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가 더 좋아하는 사람 나를 더 좋아하는 사람

왕예민이의 연애 회고

by 노이의 유럽일기



내가 더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더 힘들다고, 나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만나보라는 말에 따라 살면서 몇 번인가는 그래 본 적이 있다. 물론 아예 마음이 없는데 나를 좋아해준다는 이유만으로 만난 것은 아니었다. 그런 건 내 성격상 연기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가벼운 인연들은 제외하고 제법 서로의 마음이 진지했던 경우를 돌아보니, 나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난 경험이 세 번 정도 되었다. 두 번 정도 겪을 때 까지는 몰랐는데, 세번 쯤 겪고 나니 세 사람 사이에 묘한 공통점이 보였다.



얼굴은 남자답다기보다는 귀염상이고,

외모뿐만 아니라 행동도 좀 귀염상이고 어리광이 있는 사람,

최대 장점은 근면성실함,

가정적인 편이라 집안일을 잘하는 편이고,

착한데 눈치가 없어서 답답한 사람,

뭔가를 해주려고 노력하지만 센스가 없어서 안하느니만 못한 사람…



처음에는 앞부분의 장점 때문에 만났다가 만나다보니 뒷부분의 답답함 때문에 헤어지게 되었었다. 이런 게 참 애매한 게 딱히 저 사람이 잘못한 건 아니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수도 없다. 어쨌든 서운한 일이 생길 때면 이야기도 해보고, 그 때 그 때 감정도 설명해 봤지만, 결국에는 포기하게 되었다. 저런 건 결국 그 사람의 타고난 성향이거나 아니면 평생을 살아온 습관이기 때문에 본인이 노력해서 바뀌기가 힘들다. 게다가 하나하나 설명하기도 너무 모호한 범위이다. ‘빨래 개는 법’, ‘설거지 하는 법’ 같은 건 뭐라고 가이드라도 해줄 수 있고, 어디가 어떻게 바뀌면 좋은지 이야기 해주기 쉽지만, 저렇게 눈치가 없고 센스가 없으면 정말 한 쪽이 큰 마음 먹고 일상 속에서 하나하나 일일히 코칭 수준으로 가르쳐줘야 한다. 그치만 나는 그러기엔 너무나 게으른 사람이었다. 내 성격 자체도 딱히 사람을 바꿔쓰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 몇 번 말하다가 포기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냥 우리 서로 생긴대로 살자. 너도 굳이 나때문에 애쓰지 말고, 나도 애쓰지 말고. 우린 여기 까진가 보다, 라고.



헤어지는 이유를 알려달라할 때도 말하기가 참 어려웠다. 너가 답답하다고, 센스가 없어서 힘들다고 어떻게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그건 너무 상처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나와 안맞을 뿐이지,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정하고 성실한 좋은 짝이 될만한 좋은 사람들이었다. 결국은 그냥 ‘우린 안맞는 것 같다’고 더 깊어지기 전에 헤어지거나, 이미 깊어졌다 해도 내 마음이 식고 자연히 그 관계는 어디로 가도 끝으로 갔다.



그 사람들을 탓하고 싶은 건 전혀 아니고, 그저 그들에게 꽤 많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이 좀 뜻밖이었다. 물론 내 쪽에서도 좋아한 사람들이니 비슷할 수도 있지 않겠냐 싶긴 하겠지만, 그들의 타입은 내가 더 좋아하는 관계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과는 좀 다르다. 내가 더 좋아한 사람들은 귀엽게 생기지도 귀엽게 행동하지도 않았고, 근면성실 하다기 보다는 재치가 있고 꾀가 있는 스타일(그러다 쪽박찰 수도 있음) 착하다기보다는 제멋대로 해서 그 자유분방함이 보기 좋은 사람, 큰 걸 해주지는 않지만 일상에서 센스가 있고 내 말을 잘 이해해주는 사람(그냥 듣는 거 말고 찐공감)이랄까.




왜 이리 다를까 곰곰히 생각해봤다. 처음에는 나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같은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사람들이 더 몰렸나? 싶었다. 그럴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더 좋아하던 사람들 때문에 마음 고생한 뒤에 만난 사람들이라, 그 성향과 반대되는 성향을 만나려고 한 것도 같다. 감정에 휩싸여서 (특히 내가 더 좋아할 때는) 무엇이 그의 진짜 단점이었는지, 어떤 점은 내가 사람을 좋아할 때 중요했던 부분인지 보이지 않는다. 힘들어서 더 힘들기 싫어서 그냥 다 반대되는 성향을 찾았던 걸까. 게다가 착하고 다정한 사람을 싫어할 사람은 없으니까. 아니, 앞으로는 싫어해야 할까? 착하고 센스있는 사람은 만날 수 없는 걸까. 내가 욕심을 부리는 걸까. 이 센스가 뭐길래 싶지만, 나도 사람을 더 만나고 겪다 보니 내가 정말 왕예민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얼마전 쥬얼리 이지현씨가 아들과의 문제로 금쪽같은 내새끼에 나왔을 때 오은영 박사님이 이지현씨 아들을 더러 그렇게 말했다. 이 아이는 상위 1%에 속하는 ‘왕예민이’라고. 세상에 어쩜 그 말이 그렇게 내게 하는 말 같은지. 나는 어릴 때 그 아이만큼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예민한 힘듬을 엄청 삭히던 아이였다. 그래서 그 아이의 모든 행동까지는 이해가 가지 않아도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유는 이해가 갔다. 평소에는 오박사님이 질문을 하면 나도 다른 패널들처럼 멍때리거나 틀린 답만 말했는데, 이번에는 정답을 먼저 딱딱 말할 정도였다. 말하고 혼자 놀랐다. 그만큼 아이의 입장이 이해가 간 것이겠지. 그 아이의 지금도 힘들겠지만 (아이에게도, 엄마인 이지현씨에게도) 아이가 나중에 자기 사람을 만나게 되는 순간이 올 때 많이 힘들 수 있겠다 싶었다. 마음이 상하는 포인트가 여간 지뢰밭처럼 깔려있고 예민한지 모른다. 그래도 지금 오은영 박사님을 만났으니 잘 극복하고 건강하게 커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겠지?



그래서 이 글을 쓰는 왕예민이의 연애는 오늘도 고민 중이다. 이 성격을 못 고칠 바에야 괜히 엄한 사람 고생시키지 말고 혼자 살라는 어머니의 조언도 잊지 않고 있다. 울 엄마, 딸한테 너무 팩폭이다. 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