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 피버를 만났던 이야기
S를 만난 것은 몇 년 전 디지털 노마드에 대해 막 알아가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디지털 노마드와 관련된 모임을 여기저기 찾아다녔더랬다. 그러다 우연히 리스본에서 열리는 꽤 큰 규모의 디지털 노마드 컨퍼런스 티켓을 받게 되었다. 티켓을 받은 분이 너무 바쁘고, 또 한국에서 가기엔 거리가 멀다며 내게 제안했는데, 나는 마침 시간이 있었고 유럽 거주민이라는 지리적 장점이 있었기에 덥석 그 티켓을 받았다. 컨퍼런스는 그 자체로도 상당히 괜찮았지만, 더 깊이 있는 경험을 하고 싶다고 생각이 들어 추가로 사비를 들여 워크샵을 신청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S를 만났다. 워크샵 분위기 전체가 워낙 사교성이 좋은 사람들이 많았고, 캐쥬얼한 분위기였기 때문에 서로에게 인사를 하고 간단한 스몰토크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렇게 나도 S와 몇마디를 섞게 되었다. 하지만 워크샵에서는 동시간대에 여러가지 프로그램이 진행되기 때문에, 같은 시간대여도 서로 다른 프로그램을 찾아 흩어지기 마련인데, 어쩐지 S는 계속 나와 같은 프로그램을 들었다. 그리고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 앉아 종종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렇게 워크샵이 끝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더 나누게 되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몇마디만 나눠봐도 S는 굉장히 에너지가 넘치는 쾌활한 사람이었고, 매너를 갖춘 남자라는 사실을 금새 알 수 있었다. 포르투갈의 따뜻한 날씨와 입안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음식들, 아름다운 자연 풍경, 그리고 S. 홀로 떠난 컨퍼런스 여행에서 만나 내게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현하는 이 사람을 굳이 마다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나도 관심이 생겼다. 디지털 노마드라는 것은 결국 라이프 스타일이다. 내가 디지털 노마드로 살고 싶어도, 만약 내 파트너가 원하지 않는다면 서로가 곤란해진다. 그런 점에 있어서 디지털 노마드라는 공통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독일과 스위스라는 장거리라는 조건도 디지털 노마드를 지향하는 우리 두 사람에게는 큰 제약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라고 이야기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늘 그렇듯 콩깍지가 씌였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었다. 독일과 스위스라고는 해도 상당히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중간 지점에서 만나는 데이트를 하곤 했다. 금전적인 부담이 있고, 조금 피곤하긴 해도, 나에게 아직 장거리 연애를 할 수 있는 열정이 남아있음에 놀랐다. 당시 내 나이는 서른둘이었고 이미 장거리 연애 경험이 있어 다시는 장거리 연애를 안하기로 다짐했던 상태였기 때문이다. 서로를 만날 수 없는 주에는 오래오래 영상 통화를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까지 내가 파악한 S의 성향 중 조금 특이하다 싶었던 건, S는 자기애가 상당히 높았고, 내 사람이 가장 중요했고, 타인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당시 나는 자존감이 꽤 낮았었기 때문에 자기애가 높은 그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고 착각했다. 내 사람이 가장 중요하고, 내 사람을 위해서는 타인은 배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일단 나는 그의 '내 사람'에 속하니까 당장 큰 문제로 여겨지진 않았다. 하지만 그러기도 오래지 않아 더 이상 타협하기 어려운 커다란 가치관 차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한여름, 프랑크푸르트의 길거리였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마음에 손을 잡고 프랑크푸르트의 길을 걸으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러다 서로의 X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그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유럽 여자를 만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무살도 아니고, 30대 중반인데? 그렇다고 그가 모태 솔로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유럽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 한 번도 유럽 여자를 만난 적이 없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이유를 물었다. 그리고 그의 대답은 내 귀를 의심하게 했다.
"유럽 여자들은 남자들 말이라면 무조건 안들으려고 해"
내가 잘못 들은건가? 아니, 그가 사용한 표현이 어려운 말도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잘못 알아들었을리는 없었다. 나는 그의 대답이 적잖이 당황스러웠지만, 뭔가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조금 더 이야기를 이어나가보기로 했다.
"나는 유럽 여자를 만나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혹시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줄 수 있어?"
그는 당연하게도 흔쾌히 그러겠다고 하며, 좀 전에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을 예시로 들었다. 대화가 있기 십여분 전, 우리는 너무 넓지도 좁지도 않은 차도 하나를 무단횡단했다. 좀 더 걸어가면 횡단보도가 있었지만, 횡단보도를 이용하면 더 멀리 돌아서 가는 상황이었다. 마침 차도에는 차가 다니지 않았고 분위기상 왠지 무단횡단을 해도 될 것 같은 곳이었다. 평소 무단횡단을 잘 하지 않는 나는 조금 고민을 하긴 했지만, 그냥 건너자는 S의 말에 큰 저항 없이 순순히 따라건넜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내가 유럽 여자였다면 “NO”를 했을 거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그저 교통질서를 지키고 싶었을 뿐일 수도 있잖아? 조금 멀어도 횡단보도도 있었고."
