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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Jun 09. 2017

아침이 가져다준 삶의 변화

마치 모든 순간이 '마감 시간이 코 앞에 닥친 것처럼 사는 기분'이었다.



 오늘은 이른 아침에 엉겁결에 잠이 깨었다. 그럴 만도 했다. 어젯밤에 불은 다 켜놓고, 심지어 초에 불도 붙여놓고, 노트북을 만지다 말고 잠이 들었더랬다. 잠자리도 바뀌었었다. 거실에 둔 소파베드가 얼마나 편한지 궁금해서 시험해 볼 겸 거실에서 잠을 청했다. 새벽에 일어나 불은 끄고 다시 잔 것 같은데, 5시 20분 해가 뜨는 그 시간 즈음에 한 번 더 잠에서 깼다. 거실은 침실보다 더 동쪽을 향해 있어서 그런지 흐린 구름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에 잠이 깬 것도 같았다. 잠자리가 평소랑 다르게 많이 바뀐 것 치고는 그래도 개운한 느낌이다. 걱정했던 것보다 소파베드는 베드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는 듯했다. 침실에서 해를 보려면 침대에서 내려와서 창문까지 가서 고개를 돌려야 해가 보였는데, 거실에서 잠을 자니 일어나서 창문 쪽을 바라보기만 해도 해가 보였다. 쨍한 하늘은 아닌데도 몽롱한 것이 예뻐서 잠결에도 이불을 더듬어 스마트폰을 찾은 뒤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 하늘이 흐려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하늘이 장대비를 억수처럼 쏟아붓기 시작했다. 구름보다 열 뼘 더 높은 곳에서는 천둥소리가 희미하게 반복되고 있었고, 하늘의 이곳저곳에서 번개가 내리치고 있었다. 나는 날씨에 따라 기분이 잘 바뀌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요즘은 좀 다르다. 맑은 날씨에는 여유롭고 나른해져 좋고, 흐린 날은 시원해서 좋다. 천둥 번개가 치는 날은 가끔 조금 무섭긴 하지만, 번개가 치는 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기분 좋은 긴장감이 온몸에 전류처럼 흐르면서 들뜬상태가 된다.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빠르게 사라지는 번개의 모습을 붙잡기 위해서, 내 눈은 이리저리 바삐 굴러가며 하늘의 눈치를 본다. 분명히 봤는데 너무 빨리 사라져서 본 것 같지 않은 번개를 쫓아다니기를 몇 차례. 찬 바람에 몸이 슬슬 식고, 예상보다 일찍 일어난 게 피곤했는지 몸이 자꾸 쳐진다. 따뜻한 허브차를 우려내서 다시 창가에 섰다. 





 집 앞에는 짧은 횡단보도가 있는데, 그곳의 차도와 인도 사이가 순식간에 물이 가득 차올라 개울물처럼 흥건해져 있었다. 갑자기 쏟아진 비를 피하기라도 하려는 듯 차들은 이른 아침부터 쌩쌩 달리며 지나갔다. 잠이 덜 깬 몽롱함에도 이 급변하는 날씨가 너무 좋아서 '번개 한 번만 더 보고, 한 번만 더 보고'를 마음속으로 되뇌며 눈을 떼지 못했다. 비는 언제 그랬냐는 듯 그치고 천둥소리는 멀어져 갔지만, 번개는 계속 이따금씩 내리치고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이렇게 졸음을 참으면서 차 한 잔을 손에 쥔 채, 다소 거친 날씨를 바라보는 아침의 이 시간이 너무나도 여유롭게 느껴졌다. 





 나는 평생을 살면서 내가 자발적으로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침잠도 많거니와 의지도 약하기 때문이다. 가끔씩 일 때문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 날이면, '아 역시 아침에 일어나는 건 상쾌하긴 하네'라고 생각하며 '다음엔 좀 일찍 일어나 볼까?'라는 다짐을 하지만 백이면 백, 다시 늦잠 모드로 돌아간다. 생각해보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몇 년 동안 받아온 건지. 그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평생 동안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온 건 아닐까 싶었다. 마치 어릴 때부터 밧줄에 묶여서 자란 아기 코끼리가 어른이 되어서 밧줄을 풀 힘이 생겨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처럼, 아침에 대한 우리의 도전도 해가 갈수록 잠잠해지고 '나는 야행성 인간이야'라는 결론을 내리고 멈추고 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더 이상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백수가 되고 나서도 나는 계속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싶었다. 아침에 하는 명상, 아침에 하는 운동, 아침에 쓰는 모닝 페이지... 이 작은 변화들이 하루의 시작을 어떻게 바꿔주는지 느끼고 난 이후에는 아침의 시간이 모자랄 정도였다. 그래서 가능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침대에서 나오려고 애써보았다. 그리고 오히려 일을 할 때 보다 일을 하지 않을 때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더 쉬웠다. 


