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이아리: 누구나 겪지만 아무도 말할 수 없던 데이트 폭력의 기록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여러 연애 경험을 통해서 나름 나만의 기준을 가진 30대 중반이 되었다. 20대 후반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30대 중반의 지나친 신중함을 이제는 절절히 공감하고 있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연애의 경험을 쌓다보면 자기 자신만의 규칙이 생기게 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라는 사람이 연애를 할 때 어떤 점은 안고 갈 수 있고, 어떤 점은 절대 맞춰갈 수 없는지를 정해놓은 나름의 연애 기준이다. 내게도 여러가지 항목이 있지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화가 났을 때 상대방의 어투와 태도'이다. 어렸을 때는 기분이 좋을 때, 모든 것이 평화롭게 흘러갈 때의 상대의 모습을 그 사람의 디폴트라고 생각하고 사랑에 빠지고는 했지만, 사실 그 모습만으로 상대에게 내 마음을 온전히 다 줄지를 판단하는 건 섣부른 결정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가볍게 만나는 사이라면 크게 상관없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마음으로 진지하게 만나는 사이라면 그 사람의 기분이 매우 안좋을 때, 화가 났을 때,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 그 모습까지 합쳐서 보아야 우리는 어느 정도 한 사람의 인성의 양면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최소한의 기준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런 기준을 가지게 된데에는 이유가 있다. 데이트 폭력이 될 뻔한 이별 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애를 할 때에도 워낙 아슬아슬 터지기 직전의 활화산 같던 사람이라 어느 즈음 이별을 고했는데 결국 이별을 하는 과정에서 폭력이 터져나왔다. 그 기억은 아직도 선명히 남아서 내가 새로운 만남을 할 때마다 중요한 기준이 된다. 나의 기준은 대략 이렇다. 다만 나에게 폭력을 행한 사람에 근거하여 만든 기준이기에 굉장히 주관적이다.
일단 '화가 났을 때의 표정' - 나에게 폭력을 가한 사람은 단순히 화난 표정이 아니라, 평소와는 다른 사람처럼 눈빛이 변하는 사람이었다. 나에게 폭력을 휘두른 그 날 뿐만 아니라, 평소에 말다툼이 있을 때에도 그랬다. 얼굴은 화가 울그락불그락 하는데 눈빛은 차가웠다. 화가 나면 주위의 작은 자극에도 불같이 화를 내며 스스로의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집착'하는 성향 - 그 사람은 스스로도 자신이 옛날 여자친구들에게 '집착'을 이유로 이별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래서 나를 만날 때는 아주 쿨하게 행동했는데, 문제는 겉으로만 그랬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연애할 때는 숨기고 있어서 이별 후에야 안 내용이었지만, 의심가는 일이 있으면 내게는 괜찮은 척 하고 뒤로 내 지인들을 통해 내 뒤를 조사하고 다녔다.
'멈추지 않는 분노'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데이트 중에 지속적으로 폭력을 당한 것은 아니었고, 이별 과정에서 한 번 겪었다. 하지만 이게 실수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느낄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폭력 현장에서 내가 벗어난 후에도 전화를 걸어 내게 계속 욕을 해대는 행동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연인이 화가 날 만한 상황이 생기면 굳이 빨리 상황을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부러 조금 지켜보는 편이다. 위의 기준이 다 옳다고만은 할 수 없지만, 조심하고 조심하는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그는 그 일이 있고 몇 년 후에 내게 페이스북 친구 요청을 걸었다. 당연히 거절했다. 그리고 몇 년 후에는 결혼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는 얼굴도 본 적 없는 예비 신부의 안위를 빌었고, 지금도 별일 없기를 바라고 있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아리작가님의 데이트 폭력 기록을 보면서 많이 공감도 하고, 잊고 싶은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기록해 본다. 내가 겪은 폭력의 정도가 어떠하든지 간에, 누군가의 폭력은 한 개인의 몸과 마음에 남아 평생토록 괴롭힌다. 그래도 이제는 말할 수 있고, 또 말하고 싶다.
사진: Photo by Mika Baumeister on Unsplash
*'다 이아리: 누구나 겪지만 아무도 말할 수 없던 데이트 폭력의 기록' 링크를 이용하실 경우 소정의 수수료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