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간 장거리 비행에서 내가 얻은 것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한다는 것이다.

by 노이의 유럽일기
이 글은 2016년 11월 27일부터 2016년 12월 13일까지의 오스트리아, 독일 여행 후기 시리즈 입니다.


Dear Flyers,


지금은 비엔나. 공항에서 5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호텔 6015호에서 이번 여행의 첫 기록을 남겨요. 원래는 공항에서 짧게 노숙을 하려고 했는데, 얼떨결에 호텔에서 숙박을 하고 있네요. 조종사들의 파업으로 비행 편이 갑자기 변경되었고, 비행 시간이 예정보다 빨라져 공항에서 숙박이 어렵게 되자 항공사에서 보상해준다는 조건 하에 호텔에서 1박 묵게 되었습니다. 비행 편이 취소된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는데, 호텔에서도 내 예약을 찾지 못해서 체크인을 하는데 한참이 걸렸어요. 너무너무 너무 (곱하기 백만 개) 졸리고 피곤했던 터라, 아무 방이나 그냥 결제해 달라고 해서 들어와서 짐을 풀었습니다. 예약한 사이트에서는 당일 내로 체크인 처리가 제대로 안될 경우 위약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경고가 뜨고, 다시 내려가서 다른 직원과 이야기를 해봐도 내 예약은 어디로 갔는지 행방불명.


'억울하게 위약금을 내야 하는 게 아닐까', '믿고 잘 썼던 호텔 예약 사이트가 왜 하필 오늘 말썽인 걸까'


허공에 대고 투덜댈만한 불만 사항은 계속 마음에서 스멀스멀 샘솟아 올랐지만, 그런 나의 마음을 정리시켜준 한 마디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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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한다는 것이다.


때때로 비행기에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고른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영화를 보며 크고 작은 감동을 얻는 순간들이 있어요. 이번에 보게 된 영화는 "파파 헤밍웨이 인 쿠바"라는, 헤밍웨이를 주인공으로 한 실화 바탕의 영화였어요. 마침 그 날 뉴스에서, 쿠바의 혁명가이자 독재자인 '피델 카스트로'의 사망 소식을 듣기도 해서 선택했죠. 헤밍웨이를 동경해서 기자가 된 남자 주인공은 헤밍웨이를 향한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보내게 돼요. 그 편지를 받은 진짜 헤밍웨이에게서 감사의 전화 한 통을 받게 되고, 이것을 계기로 두 사람은 매우 가까워지게 됩니다. 당시 쿠바는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에 의한 혁명이 주도되던 시기로 주인공은 헤밍웨이와 함께 지내며 혁명과 관련된 크고 작은 일에 연루됩니다. 어릴 적부터 고아원에서 자랐던 남자 주인공에게는 아버지가 남겨주는 지혜라는 유산에 대한 갈망이 있었는데, 헤밍웨이가 그에게 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중 인상 깊었던 하나의 가르침이 바로 이 문구입니다.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여러 가지 상황에 적용될 수 있겠지만, 출장을 포함하지 않고 순수하게 해외여행을 나 홀로 가는 것이 처음이었던 저에게는 지금의 이 여행에 빗대어 받아들여졌어요. 많은 젊은이들이 대학 시절 배낭을 짊어지고 유럽 배낭여행을 한다고 하지만, 왠지 남들이 다 하는 것은 하기 싫어했던 저는 유럽 배낭여행에 대한 로망보다는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학생이었어요. 생각조차 하기 않았기에 그게 두려운 일인지 아닌지 조차 모른 채 대학 시절이 지나갔죠. 그리고 졸업한 지 6년이 지난 지금, 배낭여행까지는 아니지만 나름의 나 홀로 여행에 용기를 내게 되었죠. 플라이어스 여러분 덕분에요. 지금이야 예전보다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혼자서 해외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분명히 리스크가 존재하는 일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것은 그것이 주는 '위험성'이 매우 큰만큼, 그것이 내게 가져다주는 '가치'도 그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크다는 것을 알기에 기꺼이 그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는 일시적으로 많은 비용이 지출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귀중한 시간을 쪼개어 투자해야 하며, 익숙하지 못한 언어와 문화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가장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요. 그래서 여행을 할 때는 돈과 시간 말고도 한 가지 더 필요한 것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flightcancellation.jpg 조종사 파업으로 출국편 비행일정이 취소되었다.


특히 여행을 하다 보면 가장 확실하게 깨닫는 일이 하나 있어요. 인생이 그러하듯이 짧은 인생이나 마찬가지인 여행 또한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죠.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거나,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일어나요. 약속이나 한 것처럼 말이에요. 하지만 그럴 때 실망하고, 스트레스받고, 주저앉기보다는 이제 더 설레었으면 해요. 왜냐하면, 이런 크고 작은 변수 - 즉 나에게 위험이 되는 일들이 발생할수록 이 여행의 끝에서 내가 얻게 될 진정한 가치는 더욱 커지리라는 것을 헤밍웨이의 말을 통해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거든요. 전 벌써 시작부터 비행 편 변경, 호텔 예약 문제 등이 있었으니 - 앞으로는 더 멋진 일들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요?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더 멋진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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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사람들은 장거리 비행을 하는 시간을 갑갑해하고, 지겨워 하지만 사실 그 시간이야말로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시간인 것 같아요. 내가 육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제한된 공간에서 사람은 정신적 활동이 더 활발해질 수 있어요. 이 시간에 배우는 것, 느끼는 것들이 뇌리에 오래 남는 경우가 꽤 있어서 저는 이 시간을 정말 사랑해요. (그렇다고 몸이 피곤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요) 그리고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공감이 가는 내용을 발견해서 더 기뻤어요. 몇 가지 여행의 기술에서 스크랩해둔 내용을 공유하면서 편지를 마무리할게요.


당신의 여행 준비물에도 '영화 한 편'과 '책 한 권'을 꼭 추가하기를 바라요.


-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중에서 -


p.55 그러면 우리는 몇 시간 뒤에 우리에게 아무런 기억이 없는 장소, 아무도 우리의 이름을 모르는 장소에 착륙할 것이다.
p.59 승객 가운데 누구도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면 우리가 구름 위를 날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필요한 만큼 힘을 주어가며 말하지 않는다. 다 빈치나 푸생, 클로드나 컨스터블이라면 가만히 있지 못했을 텐데.
p.63 그러나 그 위에 앉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깨달음은 여전히 당혹스럽다. 보들레르는 구름을 사랑할 줄 알았다.
p.78 여행은 생각의 산파이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어 술술 진행되어 나간다. 해야 할 일이 생각뿐일 때에 정신은 그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 같다. 마치 남의 요구에 의해서 농담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말투를 흉내내야 할 때처럼 굳어버린다. 그러나 정신의 일부가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는 생각도 쉬워진다. 예를 들어 음악을 듣고 있을 때나, 눈으로 줄지어 늘어선 나무들을 쫓을 때, 우리의 정신에는 신경증적이고, 검열관 같고, 실용적인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은 의식에 뭔가 어려운 것이 떠오를 때면 모른 척하고, 또 기억이나 갈망이나 내성적이고 독창적인 관념들은 두려워하고 행정적이고 비인격적인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음악이나 풍경은 이런 부분이 잠시 한눈을 팔도록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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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 후기는 '버킷리스트를 현실로 만드는 곳, 플라이어스'에서 진행하는 버킷리스트 달성 프로젝트의 하나로 여행 비용의 일부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지원금인 100만원을 넘어가는 여행 비용은 개인 비용으로 충당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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