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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Jun 05. 2021

독일에서 처음으로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이 면봉은 과연 내 뇌를 뚫을 것인가


오늘 처음으로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슈넬테스트(Schnelltest), 직역하면 '빠른 검사'. 우리나라에서는 신속항원검사로 알려져 있는 검사다.

면봉을 뇌까지 밀어넣는 것 같다는 그 검사.


내가 지금까지 검사를 받지 않았던 이유는 첫째, 어차피 계속 집에 있는 상황이고, 둘째, 최근 7개월간 만난 사람이 많아야 2명, 정말 두문불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몰리는 코로나 검사소가 어쩌면 내게는 더 위험하게 생각된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내가 검사를 받아야지 결심이 선 이유는 단순했다.



카페에 가고 싶기 때문에.



독일은 약 7개월간 기나긴 폐쇄령을 진행해 왔다. 그래서 이번 겨울이 유독 더 길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헬스장은 내내 문을 아예 닫았고, 카페도 식당도 모두 배달과 테이크아웃만 가능했다.

그래서 내게는 어딘가로 여행을 가는 것보다도'카페 테이블에 앉아서 글쓰고 공부하는 그 시간'이 제일 그리운 일이 되었다.



다행히 최근에는 일 2만명에 육박하던 확진자수가 2천명대로 떨어지면서 락다운이 서서히 완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복잡한 것이 독일은 주마다 코로나 정책도 다르다. 게다가 날씨도 다르다.

날씨 얘기가 여기서 왜 나오는고 하니, 최근 식당에서 '야외석'만 앉을 수 있게 허가를 해줬는데, 다른 지역은 따뜻해서 다들 야외 취식을 즐긴 것 같은데 여기는 계속 추워서 사람들이 오들오들 떨면서 즐겼다고 한다. 추운 게 질색인 나는 시도도 안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잠깐 풀렸던 락다운을 이 동네 사람들은 날씨 때문에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다는 거다. (다행히 하루 정도는 날이 좋았지만, 사람이 너무 붐벼서 섞여앉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오늘부터는 다시 실내 취식이 오픈된다는 희소식을 들었다. (날씨는 갑자기 초여름이 되었다.)

드디어 내가 가장 그리워 했던 우리 동네 카페에 다시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조건이 있었다. 코로나 음성 결과 확인서를 가진 사람만 가능하다는 것.

지금까지 한 번도 코로나 검사를 받아본 적이 없었던 내게는 약간의 장벽처럼 느껴졌다.

검사는 어디서 해야하는지, 예약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등.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외국어를 이해할 수 있다고는 해도 유창하지 않은 사람에게 새로운 정보를 외국어로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상당한 에너지가 들어가는 일이다. 나는 학교에서 새로 배우는 것만으로도 지치고 또 지쳐서 그동안 코로나 정보를 예전처럼 챙기지 않았었다.



미리 검사를 받아본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검사 예약 링크를 받고 오늘 아침 7시 40분으로 예약을 잡았다.

독일의 다른 도시에 사는 분은 신속 검사조차 예약이 어렵다고 했는데 다행히 우리 도시 신속검사 예약은 어렵지 않았다. 이것도 지역마다 다른가보다.




오전 7시 20분.

혹시 늦을까봐 예상소요시간보다 조금 빨리 집을 나섰다.

아는 구역이지만 구글 지도를 켰다. 시간에 칼같은 독일이니까.

새소리와 출근하는 사람들, 공사장을 지나 구글 지도를 따라 평소 가보지 않았던 길로 걸었다.








오전 7시 30분, 도착.



예전에 지나가다 봤던 약국 앞에 있던 컨테이너형 검사소와는 달리 이 곳은 주차장 안에서 검사를 하고 있었다.

앞에 3명의 사람들이 대기를 하고 있었지만, 다음 차례는 매우 빠르게 다가왔다.

우선 검사자 정보를 확인하시는 분이 한 분 앉아있었고, 그 뒤에는 검사하는 공간에 안이 반쯤 보이는 가림막이 따로 쳐져있었다.

사람들의 정보를 확인하는 분은 백발이 성한 어르신이었는데, 그러면 안되지만 선입견을 가지고 말았다.