"말했듯이 이건 하나의 예시야. 유럽 여자들은 대부분 그게 뭐든 크게 상관없이 남자가 뭔가 하자고 리드하는 것에 잘 안따르려고 해"
나는 쉽게 납득할 수 없었지만, 유럽 여자를 이성으로 만나본 적이 없는 내가 이 이상을 이야기하기는 어려웠다. '어쩌면 특정 유럽 여자와 너무 안 좋은 경험을 했던 게 아닐까?' 가능한 좋게 생각해보려 했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같은 주제의 다른 사례를 들어 한 번 더 그의 생각을 물었다.
“아까 유럽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혹시 세계 여성들의 평균 임금의 불평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유럽에서 여성 권리가 전보다 높아졌을지라도 세계적으로 여자들이 남자보다 임금을 적게 받는 건 여전히 문제이지 않아?”
“너는 신입 사원이 경력 사원보다 왜 돈을 덜 받는다고 생각해?”
“그야 업무 경력이나 교육의 정도, 능력의 차이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
“똑같은 원리야”
여기서 부터는 어떻게 해도 그를 이해해주기가 어려웠다. 그 이후의 대화는 오래되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결국 그의 요점은 남자와 여자의 능력이 차이가 나니까 여자들이 덜 받는다는 논리였다. 조금 더 다른 사례를 들며 대화를 진행해 봤지만, 너무나 확고하게 말하는 그의 태도에 조용히 토론을 마무리지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앞에 나눈 대화와 두번째 나눈 대화를 종합해 봤다. S가 페미니스트이길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적어도 ‘불평등한 현상’을 중립적으로라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이길 기대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그 사람은 기가 세다는 이유로 유럽 여자 만나기를 꺼려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즉, 반대로 해석하면 내가 기가 세지 않은 동양인 여자라고 생각해서 나를 좋아했던 것 같다. 물론 나라는 사람의 일면을 전혀 안보지는 않았겠으나, 기본적으로 그는 자신의 말에 대체로 순응해주는 여자를 바랬던 것이다. 관계 초반의 나의 이미지가 그렇게 보이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이미 한국에서 연애를 할 때도 기가 세면 셌지, 결코 약한 타입의 여자가 아니었다. 그렇게 인프피인 나는 속으로 조용히 그에 대한 마음을 차곡차곡 접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 한 달 정도 다녀오게 되었다. 나는 한국 방문을 핑계로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그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의 데이트 특성 상 한국에 다녀오면 어느 도시에서 만날지 미리 정해야만 했고, 나는 대충 이런 저런 핑곗거리를 갖다대며 다음 데이트 일정은 나중에 한국에 다녀와서 정하자고 했다. 그러자 그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챘는지, 만약 내 심경의 변화가 생긴 것이라면 차라리 내가 한국에 가기 전에 헤어지자고 했다. 아무 것도 모르고 한 달을 기다리다가 내가 이별을 이야기하면 너무 슬플 것 같다고.
나는 어차피 워낙에 감정을 못 숨기는 인간인지라 그러자고 했다. 이 길이 그의 마음이 덜 아픈 길이라면, 그 정도 배려는 어렵지 않았다. 헤어짐의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나의 생각도 덤덤하게 전달했다. 나는 니가 생각하는 그런 순종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나는 네가 찾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그는 내 말을 이해했는지 알겠다고 하며 굿바이 인사를 했다.
그렇게 그와 헤어지고 난 내 마음은 그다지 슬프지도 않았다. 외려 씁쓸한 미소만 입가에 번졌다. 내가 여전히 외국인 남자들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연애라는 것이 그렇긴 하다. 연애를 시작하기 전엔 좋은 모습, 행복한 나날들만 상상을 하다가 막상 연애를 하며 부딪히다 보면 좋았던 순간의 몇 배로 힘들고 아픈 순간이나 실망스러운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외국인 남자친구와의 연애에 대한 환상 따위 미국인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진작에 깨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유럽 남자는 뭔가 다를 것이라는 환상을 아직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각종 미디어를 통해 다정하고 가정적이며 젠틀한 외국인 남자친구 혹은 남편의 모습에 오랫동안 노출된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을까.
S의 말로는 자신이 사는 도시의 남자들은 꽤 보수적이라고 했고 (그는 스위스의 소도시 출신이었다. 스위스의 대도시 남자들은 이렇지 않다고 하니 일반화 하지 않기로 하자.) 그 중에 자기는 그나마 덜 보수적인 편이라고 했다. 생각해보면 나를 대하는 그의 태도가 딱히 강압적이거나 명령조로 말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늘 나를 배려해주고 다정한 사람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여성 평등에 대한 그의 굳건한 생각을 알게 된 이상, 오래 만나다 보면 분명히 서로 부딪히는 부분이 올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가 나를 볼 때, ‘순종적인 동양인 여자’로 먼저 봤다는 것이 불쾌했다. 경험상 그런 사람은 처음에는 다정하고 잘해주는 것 같다가도, 이 사람이 내 여자가 됐다 싶으면 통제하려 든다. 애초에 기본적으로 상대방을 통제하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반항적이니 순종적이니 하는 것이 누군가를 만날 때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더 큰 일이 일어나기 전에, 관계가 더 깊어지기 전에 끝을 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정말 중요한 것을 다시 한번 배웠다. 외국 남자들이라고 다 열린 마음이거나, 쿨한 것이 아니라는 것.
