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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Dec 30. 2022

길가다 듣는 칭챙총, 무시가 답일까?

길을 걷다 갑자기 누군가 나를 향해 의미를 알 수 없는 모호한 말을 뱉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독일에 처음 왔을 무렵, 시작은 '니하오'였다. 동양인이 신기한 외국 사람의 가벼운 농담 정도로 여겼다. 때로는 나는 한국 사람이고, 한국어로 인사는 "안녕하세요"라고 친절히 알려주기도 했다. 그때는 내게도 이국땅의 모든 외국인이 익숙하기보다 새로웠고, 그래서 나도 그들에게 그렇게 보이나보다 했다. 기분이 나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내게 더 이상 말을 걸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고, 대부분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눈 후 지나쳐 간다.  '니하오'나 '곤니치와'까지는 개인적으로 기분이 나쁠 정도는 아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인사를 걸어오는 사람도 드물어졌다. 하지만 동시에 해가 갈수록 한단계 레벨업된 일들을 겪기 시작했다.



가장 낮은 단계의, 가장 낮은 수준의, 하지만 똑같이 열받는 인종차별의 시작과도 같은 게 나는 바로 '칭챙총'이 아닐까 한다. 나를 보고 검지손가락으로 눈을 찢으면서 칭챙총을 입에 담으며 놀리거나 칭챙총이 아니더라도 내게 꺼지라는 등의 욕을 한다. 생전 처음 보는 모르는 사람이 말이다. 이런 일은 비단 해외에 거주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도 종종 겪고는 한다. 코시국에 특히 더 심해져 불안을 야기하기도 했을 정도다.



문제는 이런 류의 일들은 굉장히 애매하다는 것이다. 경찰에 신고하기도 애매하고, 따지기도 애매하고, 저 정도의 인성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를 해본들 무슨 진전이 있을까 싶은 마음도 든다. 게다가 보통은 길을 '지나가다' 겪는 일이기에 나는 내 갈 길을 가야 하고, 행여 내가 발걸음을 멈춘다고 할지라도 내게 지껄인 사람은 자기 할말만 하고 벌써 멀리 사라져 버린 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은 마치 길가 곳곳에 싸질러져 있으나 누군가 치우지 않은 똥과 같아서 내가 피하고 싶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며, 대비를 할 시간도 없다. 나는 그저 지나갈 뿐이었으나 그 똥이 내가 가는 길에 있었다. 보기도 하고 냄새도 맡았지만, 싫어도 그냥 지나가야 한다. 누가 쌌는지, 누가 안치웠는지, 붙들고 따지는 건 현실적으로도 전적으로 나의 시간 손해이자 에너지 손해다. 내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보통은 그냥 지나가는 수 밖에 없다. 만에 하나 따지고 들다가 나에게 해꼬지를 한다면 그게 더 위험하니 안전을 위한 이유가 첫째요, 둘째는 따지고 싶어도 내 외국어가 그만한 실력이 못되어 머릿 속에 번역기를 돌리다가 상대는 벌써 사라져 있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말을 들은 날이면 그말과 목소리, 톤, 얼굴 표정 등이 머릿 속에서 수십번, 수백번 리플레이 되며 마음 속에 화가 부글부글 나는 것이다.



이런 일을 나름의 동지인 다른 한국 사람들에게 털어놔봐도 100% 공감을 받는 것도 아니다. 왜냐면 생각보다 더 많이 이런 류의 사건에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체감상 한쪽은 '뭣 모르는 애들이 하는 수준 낮은 행동'이니 그냥 무시하는 게 내 정신 건강에 좋다는 파'와 '그래도 열받는다. 어쨌든 엄연한 인종차별 아니냐. 어떻게 대응 못하나?'라고 생각하는 파로 나뉜다. 나는 양쪽의 의견에 모두 공감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후자에 속한다. 결국 현실적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내게 무엇이 가능할지 답이 바로 보이지 않는 고민을 하고는 한다. 그리고 얼마 전 또 생각할 계기가 생겼다.




Q. 길가다 듣는 칭챙총, 그냥 무시하는 게 답일까?

   A. 길가에 똥이구나 생각하고 무시하고 끝낸다. 그럴 가치도 없다. 무반응이 포인트!

   B. 크든 작든 뭐라도 한다. 무시한다고 끝날 일이 아니라 반복된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할 것 같은가? 나의 선택을 말하자면 B다.

당장 내가 칭챙총을 내뱉는 개인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을지라도 나는 결코 그것을 '그냥 무시하고 끝낼 수는' 없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첫째,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정말 가마니로 본다.


핵심은 이거다. 저런 말을 길에서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그래도 된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한다. 등에 호랑이, 팔에 용문신 새긴 건장한 아저씨에게 저런 장난을 칠까? 절대 아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이라도 해야 저런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작은 변화'라도 생길 수 있다. (그렇다고 너무 과하게 대응하면 안되니 상황에 따라...) 나는 다음에 저런 사람을 만나면 한국말로라도 뒤통수에 대고 뭐가 됐든 한 마디를 해줄 각오를 다지고 있다.


둘째, 내가 무시해도 다른 아시아인이 또 겪는다.


그들은 '나'를 노린 게 아니라 그냥 만만해 보이는 '아시아인'을 노린거다. 내가 그냥 지나가고 우리 모두가 무시하고 그냥 지나가면 그들은 절대로 절대로 그 행동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10대니까, 어리니까 몰라서 그렇지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몰라도 잘못한 건 잘못한 거다. 10대니까 괜찮다는 건, 10대니까 담배 펴도 돼, 10대니까 싸움 좀 할 수 있지 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행여 어린 마음에 그럴 수는 있을지언정, 무엇이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이고 아닌지 정도의 피드백도 그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셋째,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하나의 사회적인 현상으로 보는 시각도 가져야 한다.


칭챙총을 외치고 동양인을 무시하고 시비거는 불특정 다수를 개개인으로 보지 말고, 이 사회가 가진 하나의 '단면'으로 봐야 한다. 저런 사람 하나하나를 바꾸는 것보다 사회의 분위기를, 뿌리를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고 빠를지도 모른다. 결국 이런 일이 용인되는 것은 아직 인종 간 평등한 사회로 가기에 갈 길이 멀었다는 하나의 '현상'인 것이다. 오히려 이런 칭챙총은 귀여운 수준이고 사회의 뿌리깊은 곳에는 더 뿌리 뽑혀야 하는 인종 차별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외국인의 입장에서 타국에 사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도 아무 말을 못하더라도 한심하다는 얼굴로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차주든, 좋은 말로 충고를 해주든, 한국말로 뒤에서 한마디 해주든 '너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피드백' 정도는 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Q. 길가다 듣는 칭챙총, 그냥 무시하는 게 답일까?

   A. 길가에 똥이구나 생각하고 무시하고 끝낸다. 그럴 가치도 없다. 무반응이 포인트!

   B. 크든 작든 뭐라도 한다. 무시한다고 끝날 일이 아니라 반복된다.





덧.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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