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구석 표류기 1/100
오늘(9월 7일)부터 카카오 프로젝트 100의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었다. 원래는 다시 할 생각이 없었지만, 지난 시즌의 가장 큰 불편함이었던 앱의 부재가 이번에 해결된 듯 하여 참여해보기로 했다. 프로젝트를 하면서 남기는 글들을 형제 플랫폼인 브런치에도 남겨두려 한다.
코로나로19로 인하여 여행을 가지 못해 답답한 사람들, 강제 집콕 생활에 지친 사람들을 위해 'ZEROHUNDRED'님이 제안하는 특별한 여행 프로젝트. 늘 가장 가깝지만 한 번도 제대로 '탐험'해 보지는 못했던 내 방을 살펴보며 하루에 하나씩 내 방에서 발견한 물건이나 장면을 기록하고 거기에 대한 짧은 생각을 남기는 프로젝트이다.
1일차 아이템으로 내가 선택한 것은 바로 이 책이다. Tschick라는 제목의 이 책은 독일 소설책이다. 한 때 잠깐 우리집에 머무셨던 한 독어독문과 교수님의 추천으로 다소 충동적으로 사왔던 책이다. 당시에 교수님께서 "독일어 B2 실력 정도 되는 사람들은 이 정도 책을 읽을 줄 알아야 해. 독일에서도 완전 유명한 책이니까 꼭 읽어봐요." 라고 강력 추천을 해주셔서 샀었다. 그때가 벌써 1년 전, 사실 난 이 책을 아직 단 한번도 완독하지 못했다. 첫째는 아직 독일어로 책을 읽을 수 없다는 나의 두려움과 둘째는 원래 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 취향때문이었다. 그래도 요즘은 하루에 10분 정도는 조금씩이라도 읽으려고 다시 손을 뻗고는 있지만 즐겁게 읽히진 않는다. 읽고 싶으면서도 읽어지지 않는 묘한 기분이다. 읽다 말고 자꾸 단어를 검색하다가 끊기는 흐름이 싫다고 하면 핑계일까. 하긴 읽고 싶다고 한국에서부터 가지고 와놓고 안보고 있는 책도 있으니 이 책이 독일어라서라거나 소설이라서 안읽힌다는 말은 결국 다 핑계일 것이다. 정말로 읽고 싶지 않다면, 차라리 누군가에게 다시 팔거나 나눔을 해도 될 일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이 책을 집에 모셔두고 있다.
사실 이 책을 보며 생각나는 책은 따로 있다. 당시 이 책을 살 때 나는 이 책 뿐만 아니라 다른 책과 아이템을 포함해서 서너가지를 양손 가득 들고 캐셔에 가기 전에 고민을 하고 있었다. 책을 끝까지 읽지는 못하면서도 책을 좋아해서 서점에 가면 과잉 구매를 하는 게 내 버릇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수님이 두 팔 벗고 나서서 "이건 빼고 이 소설책은 꼭 사야 되요, 독일어 공부하는 사람한테는 완전 추천이야."라고 적극 지지를 했었다. 그런데 애초에 이 책을 집어든 이유 자체가 교수님이 우연히 이 책을 보고 "어머, 이 책 유명한 책인데. 오랜만에 보네."라고 지나듯 한 말 때문이었다. 절대로 그 교수님이 그 책 출판사나 서점이랑 관련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고, 그저 직업 정신으로 내가 학생 같이 느껴져서 추천해주신 거였다. 하지만 그 때 내가 정말 사고 싶었던 것, - 그리고 교수님이 1번으로 제외시킨 것 - 은 바로 그림그리기 책이었다. 취미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나의 작은 욕망은 꽤 오랫동안 내 안에서 꿈틀거렸는데 어디가서 수업을 듣기에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책이라도 사서 연습해볼까 해서 하나 집어 온 책이었다. 한국이라면 귀여운 캐릭터의 그림책이 너무 많아서 고르기가 힘들 정도겠지만, 독일에서는 아시아 스타일의 귀여운 그림체가 담긴 그림책을 찾기가 힘든데 그래서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책이었다.
내 마음은 분명히 유명하다는 이 소설책보다 그림책을 원하고 있었음에도 교수님의 강력한 주장에 나는 결국 이 소설책만 사왔던 거였다. 교수님을 원망하는 것은 아니고, 그 상황에서 스스로의 소리에 귀기울이지 못하고, 내 돈으로 내가 사는 책에 남의 의견을 존중해버린 내 자신이 안쓰러워 자꾸 생각이 나는 것 같았다. (그 기억이 결국 뇌리에 계속 남아서 결국 몇 달이 지나서 그림책을 사러 서점에 다시 갔다. 나중에 꼭 다시 사려고 그 때 그 책을 사진을 찍어두었었는데 다 나갔는지 없어서 다른 책을 사오긴 했지만.)
내가 읽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던 책도 아니었지만, 어제 읽고 싶었어도 오늘 아니라면, 안 읽어도 큰 일이 아닌 책인데, 나는 무엇을 위해서 이 책을 지금까지 붙들고 있었을까. 아마도 이 글을 쓰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부담감에 눌려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읽어도 좋고 안읽어도 좋은 것을. 내가 책을 구매할 때는 내가 그를 소유했지만, 읽지 못한 책은 시간이 지날수록 거꾸로 내 정신을 소유해 왔다.
'나를 읽어, 나를 읽어... 언제 다 읽어줄거야...?'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세상에 꼭 정해진 것이 어디 있을까. 아무리 유명한 책이라도 막상 사보니 나와는 안맞을 수도 있고, 아무리 도움이 되는 책이라도 나와는 맞지 않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러니 내가 소유한 물건에 내가 끌려다니지 말자고 다짐했다. 이 책이 아니어도 나를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끌고가려는 사람들은 차고 넘치는 세상이니 말이다.
오늘의 느낀 점
물건에 내가 소유되어 살지 않도록 하자.
글: 노이
커버 이미지: Photo by Alvaro Reyes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