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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May 18. 2017

여자라서 아픈 게 당연한 줄 알았다

마법에서 깨어날 시간이 되었어요, 공주님



 오랜만에 일기 매거진으로 돌아왔다. 오늘 하루는 꼭 기록할만한 기념적인 변화를 경험한 날이기 때문이다. 독일에 온 지도 어언 두 달 남짓이 되었다. 그러니까 여자들의 세계에서 이야기하자면, '그 날'을 두 번 겪었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독일에 와서 좋았던 점은 바로 생리대가 저렴하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그나마 괜찮았던 나트라케어를 대량 구매해서 사용했었는데 처음 갔던 마트에서 보이지 않아서 대충 눈대중으로 어림잡아 아무 녀석이나 골랐다. Always라는 브랜드였는데, 괜찮다는 후기도 보았었지만 개인적으로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그래서 또 다른 걸 기웃기웃 거렸다.


 나는 생리통이 정말 정말 심한 케이스는 아니다. 하지만 전혀 없는 것도 아니고, 그 고통의 레벨도 매번 들쑥날쑥이라 어떤 날은 아무것도 못하고 드러눕기도 하고, 어떤 날은 또 그럭저럭 버틸만한, 그런 몸으로 살고 있다. 그러다 일반 생리대가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 나트라케어를 쓰기 시작했는데, 증상이 '완화'되는 것은 느껴졌지만 확실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면생리대라는 대안이 보이긴 했으나, 앞에 말한 것처럼 매번 죽을 듯이 아픈 몸은 아닌지라... '매번 빨아야 한다는 것이 싫어!'라고 외치는 귀차니즘이 늘 승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에게 이런 인식이 있었던 것 같다.




생리통은 당연히 조금씩은 있는 거니까. 참아야지 뭐.




 생리통이 심하고 심하지 않고의 차이는 몸의 건강 상태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해 왔다. (그냥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결과 혼자 내린 판단일 뿐입니다만...) 그래서 내 통증도 몸 상태에 따라 들쑥날쑥 이고, 내 몸이 엄청 건강해지지 않는 이상, 특히나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 입장에서 이 정도 통증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일을 하면서 배가 아파 힘이 들어도, 그래도 의자에 앉아서 일을 할 수 있으니 서서 일하시는 분들을 생각하거나, 통증이 더 심한 분들을 생각하면, 이건 엄살이라고 생각하며 참았다. 그래도 요즘은 제도가 많이 바뀌어서 초중고에서도 생리 결석이 가능해진지 꽤 되었다고 하고, 나도 대학 시절에는 생리 결석을 꽤 잘 이용했었다. 회사도 생리 휴가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이 총성 없는 전쟁터에서 생리 휴가는 빚 좋은 개살구일 뿐이었다. 복지가 좋아서 여성 취준생에게 꽤 인기가 높았던 내 첫 회사에서 생리 휴가에 관해서 이런 공식 발표를 한 적이 있었다. 




"생리 휴가가 있고 사용할 수 있지만,
기본 연차 및 병가를 모두 사용한 후에 사용할 수 있음"



그렇다. 그냥 사용하지 말라는 소리였다. 생리를 일 년 뒤에 몰아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저 발표를 한 분이 심지어 여성 인사팀장님이었다), 기본 연차도 눈치 보느라 다 못 쓰고 돈으로 받기 일쑤일 때였다. 나온 지가 꽤 되었기에 요즘은 어떤지 또 모르겠다. 큰 차이가 있으랴. 한 마디로 이름뿐인, 허울뿐인 생리 휴가였다. 결국 우리는 알아서 버티거나,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생리대를 바꾸지 않았던 이유에는 이런 생각도 한몫했다.





한 달에 한 번인데 뭐



 간단하게 생각해서 한 달에 한 번. 하루만 아프다고 최소화시켜서 생각해보자. 그럼 나는 단순해서 금붕어처럼 잊고 지나가고 또 다음 달에 아픔을 견뎠다. 그런데 이게 계산을 해보니 한 달에 한 번인데라고 할 이야기가 아니었다. 요즘 초경이 빨라진다고 하지만, 대략 15세에 초경이 시작되고 40세에 생리통이 사라진다고 가정하였을 때(폐경과 상관없이 생리통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하네요), 1년에 12번, 25년이면 300번을 그 고통을 겪게 된다. 정말 최소화해서 계산한 것이고 개인차가 크겠지만, 몇 백번을 겪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자주 아프다고 고통이 익숙해지지도 않는다. 



 그러던 중에 독일에 거주하는 여성분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 '생리컵'에 관련된 글을 보았다. '생리컵이 뭐냐', '어떻게 쓰는 거냐'는 질문글이 올라와 생리컵은 한동안 이 커뮤니티의 '뜨거운 감자'였다. 하지만 사진으로만 봐서는 도통 어떻게 쓰는 물건인지 감이 오질 않고, 첫인상에서는 백이면 백 거부감이 든다. 그래서 나도 두 번, 세 번 그 글을 봤어도 제대로 보지 않고 넘겨버렸다. 그런데 사람들의 후기를 대충이라도 보면 볼수록, 호기심에 자꾸 끌렸다. 그들이 말하는 장점은 이랬다. 