 열심히 일할 거니까 체력을 비축해야 해

보상 심리인 걸까. 일을 하러 가는 날이면 침대에서 나오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열심히 일을 할 거니까 조금이라도 내 몸을 쉬게 해야겠어, 라는 핑계를 대며 5분만 더, 10분만 더 잠을 청한다. 하지만 아침의 소중함을 깨닫고 나면 조금 더 쉬워진다. 침대에서 나오는 일이.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는 일은, 마치 짧은 삶이 매일 아침 태어나고 매일 밤 잠드는 순간에 죽는, 그런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기분이 든다. 많은 양서들이 아침의 중요성을 말할 때에도 나는 '저런 건 아침형 인간들이나 하는 소리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하루의 시작에서 에너지를 얻고, 여유로움을 누리는 일이 그 날 하루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각하면, 아침은 절대 허투루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아침의 짧은 10분에서 1시간 동안 나만의 시간을 갖느냐 갖지 않느냐로 내가 그날 보낼 12시간 이상의 시간이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 나의 인생이 된다. 



 아마 이런 이야기는 이미 많은 자기계발서에서 이야기되었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별로 와 닿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 개인적인 변화에 대해서 몇 가지 들려주고자 한다. 





하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자존감 향상'이다. 


 아무리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더라도 본인이 그런 삶에 만족하고 몸이 건강하다면 괜찮다. (故신해철 님처럼... 그분의 기상/수면에 대한 사상을 우연히 들었을 때 감탄했다) 하지만 내 경우는 늦게 자고 난 다음 날은 잠을 충분히 자도 늘 멍한 상태였고, 몸이 금세 피로해졌고, 조금만 움직여도 저녁 시간이 될 때면 '벌써 하루가 갔다'는 허망함과 함께 자괴감이 밀려왔다. 아마도 '부지런해야 한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건 게으른 일이다'라는 사회에서 나고 자라온 터라 더 그렇게 느꼈을 수 있겠다. 눈을 떴는데 해가 중천인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모두가 달리고 있는 세상 속에서 나만 구석에 나동그라져 있는 기분이었다. 

 밤늦게 자더라도 생산적인 일을 했다면 상관이 없는데, 보통은 그렇지 않았다. 친구들과 시시콜콜한 수다 떨기, 페이스북 좋아요 누르기, 인스타그램, 인터넷 뉴스, 인터넷에 넘쳐나는 온갖 새로운 정보의 홍수 속에 떠다니다가 잠들기 일쑤다. 가장 자책이 심하게 드는 시간은 그 시간, 잠들기 전이었는데, 새벽 2시, 3시가 되어가는 시계를 바라보면서 '또 이 시간까지 별 의미 없는 것만 했네.'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다. 분명 일을 안 했으니 쉰 것 같은데 제대로 쉰 기분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부정적인 생각으로 잠이 들면 그 기분이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졌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싫은 것은 물론이고, 억지로 일어나 시작한 하루가 힘들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일어날 때의 내 상태에 영향을 끼치는 건 그 순간의 스스로의 의지보다는 전날 밤의 상태나 의지가 훨씬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게 되자, 그런 생각이 멈췄다. 몸은 평소와 달라진 기상 시간 때문에 적응 시간이 좀 필요하긴 했지만, 기분은 훨씬 상쾌했다. 당연히 스스로를 자책하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그것은 내 자존감을 올리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으로 연결되었다. (주의할 점은, 그러다가 다시 작심삼일이 되었다고 해서 '역시 난 안돼'라고 또 자책하는 습관을 가장 1순위로 경계해야 한다. 평생을 살아온 습관이 3일 만에 고쳐지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둘. 나에게 중요한 일을 먼저 함으로써 내 삶을 주도적으로 살 수 있다. 


 일을 하면서, 학교를 다니면서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에게 중요한 일이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쉽다. 


'눈뜨자마자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출근하고, 등교하는데 중요한 일을 하는 게 아니라고?'


