2020

악플에 대처하기 위한 현실적인 고민을 해보았다





한동안 조용하던 내 브런치 조회수가 다시 들썩이기 시작했다. 작년에 썼던 ‘노브라로 나가보았다’라는 글이었다. 주로 유입되는 곳은 브런치였다. 아마도 브런치 내 어딘가에서 노출이 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사실 작년에 이 글을 올린 이후로 내게는 트라우마가 하나 생겼다. 알람탭에 모르는 닉네임이 댓글을 달았다는 알람이 뜨면, 마음은 흠칫하고 손가락도 같이 멈칫한다. 예전에는 댓글들이 반가웠다. 무수히 지나칠 많은 글들 속에 내 글을 발견하고 읽어주고 또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대체 어떤 이야기를 남겼을까, 두근두근 설레이며 확인하고는 했었다. 하지만 ‘노브라’글에서는 달랐다. 생각지도 못했던 인신공격이나 악플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이었다. 글을 쓰기 전부터 ‘노브라’라는 키워드가 다소 민감한 주제라는 건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쓸까 말까 많이 망설였고, 쓰고 나서도 올릴까 말까 많이 망설였다. 올리고 나서는 지울까 말까를 망설였지만, 아직까지는 버텨보고 있다. 내 글을 보고 어떻게 판단하는지는 온전히 독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본인의 생각을 갖추고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 쓴 비판의 댓글은 괜찮았다. 비판을 수용하는 능력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이런 것도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고 긍정적인 피드백이든 부정적인 피드백이든 모두 답글을 달아드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선도 지켜지지 않고 훅 들어오는 댓글들은 신고 후 삭제를 해야했다. 그 뒤로는 두려움에 미루고 미루다 댓글을 늦게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어쩔 때는 관리자에 의해 메시지가 미리 삭제가 되어 내가 보지도 못한 악플도 있었다. 관리자님께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로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댓글을 안 볼 수 있다면 안 보고 싶었지만 브런치를 통해 주고 받는 댓글에는 반대로 내가 독자들에게 얻는 에너지와 영양분, 좋은 말도 많았기 때문에 늘 악플을 각오하는 마음으로 댓글을 확인했다. 그래도 좋은 댓글이 더 많고, 악플의 수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기에 띄엄띄엄이나마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었다. 다행히 악플로 인해 받은 정신적 타격도 일상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크지는 않았다. 아니 그렇게까지 되기 전에 거기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상황과 마음을 많이 다스렸다. 예민한 키워드로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았고, 점점 댓글을 확인하지 않기 시작했고, 더 이상 댓글에 답글을 달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나마 그 시기가 어느 정도 자존감이 높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잊고 지냈는데, 1년이 지난 지금 갑자기 생각치도 못하게 브런치에서 방문자수가 다시 늘면서 오늘 아침에도 성희롱적인 댓글과 비평인 척 비난하는 댓글을 보았다. 오랜만에 다시 마주한 악플 앞에 이번에는 이성의 끈을 살짝 놓쳤고, 욱하는 마음에 댓글을 그냥 지워버렸다. 예전에는 댓글을 지웠다고 또 욕먹으면 어쩌지 걱정했었는데, 이제는 별로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그들에게 마음대로 댓글을 싸지를 자유가 있다면, 내게도 ‘그런’ 댓글을 가차없이 삭제할 자유가 있는 거니까.










1년 전 어느 날 내가 온라인에서 대중에게 글을 쓰고 유튜브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을 때 나를 잘 아는 동생도 이렇게 말했었다. 누나같은 사람은 악플 같은 거 못 견딘다고, 신중하게 결정을 내렸으면 좋겠다고. 그때는 할 수 있다고 당당히 외쳤는데, 사실은 갈수록 잘 모르겠다. 나처럼 상처를 잘 받는 사람은 아예 온라인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글을 쓰는 일을 하면 안되는 걸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예민함과 섬세함이 내가 내 글을 쓸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이다.