생리통이 매우 심했는데 생리컵 쓰고 생리통이 사라졌어요!
면생리대를 써도 혈의 냄새가 조금 나기 마련인데, 이건 냄새가 안나서 좋아요!
짓무름이 없어 찝찝하지 않아서 너무 좋네요. (특히 여름...)
하나를 사면 10년까지 쓸 수 있어서 쓰레기도 덜 나오고 경제적이에요!
매우 편안합니다 ㅠ.ㅠb 신세계!



물론 단점도 있었다.




생리컵 넣는 게 너무 무서워요. (혹은 무서웠어요)
처음에 잘못 꼈는지 새요 ㅠㅠ
넣고 나니 빼는 게 더 무서워요...
밖에서 갈아 끼울 생각을 하니까 못하겠어요...




단점들의 대부분은 처음 적응하는 기간에 겪는 단기적인 부분들이었고, 일부는 개인차도 존재하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나는 과감하게 도전해보기로 결심했다.




나의 첫 생리컵, 기념 사진 '찰칵'




 그리고 오늘 DM(데엠, 독일의 대형 마트)로 달려가서 Meluna라는 브랜드에서 나온 생리컵을 샀다. 가격은 15.95유로. 한화로 약 2만원 정도라고 보면 된다.

 이게 독일에 사는 장점 중 하나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 한국에서도 직구는 가능하지만 한국 정부에서 생리컵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어서 한국에 정식 발매가 아예 금지된 상황이라고 한다. 독일에서도 다양하지는 않지만 Made in Germany인 Meluna라는 브랜드가 정식 판매되고 있어서 바로 구매할 수 있었다. 크기는 대, 중, 소가 있었고 넣는 게 어려웠다는 후기들 때문에 쫄아서 제일 작은 걸로 구매했다. 네이버나 유튜브에 조금만 검색하면 생리컵에 대한 정보는 이미 가득가득하니 이용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까지 이 곳에 적지는 않겠다. (댓글 질문은 받겠습니다) 아무튼 이 신기한 녀석을 컵에 담아 전자렌지에 5분 동안 돌려 소독을 시켰다. 그리고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도전! 처음 넣을 때 고생했다는 글을 워낙 봐서 걱정했는데, 나는 한 4번째 정도에 성공했다. (혹시 시도하실 분들이 있다면 꼭 유튜브 영상을 찾아서 정보를 얻고 시도해보시길 권한다.)


아직 사용한 지 정말 얼마 안 되었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신세계는 확실한 것 같다. 

나의 후기를 쓰자면...



탐폰보다도 잘 들어갔고, 탐폰보다도 이물감이 느껴지지 않으며, 마치 생리대를 안 한 것처럼 편안하다!!! 

당연히 냄새도 안 날 것이고, 내일 운동할 때 찝찝함도 없겠지!!! 와, 신난다!!! 



 블로그 후기를 보다 보면 이런 이야기가 조금 조심스럽지만 이라며 부끄러워하시는 분들이 계시던데, 뭐 어떤가. 여성에게 너무너무나 중요하고 당연히 알아야 할 이야기인 것을! 이번에는 생리통 기간이 다 지나고 착용을 해봐서 실제 생리통이 사라지는지 어떤지는 다음 달이 되어봐야 알겠지만, 다른 장점들도 워낙 만족스러워서 나는 벌써 주변 지인들에게 추천할 생각에 들떠있다. (시차 때문에 참는 중)



 이 글이 아직 생리컵을 몰랐던 분들에게는 '호기심'을, 살까 말까 망설이셨던 분들에게는 '찬성의 한 표'가 되어 모든 여성이 조금이라도 더 자유롭고 편안해지는 날이 오기를!








덧1) 내가 일반 생리대 사용을 거부하게 된 에피소드 하나. 국내 시중 브랜드에서 나온 탐폰 제품을 쓰다가 실수로 못쓰게 되버려서 (바깥 플라스틱 부분이 그냥 빠져버렸던가...) 안에 있는 탐폰 솜을 해체(?)해본 적이 있는데 그거 보고 '헉'해서 일반 생리대 다 버렸었다. 뭔가 굉장히 인공적인 느낌이 심해서, '이걸 넣어야 한다고?' 이런 느낌이었다.


덧2) 독일은 탐폰도 다르게 생겼다. 우리나라처럼 바깥에서 감싸서 밀어넣어주는 고체의 케이스가 없다. 얇은 비닐로만 덮여있고, 그것을 양쪽으로 비틀어 뜯으면 그냥 탐폰만 있다. (처음에 매우 당황해서 못 뜯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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