아니다. 이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회사를 가는 것은 사장과 주주를 위한 일이지 진짜 나 자신을 위한 일은 아니다. 학교를 가는 것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의무 교육을 받는 것 혹은 회사가 원하는 이력을 만들기 위함이지 진짜 나 자신을 위한 일은 아니다. 그럼 나 자신을 위한 일은 뭔데? 진짜 나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해서 뭐 대단한 게 아니다. 내가 사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이 회사 업무나 공부에 치여서 밀린 적이 있지 않은가? 배우고 싶었던 새로운 외국어나 취미가 업무와 학업에 밀려서 포기하게 된 적이 수도 없이 많지 않은가? (당신의 의지가 유난히 약한 게 아니다. 낮에 그 정도로 집중하고 일했으면 그 이후에 피곤한 건 당연한 이치이다!) 아니면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오늘 있을 일들을 어떻게 진행할지 미리 생각해보고 출발하는 여유를 가진 적이 언제였던가? 

 

 우리는 늘 생각한다. '일 끝나고 해야지, 주말에 해야지.' 하지만 늘 주어진 일을 한 '이후'에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몸이 지쳐있기 마련이다. 너무나 당연하다. 당연히 '오늘은 피곤하니까 다음에' 혹은 '오늘 열심히 일 하느라 수고했으니까 다음에'라는 생각으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미루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내 삶의 주도권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업무나 학업에 소홀해지라는 것이 아니다. '내 삶을 위한 일', '나 자신을 위한 일'을 조금만 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냐는 것이다. 그리고 내 삶을 주도적으로 산다는 그 느낌과 에너지를 맛보게 되면 그것에 '중독'되게 된다. 마치 헬스장에 매일같이 나가던 사람이 한동안 안 나가면 몸이 근질근질한 것처럼, 내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내는, 그 '기분 좋은 느낌'을 내 몸이 기억하고 찾게 되는 것이다. 이때 가장 자연스럽게 침대에서 기분 좋게 일어날 수 있다. 마치 매일 소풍을 가는 것처럼 말이다. 



셋. 삶에,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나는 마음에 여유를 갖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늘 무언가에 쫓기듯 살았다. 몸이 한가한 백수가 되어도 힘든 원인은 늘 마음에서 왔다. 사실 서울살이 하면서 여유로워지기가 참 어렵다. 눈 뜨자마자 지각하지 않기 위해 달리고, 열심히 일하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 쓰러지듯 잠이 든다. 그나마 잠자는 시간이 가장 여유로워야 하는데, 스트레스가 심한 날은 불면증이 오거나 악몽을 밥 먹듯 꾸기까지 한다. 마치 모든 순간이 '마감 시간이 코 앞에 닥친 것처럼 사는 기분'이었다. 모든 걸 빨리 해내야 했고, 빨리 움직여야 했고, 체하든 말든 밥도 빨리 먹어야 했다. 과장이 아니라, 나의 회사 생활은 정말 그랬다. 나보다 더 성격 급한 보스의 비위를 맞추기가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런데 내 기상 시간을 30분, 또는 1시간을 앞당겼을 때 내 하루는 완전히 달라졌다. 누군가 퇴근 시간에 나에게 일을 주면서 '내일까지 해주세요'라는 느낌과 '다음 주 까지 해주세요'라고 할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다른 것처럼, 스스로에게 하루에 단 30분이라는 시간만 주어도 하루를 시작하는 느낌이 확연히 달라진다. 


 지금까지 '내 삶에 마감 시간을 촉박하게 주어왔던 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서부터 깨달았다. 'No'라는 말도 못 하고, 제한된 24시간 동안 다른 사람의 요청만 꾸역꾸역 집어넣어서는 나를 돌볼 시간 같은 건 없이 달리고 또 달리고 또 달려왔던 나. 


 그런 나를 멈추게 하고, 한숨 돌리게 하고, 쉬어가게 해야 하는 것은 '오직 나' 뿐이다. 내가 얼마나 지쳐있는지, 얼만큼의 에너지가 남아있는지, 이 일이 쉬운지 어려운지 알 수 있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뿐이다. 몰라주는 상대를 탓할 일이 아니라, 상대가 나를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물론 그걸 알면서도 실제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실천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아침에 30분 또는 1시간이라는 여유를 내게 선물로 주면서 나에게 활력을 주는 일들을 한다. 그 시간에는 상사의 연락도 오지 않고, 친구의 연락도 오지 않는다.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그 여유가 내 하루를 든든하게 지탱해준다. 





 일찍 일어나는 것이 너무나도 어렵다면, 1분도 안 걸리는 변화로 조금이라도 색다르게 시작해보았으면 한다. (본인도 매일 아침 하는 습관 중 하나다)




Smile in the mirror. Do that every morning and you'll start to see a big difference in your life.
- Yoko Ono -


 

거울을 보며 미소 지으세요.
매일 아침 하다 보면, 당신의 인생이 크게 달라지기 시작하는 게 보일 거예요.
- 오노 요코 -

 

 

Photo by Allef Vinic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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