본래 현지인이 말하는 외국어는 미디어보다 알아듣기 어렵기 마련이지만, 그 중에도 어르신이 말하는 현지 외국어는 더 알아듣기 힘들었던 경험이 많았다. 나는 원체 듣기에 취약한데다가 조금만 더 빠르게 또는 더 느리게 또는 너무 세게, 너무 낮게 말하는 사람만 만나도 알아듣기가 힘들다. 그래서 보통 저음인 경우가 많은 남성 어르신들의 말을 알아듣기 위해선 귀가 평소보다 2배 더 열심히 일을 해야한다. 거기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로 입도 가리는데다, 사이에 아크릴판도 세워져 있어 알아듣기가 더 힘들다.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





처음엔 줄을 섰다가 이내 내 예약은 40분인데 일찍왔다고 뭐라고 하진 않을까 싶어 다시 밖으로 나와 5분을 서성였다. 하지만 인내심이 없는 나는 결국 나머지 5분을 채우지 못하고 35분에 다시 들어갔다.

어차피 내 앞에 기다리는 사람들도 다 가고 없으니 괜찮을 것 같았다.




"모인(Moin, 함부르크에서 주로 쓰는 인사)"


"구텐 모르겐(Guten Morgen)"




소독제를 바르고 손을 소독하면서 인사를 주고받았다. 나는 습관처럼 "모인"이라고 인사했는데, "구텐 모르겐"이라고 하셔서 나도 다시 "구텐 모르겐"이라고 인사했다. 보통 우리가 아는 독일 아침 인사는 "구텐 모르겐"이지만, 함부르크에서는 주로 관공서나 은행 등 다소 격식을 차리는 곳에서만 쓰는 경우가 더 많고, 평소에는 "할로"나 "모인"처럼 캐쥬얼하게 인사하는 분위기이다. 그래서 혹시나 예의없는 한국인으로(?) 비칠까봐 서둘러 나도 다시 "구텐 모르겐"으로 대답했다.




예약을 하고 왔다고 하니, 내가 이름을 말하기도 전 먼저 내 이름을 말해왔다. 마치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뿌듯한 할아버지의 표정이 귀여웠다. 아마도 한국인에게 흔한 내 성과 내 외모를 보고 유추하신 모양이었다. 아무리 나 말고는 다른 사람이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신기해하며, 대단하시다고 이야기 하다보니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이 분의 말을 내가 못알아 들으면 어떡하나, 일찍 왔다고 쫓아내면 어떡하나 걱정했던 내 우려와는 전혀 달랐다.




약간의 스몰토크가 끝나고는 바로 필요한 내용을 확인했다. 내 이름, 주소, 전화번호 등이 입력된 내용과 일치한지 다시 한 번 꼼꼼히 확인했다. 여기까지야 내 개인정보니 알아듣는게 어렵진 않았다. 그리고 나서 검사에 대한 설명을 하시는데 첫 문장을 못알아들어 다시 되물었다. 그랬더니 다시 "영어가 편하세요? 독일어가 편하세요?"라고 되물어왔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면 연습을 위해 독일어로 부탁을 드리지만, 코로나 검사는 처음이기도 하고 중요한 정보를 놓칠까 싶어 영어로 부탁을 드렸다. 영어로 부탁 드리면서도 또 이 분 영어를 내가 못알아들으면 어쩌나 걱정한 나는 정말 걱정쟁이인 것 같다. 그런데 또 이 분 영어도 아주 유창하시다. 아주 또박또박 이야기해주셔서 하나도 놓치지 않고 알아들을 수 있었다.




어쩌다보니 나는 인생 전체를 통 틀어서 한국에서 어르신들과 대화한 것보다 독일 어르신들과 대화한 경험이 약간 더 많다. 한국에서는 우리 할머니를 빼고는 그럴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어쩐지 여기서는 그런 일이 종종 생긴다. 그냥 가게 앞에서, 길에서, 슈퍼에서, 또 코로나 검사소에서 등등. 그 이유는 아마도 아직 정정하신 분들이 일상에서 일을 하는 사례가 상대적으로 더 많아서 그런 것 같다. 또 한국에서 내가 어르신을 만나면 하는 일은 길을 알려드리거나 버스나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해드린게 전부지만, 여기서는 문화도 다르고 나는 이 나라를 잘 모르는 외국인이다보니 내가 도움받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인상 깊었던 경험이 종종 있는데 오늘도 그 중 하나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마무리할 겨를도 없이 검사에 대한 설명에 다시 집중해야 했다.