헤어진 후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가 바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옐로 피버’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옐로 피버’란, 아시아 여성을 왜곡된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며,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대상으로 아시안 여성과 만나려고 하는 외국 남성(특히 백인이 많음)을 가리킨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옐로 피버를 피하라는 조언을 하곤 한다. ‘내가 가진 특징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좋아해주는 건데 왜 피해야 하지?’ 라거나 ‘그냥 취향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옐로 피버는 좀 다르다. 거기에는 ‘인종 차별’, ‘성차별’이 모두 담겨있다. 표면적으로는 ‘나’를 좋아해주는 것 같아도, 궁극적으로는 ‘남성 자신’에게 순종적이고 희생하기를 바라는 강렬한 욕구가 깔려있다. 특히, 역사적으로 아시안 여성이 서양에 알려지게 된 경로가 일본의 게이샤나 전쟁통의 성매매 여성이라는 이미지가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더더욱 단면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내가 만나는 남자가 옐로 피버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종종 인터넷에서 옐로 피버를 피하는 법 등의 글을 읽고는 하는데, 그것도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일부는 맞는 말이고, 일부는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다. 일본의 문화나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서양 덕후’ 중에 옐로 피버가 많다는 의견이 있지만, 그 사실만으로 그 사람을 옐로 피버라 판단해서는 안되고 더 깊은 대화가 필요하다. S를 만난 후 개인적으로 내가 세운 기준은 이렇다. ‘동양 여자만 만나는 외국인은 피한다.’, ‘내가 순종적이기를 바라는 사람,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피한다.’.
최근에는 새로운 사례도 생기는 것 같다. 한국 문화의 흥행 때문이다. K-Pop, K-Beuaty 등이 유행하면서 한국을 좋아하는 외국인이 이례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작년 말쯤, 함부르크 한인 학교 학생들의 인터뷰를 들은 적이 있다.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이민 자녀로 살아감에 있어서 겪을 수 있는 고민들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자리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한국인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라 겉은 한국 사람이지만, 속은 독일 문화와 한국 문화 등이 섞인 다문화 정체성을 가진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그 중 한 학생이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누군가 너에게 호감을 가지고 다가왔을 때, 그것이 나의 ‘겉모습’만 보고 가지는 호감인지 아닌지를 잘 구분해야 해.”
독일 이민 가정 아이들 사이에서도 케이팝의 흥행으로 독일 사회에서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지는 걸 체감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저 ‘한국인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호감을 가지며 다가오는 경우도 생겨 주의를 하는 편이라고 했다. 왜일까? 만약 예를 들어, 이 경우 외국인 청소년들이 ‘인종 차별’과 ‘성차별’의 관념을 빼고 순수하게 한국 문화에 대한 호감만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라고 해도 여전히 이것은 건강한 관계가 아니다. 한 인간 대 인간의 건강한 관계는 상대방 그 자체를 바라보며 이루어져야지, 그 사람의 배경을 바라보고 성립되어서는 건강해질 수 없다. 나의 배경이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하나의 이야깃거리는 될 수 있고, 나를 이해하는데 참고 정도는 될 수 있지만, 내가 한국인이라서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면 그것이 진정성 있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낮다.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비교를 하자면, 누군가 내 직업이나 집안만 보고 내게 접근하는 것과 별다를 게 없다고도 할 수 있겠다. 또 정말 만약에 내가 옐로 피버인 어떤 남자를 너무 사랑해서 모든 걸 다 이해하고 만난다고 해도 그 관계는 힘들 것 같다. 내 연인이 나를 좋아하는 이유가 내가 나라서가 아니라 그저 내 인종때문이라면, 그는 가까운 미래에 또 다른 ‘한국인 여성’에게 호감을 느껴 떠나버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글을 읽고도 옐로 피버를 아직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것이 얼마나 불쾌한 것인지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 나도 겪기 전까지는 그 심각성을 크게 인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S말고도 옐로 피버적인 성향을 보인 사람들이 몇 명 더 있었는데, 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음 편에서 계속 이어나가보려 한다.
+) 혹시나 하여 첨언하자면, 백인 남성과 동양인 여성 커플의 경우가 모두 옐로 피버라는 일반화를 하시는 분들은 없으시기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시는 국제커플은 인종이나 문화를 초월한 분들이라면, (개인적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함) 옐로 피버는 반대로 문화나 인종을 초월한 것이 아니라 인종이라는 족쇄를 발목에 채운 관계라고 비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