늘 설레이면서 확인했던 댓글 알람이 이제는 마치 50:50의 복불복 뽑기상자처럼 ‘악플’이 나올지 모르는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는 건 참 슬펐다. 지인들에게 상담도 해봤다. 대부분은 잊어버려라, 신경쓰지 말라, 마음에 담지 말라, 보지 말라고 했다. 그 때 깨달았다. 아, 이건 정말로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일이구나. 당연히 시도해 보았었다. 잊어버리려고, 신경 쓰지 않으려고, 마음에 담지 않으려고, 또 보지 않으려고. 하지만 이미 본 것을 안 본 것처럼 할 수는 없었다. 악플 하나 피하자고 좋은 댓글까지 피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내게 쓰여진 악플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는 사실 이미 ‘어딘가에서 짱돌이 하나 날아와서 내 이마에 상처내고 피를 낸 상태’나 마찬가지다. 즉 읽자마자 상처가 생겨버리기 때문에 웬만한 멘탈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쉬이 털어내지지가 않는다. 고작 하나의 글에서 받은, 그렇게 많다고도 할 수 없는 악플을 받고도 이렇게 마음이 심란한데 대체 헤아릴 수도 없는 수 많은 악플들을 견디며 사는 유명인들은 어떤 심정으로 사는건지 먹먹해졌다. 악플에 대한 두려움은 곧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이 일이 있은 몇 달 뒤, 설리씨의 참담한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나는 두가지 이유로 그녀를 애도하는 글을 쓰지 못했다. 첫번째 이유는 그로 인해 또 다시 몰려들 악플이 두려웠고, 두번째 이유는 그녀의 마음을 아예 모르지도 않지만 결코 안다고도 할 수 없는 애매한 입장에서 어설픈 위로만 튀어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대신 그녀를 기억하기 위한 물건을 하나 샀고 지금도 가지고 다니고 있다.




악플 때문에 개인이 하고자 하는 일, 이루고자 하는 일을 멈추는 것은 역시 바람직한 결정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하루아침에 악플들을 모두 다 없앨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악플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지 현실적인 방법을 꽤 오래 고민했었는데, 여기서 소소하게 공유해볼까 한다.




1. 댓글을 대신 읽어줄 사람을 고용한다.

사실 오늘 아침엔 정말 댓글을 보고 기분이 안좋아져서 글을 삭제해 버릴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건 충동적인 대응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면 유튜브처럼 댓글 영역을 아예 없애버리는 기능이 브런치에도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떠올랐는데 그건 바로 내 댓글을 대신 읽어줄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대신 핵심이 없는 단순 비방용 악플은 미리미리 삭제 및 신고해주고,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할 비판은 냉정하게 정리해서 알려주는 것이다. 아마 미래에 정말 이런 직업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필요하다면 정말 그런 사람을 고용할 의지가 매우 있다.



2. 백투더 1990, 레트로 소통 방식으로 돌아가기

내가 만들어내는 창작물에 대해 피드백을 받을 때 전통적인 방식(?)으로 주고 받는 방법도 아주 매력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댓글 시스템이 아니라 옛날처럼 편지를 주고 받는 형태로 말이다. 지금은 이메일 정도가 딱 적당할 것 같다. 댓글이라는 건 짧은 시간 안에 간단하게 남기기 쉽기 때문에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냥 내뱉듯이 남겨버리는 악플들이 많은데, 이메일로만 그 피드백을 받는다면 악플의 양이 훨씬 줄어들지 않을까 추측해 봤다. 이게 생각보다 별로 큰 장벽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온라인 상에서 목적하는 바를 실행하기까지 한 단계, 두 단계의 스텝이 추가되는 것은 생각보다 큰 장벽이 된다. 그래서 IT 회사들은 보통 불필요한 단계를 생략하고 장벽을 없애기 위한 연구를 많이 한다. 그래야 이탈하는 사람들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반대로 악플러에게 이런 장벽을 추가한다면 악플러들의 이탈율이 높아지지 않을까? 한마디로 악플러 이탈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다. (만약 이메일로도 악플이 많이 온다면, 차라리 옛날 감성 물씬 풍기게 손편지만 받는 것도 좋을 것 같다.)



3. 인터넷 예절에 대한 교육


절대로 악플러들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지금 모든 나라가 인터넷 예절에 대한 교육이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악플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이 너무나 빠르게 급변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교육을 잘 시켜도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나오듯이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범죄율을 낮추기 위한 교육적/법적/사회적 노력을 하는 것처럼 온라인에서도 그와 유사한 방안이 시급히 마련되야 한다고 본다. 꼭 악플러가 아니더라도 오프라인이었다면 쉽게 하지 않았을 말을 온라인에서는 신중하지 못하게 내뱉아 본 사람들의 수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나라고 늘 깨끗하고 바른 말만 해온 것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인간은 결국 사회적 동물이고 인터넷으로 인한 과도기 사회를 겪고 있는 지금 우리 세대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엄청난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앞으로는 지금까지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세대가 올 것이고, 그리고 무분별한 악플때문에 사람들이 상처받고, 피해를 입는 사례가 훨씬 더 많이 늘어나게 될 테니까.






이제는 악플러에 제대로 대응하는 사람들도 전보다 많이 늘고 있는 것 같고 (김희철씨 응원중) 법적인 처벌도 가해지는 것 같지만 더 중요한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고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크고 작은 움직임이 더 생기기를 기대해 본다. 














글: 노이

커버 이미지: https://unsplash.com/photos/IYtVtgXw72M

매거진의 이전글 가장 자유로운 날에, 가장 자유롭지 못했던 추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