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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대하는 배려의 레벨이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자

독일 전남친과의 에피소드

by 노이의 유럽일기




그런 일들이 있다.

상황이 일어났던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헤어지고 나서 뒤돌아 보면 사실 그 모습도 그냥 가볍게 넘길 것은 아니었구나 싶었던 부분.

물론 모든 것은 오롯이 ‘나’라는 사람이 살아가는 ‘내 세계’를 기준으로 상대평가되기 때문에 이것이 절대적이라 할 수는 없지만, 너무 사소하지만 꼭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라 새벽 2시를 30분 남겨놓은 이 시간에 브런치를 열었다.



그 날은 T와 동네 카페에 갔던 날이었다. 약 2시간 남짓되는 시간을 그 곳에서 오롯이 커피를 마시고 디저트를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오후 5시쯤 만났고, 그 카페는 오후 7시에 문을 닫는 곳이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은 금방 흘러 카페가 문닫을 시간이 다 되어갔다.

나는 카페에 앉아있는 것을 제법 좋아해서 카페가 문닫는 시간까지 머무르는 적이 제법 많다.

그래도 한 가지 지키려고 하는 건, 영업 종료 시간 전에는 무조건 자리를 비워주려고 한다.

일하는 직원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어느 누가 손님이 영업 시간 지나서까지 앉아있는 것을 좋아할까 싶은게 내 생각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영업 시간이 되기 전에 자리를 비워주는 것이 카페 직원들을 위한 배려 같은 것이었다.



시계를 보니 마감 시간까지 10분 밖에 남지 않았었다. T에게 이제 슬슬 일어나자고 말을 꺼냈다. 그랬더니 그렇게 시간 지켜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며 여유를 부린다.

남은 손님은 우리 뿐이었기 때문에 나는 더더욱 일어나고 싶었다. 그래도 마감 시간인데 나가자고 한 번더 이야기하고, 나가기 전에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T는 보란 듯이 카페 직원에게 “좀 더 있다 가도 되죠?” 라고 말을 걸었다. 직원인지 사장인지 모를 그 사람은 괜찮다며 편하게 있으라고 대답을 하는 듯 했다. (독일어로 이야기를 나눠서 100% 이해하지는 못했다.) 딱딱한 대화는 아니고 부드러운 대화였다. 나는 못들은 척 화장실에 갔고, 화장실에 가서도 두 사람은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이 곳에 몇 번 와봤지만 단골이라 할 만큼은 아니었고, T는 이 카페가 처음이었다. 그러니까 안면이 있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아니고, 우리나라로 치자면 택시 탔을 때 택시 기사와 이야기 나누는 느낌이었다.



화장실에서 돌아오는 동안에도 계속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자리로 돌아오니 “거봐, 물어봤더니 카페 직원도 더 있다가도 된다잖아.”라며 또 여유를 부린다.

“그럼 당연히 괜찮다 하지. 누가 대놓고 싫다고 그래?” 라고 반박하며 옷을 챙겨입고 나서자 자연스럽게 따라나오기는 했지만.

그 말을 하면서도 ‘하긴 독일은 대놓고 싫다고 할 때도 있지’라고 생각은 했다. 그래도 독일 사람이라고 다 똑같은 것도 아니고 저들도 사람인데 빨리 일끝내고 집에 가서 쉬고 싶지 않겠냐만은 아무래도 이 인간은 카페에서 일해본 경험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만 어렴풋이 했었다.



그 일이 왜 갑자기 오늘 떠올랐는지는 모르겠다. T와의 관계를 끝내고 난 후 내 머리 속 세포들이 끊임없이 그가 왜 별로였는지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 중인 것만 같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앞으로 이런 사람을 만나지 않으려면 이번에는 최소한 대략적인 기준이라도 세워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예전에도 비슷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어서, 그래도 그 때 보다는 더 빠르고, 최소한의 에너지만 투자하여 관계를 정리했기에 똑같은 실수를 완전히 되풀이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사람을 다시 만난데에는 분명 내가 놓치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의미이고, 그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을 원하는 건지 너무 두루뭉술하게 머릿속에만 대충 낙서해뒀다는 거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의 설레임과 다정함에 제대로 꺼내서 읽지도 않다가 시간이 지나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 같다.



T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는 아직 좋아할 때였고, 그래서 그냥 카페 알바 경험이 없나보다 넘겼다. 객관적으로도 대수로운 일은 아니었지만, 돌아보니 타인에 대한 배려가 좀 부족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직원에게 싸가지 없이 말한 것도 아니었고 그 직원도 정말 괜찮았을 수는 있지만, 우리도 딱히 꼭 더 남아서 이야기해야 할 이유도 없었고 카페에서 2시간이면 있을 만큼 있었는데 굳이?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친구는 그렇게 해도 괜찮은데 아직 진짜 사랑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연인 관계에 있는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면 내 세계에서는 엄청나게 마이너스가 된다. 돌아보니 그것은 아주 작은 힌트였다. 더 겪어보니 말로는 인류애가 넘치고 배려가 넘치는 사람 같아 보였지만 사실은 자기 말만 하려 하고, 자기 생각을 인정받는 것에 급급해서 내 감정은 제대로 마주보아 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앞으로 만날 사람을 정할 때는 ‘타인을 대하는 배려의 레벨이 나와 비슷한 사람’인지를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두가 가지고 있는 배려의 레벨은 각자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할 수는 없다. 나도 많이 부족한 사람이고. 하지만 연인사이라면 최소한 각자가 가진 배려의 레벨이 오차 범위가 크게 나지 않고 비슷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누군가를 사귀기 전에 그런 점을 보려고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는 어떤 기준을 정해놓고 상대를 평가하는 기분이 들어 특별한 기준을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결국 나는 부처가 아닌 평범한 인간이므로 좋고 싫은 점이 있기 마련이고, 그걸 스스로 구체적으로 알고 나와 맞는지 아닌지를 미리 생각해두는 편이 서로에게 더 좋다는 결론으로 점점 더 기울고 있다.




비록 연애라고 하기에는 조금 민망하고 썸이라고 하는 게 더 타당한 짧은 관계였지만, 사실 그런 정의는 내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특별한 일이 있어서는 아니지만 어쨌든 마지막에 온갖 정이 떨어지고 미련없는 관계임에도 나는 꽤 많은 것을 또 얻고 배웠기에 후회하지 않고 의미없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결국 연애를 할 때 나에 대해 가장 많이 배우고 가장 많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으니까.




그래도 다시 만나진 말자, T. 이 정도면 충분해.











추신) 어디든 사람사는 곳은 비슷합니다. T의 행동이 독일 남자를 일반화하지는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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