검사 결과는 15분 뒤에 나올 것이고, 등록한 이메일로 결과가 도착할 거라 했다.

그리고 QR코드 스티커를 두개 줬다.

하나는 이메일이 도착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나의 몫, 또 하나는 기록을 위해 검사소 보관용이니 안쪽의 직원분께 드리라고 했다.



방역용 장갑을 낀 채 조그만 정사각형의 스티커 두 장을 내게 건네는 이 어르신의 손가락과 그것을 받는 내 손가락이 닿지 않으려고 의식하면서도, 앞에 나눈 다정한 대화 때문인지 이것마저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형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진심을 담은 '좋은 하루 되세요.'라는 인사를 남기고 - 아, 하지만 눈을 마주치고 인사해 주는 걸 또 깜빡했다. 독일은 눈 마주치는게 예의라고 했는데 - 검사를 위해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천막 안은 검사 키트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그 중에는 하리보 젤리가 가득 든 간식통도 보였다.




'검사를 하고 나면 젤리를 주는 걸까?'




검사자는 하리보를 쳐다보고 있던 나를 약간 높은 의자로 안내했다.

의자에 잠깐 앉아있노라니, 그 분이 면봉을 들고 내게 다가왔다.




"마스크를 완전히 내리지 마시고, 코만 나오게 내려주세요."




안내에 따라 마스크를 내리면서 슬슬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조금 늦었지만) 드디어 나도 뇌를 뚫는 느낌을 경험하게 해준다는  면봉 앞에 앉은 것이다.   명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 아니었기에 나는  검사가 분명히 아플 것이라고 100% 확신했다. 어쩌면 주사를 맞을  처럼,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던  같기도 하다. 면봉이 콧속에 깊이 들어올수록 몸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아직 아프진 않아서 '여기서  들어가는 건가? ? ?' 생각하는 틈에 어느새 끝이 났다.  예상과 달리 하나도 아프지가 않았다. 검사해주시는 분이 아주아주 조심스럽게 해주신 덕분이었다. 마지막에 면봉을 돌릴 때도 어찌나 조심스럽게 해주시는지! 약간 어안이 벙벙하여 끝이냐고 재차 묻자 검사해주시는 분은 웃으며 끝이라고 가봐도 된다고 했다.












'이게 끝이라고?'




눈물 찔끔 정도는 각오하고 왔는데 일말의 고통도 없이 끝난 검사가 왠지 허무했다. 그래도 검사도 잘 끝났고 누군가의 웃는 얼굴을 보니 또 마음은 금새 훈훈해졌다. 하지만 왜 하리보 젤리를 주지 않는 걸까, 아쉬워하며 젤리통을 돌아보고 나서야 그 곳을 빠져나왔다.















집에 돌아와 이것저것 하고 있다보니 검사 결과가 이메일로 도착했다. 아니겠지만, 혹시나 정말 코로나면 어떡하지, 걱정이 전혀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기에 약간은 떨렸다. 이메일로 온 링크를 누르면 자신의 태어난 년도를 비밀번호로 입력하고 들어가는 방식이었다.


두구두구두구.


휴,


다행히 검사는 네거티브,

음성이었다.


이제 이걸 들고 내일 카페에 갈 수 있겠지?


신나던 마음도 잠시. 검사 결과지 아래에 돌아가고 있는 타이머를 보고는 실망할 수 밖 없었다.

유효 시간이 고작 12시간이었다. 다른 지역에 있는 분은 일주일이라고 했는데, 여기는 또 다른가보다. 가려던 카페는 오늘은 문도 열지않은 상황인지라 결국 오늘의 검사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돈내고 한 검사였다면, 본전을 뽑기 위해서라도 어디든 갔겠지만, 결국 평소처럼 집에서 하루를 보냈다. 그래도 검사 예약도, 검사도 한 번 경험했으니 두번째는 수월할 것 같아 마음은 편해졌다. 코로나 검사가 그렇게 아프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게 되기도 했고, 무엇보다 친절한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언제든 어디서든 기분좋은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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