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이의 유럽일기 Mar 24. 2017

10년만에 찾은 '하고싶은 일'

 



나는 남들이 잘 닦아놓은 길을 나름대로 벗어나지 않고 잘 따라가고 있었다. 그 곳이 외강내유형 인간인 내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유용하고 편리한 곳인것은 알고 있었지만, (회사를 나오고 직장 없이 독일에서 정착하려고 애써보는 지금은 더 많이 느끼지만) 딱히 대안이 있어서 뛰어내린 것도 아니었다. 

지금 당장 창업을 할만한 아이디어나 돈이나 배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처음에는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 해도 도무지 알지를 못했고,

나중에는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는 것도 결국 자기계발서들이 떠들어대니까 그런 생각이 든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며 '무욕'의 상태까지 간 적도 있다. 

지금까지 해오던 일은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괜찮은 일이었고, 지금도 내가 존경하는 수 많은 선배, 동료님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 곳이고, 또 내가 거기서 더 노력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끝끝내 그 배에서 뛰어내렸다.


그렇게 하기까지 내 인생에서 3가지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1. 잊을 수 없는 질문이 있다.


2008년 일본 힐튼 호텔에서 일할 무렵.

 호텔이 3D 직종이란 걸 몰랐고, 함께 일하는 일본 직원의 텃새에 힘들어진 나는 3개월 만에 '그만두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아직 학생이었던 시절의 내가 예상한 매니저의 반응은 '무엇이 힘드냐'고 묻거나 '왜 이리 약해빠졌냐'고 다그치거나 뭐 그런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매니저는 이렇게 말했다.




パクちゃん, 今, 楽しい? 
파쿠쨩, 지금 (일) 재밌어?




그런 질문은 살면서 처음 받았었고, 지금까지도 다른 누구에게서도 받은 적이 없다. 





이 일이 재미없다면 그만둬도 돼.
우리도 이 일이 재미없는 사람과는 함께 일하고 싶지 않아.



나는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그만두고 - 계속 일을 해서 약속한 1년을 채웠다. (그리고 만성피로와 체력저하를 얻었다는 후문...)





2. 잊을 수 없는 꿈을 꾼 적이 있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 꾼 꿈이었다. 꿈 속에서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가슴이 설레고 터질 것 같이 뛰고 벅차오르고 막 그런 느낌이었다. 당연히 현실에선 그런 느낌을 느낀 적이 없다.

하지만 그 때의 느낌이 너무 생생해서 꼭 그런 느낌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늘 생각했다.





3. 잊을 수 없는 눈물이 있다.


어느 날 혼자 1인 노래방에 갔다. 노래방을 워낙 좋아해서 기분이 좋건, 그냥 그렇건, 나쁘건 가고 싶을 때 종종 간다. 그 날은 기분이 그냥 그런 날이었다. 딱히 고민에 빠져있거나, 힘든 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거기다 뭔 노래를 부를지도 생각이 잘 안나서 인기차트에 있는 아는 노래는 다 한번씩 불러보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같이 가면 쪽팔려서 못부르는 뭐 그런 노래들. 그러다 Dream girls OST인 'Listen'을 불렀다. 그런데 아래 가사를 부르는데, 가슴이 엄청 먹먹해 지면서 눈물이 나는 거.



There is someone here inside
Someone I thought had died so long ago


'내 안에 누군가 있어요. 오래 전에 죽었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이요.'

뭐 이런 느낌으로, 정말 내 안에 '아직 나 죽지 않았어 -'라고 외치는 또 다른 누군가가 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정말 간절하게 울부짖고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그 때 결심한 것 같다.



'그래, 뭐가 될진 모르겠는데 한 번 계속 찾아보자. 포기는 하지 말자.'


이 경험들이 매순간 온 몸에 느껴져서 아주 간절하게 살아오고 노오오오력하고 그런 건 아니었다. 그냥 길도 잘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게 지치고, 저 편한 길이 부러워 보일 때 쯤, 그 때 쯤 한 번씩 저 경험들이 아직 내 마음에 생생하게 남아서 잔잔하게 나를 울린다.



그리고 오늘이 되어서야, 나는 드디어 주위 사람들에게 내 스스로에게 직업을 내렸노라고 '직업 공표' 같은 걸 했다. 지금까지는 자신이 없어서 말하지 못했다. 이전 글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백수'라고 말하는 게 더 편했으니까. 내 이름 석자 앞에 어떤 타이틀을 달기 위해서는 적어도 내가 단 몇 푼이라도 돈을 벌고 있거나, 아니면 당당하게 보여줄 아웃풋을 쌓아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나는 깨달았다. 그것조차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의 잣대를 의식한 판단일 뿐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구구절절 글을 끄적였다. 


내가 디지털 노마드라고.

내가 작가라고.

내가 블로거라고.

내가 콘텐츠 크리에이터라고.


내가 쓴 글이 하나면 어떻고, 둘이면 어떠랴.

내 블로그가 아직 미천하면 어떠랴.

내가 만든 영상이 아직 몇 개 안되면 어떠랴.

앞으로 만들어 갈 것이 넘치고 넘치는데.


그리고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할 수 있을 용기가 생긴 순간에 말하지 않으면,

프로페셔널해지기 어려울 것 같았고, 또 어영부영 우물쭈물 거릴 내 모습이 눈에 선해서 엉덩이를 뻥 걷어차버렸다.



나가, 나가서 일해.



옙 노이님 :)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달립니다. (근데 일단 집부터 구해, 제발)




+) 그리고 꿈에서 느꼈던 그 벅차오르는 두근거림

사랑하는 사람에게서만 느껴지는 줄 알았던 그 느낌이

페이스북을 통해 주위 사람들에게 내 다짐을 공표한 순간부터 몇 분 동안 내 마음속을 일렁이고 지나갔다.

그 감정이 사라지는게 아쉬워서 이 글을 남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대로 죽어도 좋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