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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May 19. 2017

함부르크의 아침 한 조각

자연과 도시가 아름답게 섞인 곳, 살아보면 더 감탄하게 되는 곳.




 요즘 나는 아침에 알람 없이 일어나고 있다. 신기하게도 알람이 없음에도 회사에 다닐 때 보다 더 일찍 깬다. 보통 그렇게 일어나면 7시 반에서 8시 반 사이에 일어나는데, 오늘 아침은 좀 달랐다. 기분 탓인가 하고 눈을 비비고 스마트폰을 보니 시간은 5시 21분. 어제 잠깐, '다시 천천히 5시 기상에 도전해볼까'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실현하게 될 줄은 몰랐다. 갑자기 바꾸는 건 무리라는 생각에 7시부터 도전해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얼결에 5시 기상 프로젝트 재가동 모드가 되었다. 눈을 떠서 정면에 보이는 창문을 바라보니 창문가에 비치는 햇빛의 색깔이 평소보다 짙었다. 평소 같은 쨍한 햇살이 아닌 농염한 붉은 기를 띈 노랑이랄까. 더 잘까 말까 고민을 하려고 다시 누웠다. (라고 쓰고 잠을 청한다고 읽는다) 그러다 불현듯, 그 농염한 햇빛이 다시 떠올랐다. 




5시 21분? 해 뜨는 시간이잖아?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을 무척 좋아하면서도 아침잠이 많아 늘 '포기'를 외쳤던 나는, 보러 가지는 못하더라도 해가 뜨는 시간은 외우고 있었다. 이게 웬 횡재인가 하고 창가로 달려갔다. 새로 옮긴 집은 기본적으로 침실과 거실이 북쪽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해가 뜨거나 지는 모습을 보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조금만 고개를 돌리니 해가 저 멀리서 떠오르고 있었다. 








 아까 그 농염한 햇빛의 정체가 저기 숨어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거나 친구 집에서 지내면서, 아침에 일어나 집에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건 더할 나위 없이 큰 행복이라는 생각이 요즘 더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냥 일단 집을 구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던 함부르크에서 그것까지 기대하지는 않았었기에, 마치 서프라이즈 선물을 받는 기분이었다. 내친김에 더 바라보고 싶어서 창가에 걸터앉았다. 





대충 이런 상태-였다는 걸 남기고자 찍은 사진




편안한 각도는 아니지만, 나름 운치 있게 해를 바라볼 수 있었다. 행복, 그래 이게 행복이지. 

함부르크의 아침 중 오늘이 가장 행복한 아침이었다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이 시간과 공간은 너무나 평화로왔고, 따뜻하게 내 마음과 몸을 감싸는 기분이었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다시 침대로 가지 않고 하루 일과를 조금 앞당겨서 시작했다. 아침에 하는 일들 몇 가지를 끝내고 운동을 하기 위해 나선 시간이 7시 20분 정도.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고, 사람들도 출근길에 오른다. 








 지난번에 잠깐 둘러보았던 공원 쪽으로 발길을 향했다. 함부르크는 가을, 겨울이 을씨년스럽기는 해도 봄, 여름만큼은 정말 아름답다. 함부르크와 뮌헨이 '독일에서 살기 좋은 도시'로 1, 2위를 다툰다는데 과연 그 기분을 알 것도 같다. 





자연과 도시가 아름답게 섞인 곳
살아보면 더 감탄하게 되는 곳





나는 함부르크를 개인적으로 그렇게 정의한다. 함부르크에 있다가 서울에 가면 가장 먼저 탁 막힌 공기와 (특히 요즘 미세먼지가 더 한몫하겠다) 빽빽이 들어찬 건물들이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함부르크는 높은 건물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고, 어디든 작든 크든 공원이 잘 마련되어 있다. 특히 여기 와서 내 마음을 가장 사로잡는 건 바로 작은 동물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닌다는 것. 그중 내가 가장 애정 하는 녀석은 바로 '토끼'. 아침에 인적이 드문 공원 잔디밭을 유심히 살펴보다 보면, 토끼를 볼 수 있다. 늘 한국에서는 철장 안에 갇혀 있는 토끼의 모습만 보다가, 잔디밭을 깡충깡충 뛰어가는 토끼의 뒤태를 보고 나는 그만 반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오늘은 영상까지 찍었다. 




너무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ㅠㅠ



집 근처에는 유치원, 초등학교, 대학교(로 추정되는 건물)가 다 있어서 아침 운동길에 나는 꼬마 아이부터 엄마의 나이대까지 다양한 독일 사람들을 구경한다. 아이들은 늘 신이 나서 꺄르르 거리고, 조금 큰 아이들은 금발의 동양인이 신기한지 흘낏흘낏 쳐다보다 웃어주면 시선을 피한다. 8시가 다 되어갈 즈음에는 벌써 초등학생들이 등교를 하고 있었다. 나보다 더 부지런하구나. 



꼬마들이 저 수레차에 앉아 발을 콩콩 굴러대며 신나하고 있었다.




 해가 좀 더 중천으로 올라가니 날 좋을 때 유치원 아가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가려는지 옆 동네 유치원 선생님들의 준비가 분주했다. 꼬꼬마들 손잡고 산책을 나가거나 봉고차에 태우는 것만 봤던 내게 문화 충격이었던 6인용 수레차(?). 너무 신기해서 사진을 찍었다. 


 의도치 않게 평소보다 일찍 깨어나서 오늘은 저녁 7시 반이 되었을 뿐이었는데 엄청나게 피곤이 몰려왔다. 지금은 서머타임 기간이라 함부르크는 해가 9시 반 전후로 그 모습을 감춘다. 그래도 해가 계속 밝아서, 10시가 다 되어가도 어둑어둑해지는 정도이지 깜깜해지지는 않는다. 5시 기상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하면, 10시쯤 자서 5시에 일어나게 되는데 그러면 서머타임 기간 동안은 깜깜한 밤하늘을 보지 않고 낮만 느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백야를 겪어본 적은 없지만, 이런 비슷한 느낌이려나. 반백야를 겪고 있는 기분. 처음 한국에서 5시 기상에 도전했을 때가 겨울이라, 춥고 어두컴컴한 그 기분이 늘 나를 이불로 밀어 넣었는데 왠지 이번에는 꾸준히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함부르크의 아침 한 조각, 끝.






덧) 글을 마무리하려는 찰나 비가 그치고 하늘이 붉게 물들어 또 창가로 달려갔다. 해는 놓쳤지만, 그가 남긴 고운 색깔을 미천한 인간의 기기에 억지로 담아보았다. 일몰과 일출 만으로 행복한 하루라니. 오늘은 참 운이 좋은 날이다. 




이랬던 하늘이 몇 분만에 아래처럼 변했다


사진 보정 안한 이미지이다. 실제는 더 예뻤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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