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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좋은 이별이 어딨어

by 노이의 유럽일기



상대에 대한 좋았던 감정들이 모두 사라졌다. 참고 노력해보려고 해 봤지만, 어느 순간에는 참고 노력한다는 이 상황 자체가 모든 게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싶어 무력해졌다. 한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는 일에 인내와 노력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 인내와 노력이 내 마음의 방향을 바꾸려는 것이라면 한 번 더 생각해볼 일이다. 마음은 바꾼다고 바뀌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마지막을 말하는 순간에는 많이 망설여졌다. 나름 오래 고민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는 조금 더 빨리 이별을 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말하고 싶지 않았음에도 상대가 자꾸 캐물었기 때문에, 결국 '헤어지자'는 말을 뱉어버렸다. 그렇게 티를 냈는데, 상대는 너무 갑작스럽다며 나를 원망했다. 당황스러웠다. 예전에 이별을 고민했을 때, 그에게 너무 갑작스러울까 봐 생각할 시간을 가지자고 했었다. 그때 그는 생각할 시간을 가지자는 것은 헤어지자는 말과 똑같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은 그런 게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런 말을 하지 않고 나 혼자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 티를 냈고, 나름의 시간을 준 후에 이별을 말했다. 그래도 갑작스럽다고 나를 원망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했던 것일까. 아니, 어떻게 했어도 그는 나를 원망했을 것이다.



결국 그의 세상에서는 헤어지자고 하는 사람은 무조건 나쁜 사람이고, 헤어짐을 말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도 무조건 욕을 먹어야 하는 사람인 것이다. 헤어짐의 원인이 분명하게 그에게 있음에도 욕은 내가 먹어야 했고, 내가 죄인이었다. 나는 그것이 인간 사회에 교묘하게 만들어진 프레임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마음이 예전 같지 않아져 헤어지자고 말하는 것이 정말로 욕을 먹을 일인가? 그는 정말 나를 사랑한 것일까? 정말 사랑한다면 내 마음도 헤아려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나도 알고 있다. 상대를 위하는 척을 해도 결국은 이기적인 것이 인간이다. 내가 이런 글을 쓰는 것도 자기 위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대를 속였다거나 하는 치명적인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일에 비난과 원망을 받는 것이 당연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나의 말에 그의 마음이 상처받을 수는 있다. 그것은 나도 마음이 아픈 일이다. 하지만 내가 그를 충분히 존중하는 태도를 갖추고 내 감정에 솔직하고자 했을 때, 그에게 나를 비난하거나 원망할 자격은 없다. 나는 그의 마음이 아니라 내 마음에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최선을 다해서 그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나는 좋은 이별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좋은 이별 같은 건 세상에 없다고 했다. 나를 만나기 전에 나쁜 이별을 겪어본 사람인데도, 무엇이 좋은 이별인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그냥 이 순간 내가 하는 말은 아무것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말하지 않았다.



좋은 이별이란, 상대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지 않아도, 그래서 내 마음이 찢어질 듯이 슬퍼도, 상대를 원망하지 않는 것이라는 나의 생각을. 너무 슬프다 말하겠지만, 눈물은 보이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너의 앞날이 행복하길 바란다는 말을 해줄 수 있는 이별. 정말 사랑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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