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요?
그의 집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아침.
6년 가까이의 기나긴 짝사랑을 접고 새로운 연애가 시작되었다. 지난 6년 간의 나는 부메랑 같았다. 힘든 짝사랑을 끝내보려 여러 번 다른 사람들을 만나보다가도 매번 다시 짝사랑으로 돌아가고야 마는 부메랑. 새로 만난 사람들이 별로 였던 건지, 아니면 짝사랑의 마음이 너무 컸던 건지를 묻는다면, 난 둘 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번에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연애의 시작과 함께 ‘불안’ 버튼이 눌렸다. 하지만 변한 게 있다면 불안한 생각에 휩쓸려 불안이 물고 온 망상에 감정을 다 쏟아붓던 예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그 감정을 알아채고 더 커지지 않도록 잘 보살펴 줄 수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아리님의 인스타툰을 읽다가 애착관계 유형 중 ‘불안형’의 연애 방식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20대의 내 모습을 누군가 적나라하게 그려놓은 기분이었다. 상대방의 거절이 두려워서 물어보고 거절당하는 것보다 외로워도 안 물어보고 혼자 놀아버리는 게 마음 편한 성격도 여전하고,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하루 종일 때로는 며칠, 몇 달씩 신경 쓰여서 꾸준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여전하다. 그래도 30대 중반이 된 지금은 많은 부분이 나아졌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숙제도 많다. 무엇보다도 내가 불안을 예전보다 잘 잠재울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불안이 찾아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늘 아침도 그랬다.
‘이 사람을 향한 지금 내 마음은 정말 진심일까? 정말 사랑일까?’
좋을 때는 우주로 뚫고 나갈 듯 설레면서도 어쩔 땐 또 너무 마음이 편안하다. 아마도 이 ‘편안함’이 익숙지 않아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것 같다. 늘 두근거리고 설레고 행복하면서도 함께 있으면 너무 긴장하거나 너무 걱정하거나 지나치게 상대의 눈치를 살폈다. 그게 늘 연애 시작에 내 마음에 따라오던 감정들. 하지만 이번에는 두근거리고 설레고 행복하면서도 너무 긴장하지도 너무 걱정하지도 눈치를 살피지도 않는다. 내가 성숙한 건지, 아니면 그 사람이 주는 안정감인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어쨌든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은 확실하다. 게다가 한 발 물러나서 생각해보면 벌써 진심이네 마네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억지다. 더 알아가야 하고, 더 부딪쳐봐야 안다.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러니까 결국 이건 또 불안이 물어 온 망상인 것이다. 그걸 깨닫는 순간 나를 불안하게 만든 질문은 힘을 잃어버린다. 하지만 불안은 지치지 않는다. 금세 또 새로운 주제를 물어온다.
‘사실은 그저 내게 잘해주고 키스가 달콤한 사람을 찾는 거 아냐?’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 키스가 달콤한 사람. 그게 내게 사랑일까? 나는 받기 위해서, 그리고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연애를 하는 걸까?
살면서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늘 진실되고 영원한 행복한 사랑을 찾아 꿈꾸는 환상을 좇느라, 너무 이상적이어서 힘들다고 생각했다. 나를 희생해서라도 상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영웅담 같은 연애를 꿈꿨다. (참으로 비현실적이었지만.) 비 온 뒤 땅이 더 굳는다는 말처럼 그렇게 흘린 내 눈물 위에 사랑이 더 굳건해질 거라고 믿었다. 내가 많이 우는 만큼 그 사람을 더 사랑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내 눈물은 내 사랑의 지표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게 내 착각이 아니었을까 하는 물음표가 머리를 든 것이다. 사실은 제대로 상대방과 맞춰갈 생각도 없으면서 마음으로는 이상적인 사랑을 좇고, 몸은 현실에서 육체적인 쾌락을 얻고, (당연하게도) 시간이 흘러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을 발견하거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특별한 노력 없이 관계를 미련 없이 정리해왔던 것은 아닐까. 내가 이번 생에서 추구하는 사랑에 감정적 쾌락, 육체적 쾌락, 물질적 쾌락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나는 그 반대되는 것들도 감당할 각오가 정말 되어있는 걸까?
이번에는 불안이 조금 이기는 듯도 했다.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질문이라고 여겨졌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사랑의 정의도 형태도 다양하다. 아끼는 독일 친구 중에 우리나라 개념으로는 조금 이해하기 힘든 아주 열린 관계를 추구하는 친구가 있다. 그런 관계를 추구하는 사람은 사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너에게 있어 사랑이란 무엇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 대답은 이랬다.
‘믿음, 그리고 문제를 함께 해결해 갈 수 있는 힘’
믿음은 생각할 수 있을만한 범주의 답이었지만, 두 번째 답이 신선했다. 문제를 함께 해결해 갈 수 있는 능력.
얼핏 보기에 심플해 보이는 이 말은 사실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 듯했다.
친구와 더 깊이 있게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내가 생각하기로는 이런 의미였다.
첫 번째,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삶에 있어서 내게 또는 상대에게 또는 둘 다에게 또는 주위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된 사람.
두 번째, 혼자 해결해나가려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해결해나간다는 자세를 가진 사람.
세 번째, 함께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어야 하고, 그것을 각자 행동으로도 옮길 줄 알아야 하고 협력할 줄 아는 사람.
나는, 또 내가 만나는 사람은 그런 마인드를 가진 사람일까?
서로에게 잘해주는 사람, 키스가 달콤한 사람에서 멈추지 않고 인생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 갈 수 있는 사람인지 - 대신 해결해 줄 사람이 아니라 함께 해결해나갈 사람 - 다시 한번 생각에 잠기게 된다.
언젠가는 나도 나만의 사랑의 정의를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오기를.
- 글: 노이
- 커버 이미지: Thanks to Gemma Chua-Tran @gemmachuatran for making this photo available freely on Unsplash https://unsplash.com/photos/no1ZI2uXTFw
- 이아리 작가님의 ‘애착 유형 불안형’ 편 Link: https://www.instagram.com/p/CURz3PcvqNy/?utm_medium=copy_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