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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Jun 13. 2021

독일 애플 스토어에 대한 단상

다양성, 여유, 그리고 댕댕이





일주일 전부터 매직 키보드의 스페이스바가 고장 났다. 제대로 안 눌리고 두세 번 꾸욱 꾸욱 눌러야 작동되는 그런 상태. 락다운이 심할 때는 지니어스 바 가기도 힘들었는데 다행히 최근 독일 코로나 확진자수가 좀 줄어서 이제는 문을 그나마 열었다. 10분 전 도착해서 체크인 정보 입력하고 5분-10분 정도 담당자가 올 때까지 더 기다렸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어딜 가든 거의 다 루카 앱(luca, 독일에서 쓰는 바코드만으로 체크인 정보 입력하게 해주는 앱, 이제야 도입이 되었다)을 쓰는데 애플 스토어는 방문자 정보를 직접 아이패드에 입력하게 돼있었다. 물론 아이패드를 활용하고 싶었겠지만 사실 귀찮았고 (터치 키보드에다가 자꾸 자동완성돼서 한 번에 입력을 못함) 스크린에 사람들 손이 다 닿는 상황이라 좀 찝찝했다. 지니어스 바니까 지니어스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아무튼 담당자가 와서 키보드를 만져보더니 들고 가서 알아본다고 했다. 오늘은 전반적으로 사람이 많아서 바빠 보였다. 오랜만에 느끼는 활기찬 애플 스토어. 락다운 동안은 이 큰 공간을 다 걸어 잠그고 텅텅 빈 모습을 바라보는 마음도 쓸쓸해졌었는데 다시 활기를 찾은 모습이 보기 좋다.




2층 창밖 풍경





한국 애플 스토어는 아직 가본 적이 없다. 내가 독일에 오고 나서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설적인 부분에서는 비교하기가 어렵다. 다만 한국에서는 고객 서비스에 대한 이슈가 워낙 많이 들리다 보니 아무래도 그런 부분을 생각하게 되었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기는 친절하다. 그리고 독일에서 그것은 우리나라처럼 당연한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독일 상점, 가게는 친절한 곳을 찾기가 드물다. 친절하지도 불친절하지도 않거나 불친절한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여기는 모두가 친절하고 여유가 있고 농담도 주고받는다. 독일어를 못 알아들으면 영어로도 커뮤니케이션을 해준다. 물론 한국어는 못한다. 친절한 건 지니어스 바 직원들 뿐만 아니라 정문에 서있는 직원분들도 모두가 친절하다. 친절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던 적은 딱 한 번 있는데, 그때는 내가 봐도 정말 사람이 많아 바쁜 날이었기에 딱히 그 직원분에게 서운한 감정이 들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직원들의 국적이 정말 다양하다. 오늘 나를 상담해준 사람도 독일인이 아니었고, 그 사람에게 뭔가를 물어보려고 잠깐 내가 있는 테이블로 온 직원도 히잡을 쓴 분이었고, 내 옆 테이블을 상담해주던 사람은 동양인이었다. 다른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지만 오늘 인종차별에 대한 포럼을 듣고 와서 그 주제가 꽤 머리에 남아있던 하루라 그런지, 그 모습이 새삼 다르게 보였다. 그런 부분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애플 스토어에서의 경험은 다른 독일 상점에서의 그것과는 분위기나 기분부터가 확연히 다르다. 그냥 들어와서 이 곳을 걷는 것만으로도 다른 에너지를 느낀다. 애플 유저로서 뿌듯한 마음이 든다. 보통 A/S를 받으러 간다고 하면 딱딱한 사무실 같은 분위기만 떠올리지만, 애플은 그 편견을 깨끗이 날려버린 대표적인 브랜드다. 아마 한국도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애플 스토어가 들어오기를 그토록 원했었는지도 모른다. 새 제품을 구매할 때 이 멋진 인테리어와 에너지를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리하러 갈 때마다 똑같은 기분을 또 느낀다. 마치 처음 내가 이 곳에 아이폰을 사러 왔을 때처럼. 수리를 하러 올 때마다 로열티가 올라간다. 내가 애플을 떠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물리적으로만 보자면 나는 그저 어느 건물 안에 들어가 1시간을 앉아만 있다가 나왔을 뿐인데, 그 공간이 주는 심리적인 안정감, 들뜸, 호기심, 활기, 친절이 내 몸을 휘감았다가 나를 풀어준다. 마치 들어가기 부담스러운 명품 매장보다는 들어가기 쉬우면서도, 그 안에서는 그에 못지않은 고급스러움을 즐기고 나오는 기분이다. 그런데 거기다가 인종차별 없이, 아니 마치 일부러 비율을 맞추기라도 한 듯 다양한 국적의(또는 그 2세대, 3세대의) 직원들을 고용하고 요즘은 환경에도 신경을 쓰고 있으니 뿌듯해질 수 밖에. (여기까지 읽었다면 느꼈겠지만 나는 앱순이다)










그렇게 책도 보다가 웹서핑도 하길 1시간 여. 담당자가 돌아왔다. 그는 내게 "좋은 소식이 있고 나쁜 소식이 있어요. 뭐부터 들을래요?"라고 말했다. 2초 정도 고민하다가 "나쁜 소식부터요" 했더니 나쁜 소식은 지금 내 매직 키보드 수리가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별거 아닌 거라 생각했는데, 키캡이 묘하게 휘어서 다시 장착이 안된다고 하는 것 같았다. (아직도 부족한 내 독일어 흑흑) 

좋은 소식은 아직 보증 기간 적용이 된다고, 아예 새 제품을 무료로 다시 준다고 했다. 분명 내가 찾아본 기록에는 4월 말 구매라 보증 기간이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잘못 알아들은 건가? 아무튼 무료라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참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몇 달 전에도 맥북 키보드가 리콜 대상이라 4년 넘게 쓴 맥북을 (외관은) 거의 새 거처럼 다시 받았고, 매직 키보드도 보증 기간 끝나기 전에 뜬금없이 고장 나서(나도 지니어스바도 이유를 모름) 새로 받게 된 것이다. 괜시리 기분이 좋아졌다.




아니면 내 맞은편 테이블 아래에서 곤히 잠든 귀여운 댕댕이 때문에 기분이 좋아진거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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