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를 버리고 떠난 해외여행

feat. 내 삶보다 SNS가 우선이 되어버린 작금의 현실에 대한 자괴감

by 노이의 유럽일기

이 글은 2016년 11월 27일부터 2016년 12월 13일까지의 오스트리아, 독일 여행 후기 시리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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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Flyers,


드디어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는 날이에요. 아침부터 훌륭한 식사와 함께 시작했고, 렌터카를 빌려서 출발할 때의 그 벅차오르는 두근거림, 그리고 창 밖으로 지나치는 아름다운 풍경들을 눈에 담고, 너무 아름다울 때는 사진으로도 찍었죠. 그 이후 내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기쁨은 지난번 동생과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처럼 카톡 프사를 바꾸고, 페북과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고 여행에 함께하지 못한 나의 친구들과 소통하는 일이었어요.



하지만 이번 여행은 달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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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날 저는 공항 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정리했어요. 마치 헤어진 남자 친구의 사진을 지우듯이.

어느새 내 '삶'의 일부가 되어 있는 SNS들을 하나씩 지웠습니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익한 듯 아닌 듯 내 하루의 24시간을 늘 함께하는 이 가상의 소셜 라이프들을 큰 맘먹고 지웠습니다. 계정은 아직 살아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다시 깔고, 페이스북은 웹브라우저로도 접속할 수 있겠지만, 핸드폰에서 애플리케이션을 지워서 '내 눈 앞에서 보이지 않게 하고', '알람을 받지 않고', '빨간 동그라미의 숫자 1'을 보지 않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도움이 되었어요.


오늘은 그렇게 SNS를 버리고 '나 홀로' 떠난 해외여행의 둘째 날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해요.

물론 SNS를 강제적으로 끊은 후유증은 여행 첫날 아침부터 찾아옵니다.



어머 이건 찍어야 해


한국에서 유럽으로 넘어가면 보통 새벽에 깨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5시에 기상하는 습관 프로젝트도 이어서 진행할 수 있었어요. 몇몇 분들과 5시에 기상하는 프로젝트는 진행하던 중에 여행을 오게 되었거든요. 5시에 일어나서 모닝 페이지를 쓰고, 조식을 간단히 먹은 뒤 주변을 가볍게 산책해 보기로 했습니다. (여담이지만 어딘가 여행을 가서 조식을 이렇게 빨리 먹으러 간 것도 처음이었어요. 5시 기상의 장점!)

조식을 먹으러 내려가기 전, 문득 스마트폰을 방에 두고 가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도 혼자서 밥만 먹으면 많이 심심해하는 타입이라 뭐라도 하려고 스마트폰과 카메라는 방에 두고, 책 한 권을 들고 내려갔죠.


조식에 대한 기대는 없었어요. 메뉴는 사실상 늘 비슷한 치즈, 빵, 야채, 과일, 요거트 등등 일 것이고 거기서 조금씩 맛 차이만 나는 건데 저는 굉장히 한국적인 입맛을 가지고 있어서 서양식 조식은 별로 입에 맞지 않아했거든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제가 생각한 메뉴이긴 한데 그중에서도 좀 제 스타일인 메뉴들이 많았어요. 각각의 퀄리티도 상당히 좋았고요. (나중에 트립어드바이저를 보니 다른 분들도 조식에 대해 좋은 평가를!) 차도 제가 정말 좋아라 하는 브랜드라 조금 흥분된 상태로 자리에 앉았죠. 아직 음식을 떠 오기도 전에 저는 벌써부터 핸드폰과 카메라를 가지러 다시 방으로 올라갈까 말까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벌써부터 금단 현상이 오는 건가 하던 저에게 문득 이런 생각이 뇌리에 스쳤습니다.


내가 SNS를 끊은 것은 '가상'이 아닌 '실재'에 집중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그러니 카메라를 가지러 왔다 갔다 할 시간, 사진을 찍는 시간에
하나라도 더 맛있게 음미하고 즐기자.


그렇게 저는 방에 올라가려는 것을 그만두고 아침 식사를 진심으로 즐겼습니다. 원래 계획은 30분 내에 간단한 아침 식사를 끝내고 30분 동안 주위를 산책하려고 했지만, 아침 식사가 너무 마음에 들었던 저는 산책도 취소하고 1시간 동안 여유로운 아침 식사를 즐겼어요. 그리고 무료해질 때면 주위 사람들을 관찰하거나 책을 한 페이지 읽거나 하며 심심함을 달랬죠. 그건 생각보다 꽤 괜찮은 기분이었어요.


'사진 한 장 남지 않은 보기 드물게 만족스러운 아침 식사의 경험'을 얻고, 저는 렌터카를 찾으러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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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을 나선 이후에는 인터넷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필요한 주소와 정보들을 대략적으로 검색한 뒤 렌터카 장소를 찾아 떠났습니다. 공항 안 어딘가에 안내 표지판이 있겠거니 하고 길을 나섰는데, 의외로 비엔나 공항은 공항 내부가 아니라 주차장 건물 안에 렌터카 회사들이 모여있더군요.


아, 참고로 저는 평소에는 운전을 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도 대중교통이나 따릉이를 주로 이용하고 그래서 면허를 딴 이후에 운전을 한 날보다 안 한 날들이 더 많아요. 한국에서 면허를 딸 때부터 1종 보통을 따서 유럽의 스틱 자동차들을 빌려서 탈 수가 있어서, 특이하게도 국내보다 해외에서 운전한 경험이 더 있는 편인데 그 기간들은 당연히 매우 짧아서 차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편은 아닙니다. 그래서 해외에서 차를 빌릴 때마다 출발할 때, 혹은 출발한 날 크고 작은 이슈들이 있어요. 그리고 보통 그건 내가 하면 안 되고, 다른 사람이 하면 되는... 마법 같은 일들이 일어나요. 그리고 그때 저는 엄청난 긴장감과 스트레스와 민망함과 자괴감 등등등을 느끼면서 몸이 더워집니다.


이번에도 예외는 없었네요. 목적지 주소를 입력하는데 뭔가 잘 되지 않아서, 처음으로 위도와 경도를 입력해서 경로를 탐색해보았고요. (ㅋㅋ) 한 시간 여를 달려서 도착한 간이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다시 출발하려는데, 갑자기 시동이 안 걸리질 않나... 후진 기어가 안 들어가질 않나. 멘붕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런 건 사실 네이버를 검색해도 나오지는 않지만 자꾸만 습관처럼 네이버나 구글 검색을 하고 싶어 지고, 주위의 사람들은 딱 봐도 영어를 못할 것 같은 나이 많은 아저씨, 할아버지들 뿐. 그래도 그중 하나를 붙잡고 물어봐야 한다고 온 몸이 외치고 있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시동은 어찌어찌 걸렸는데, 후진 기어가 아무리 애를 써도 들어가지 않아서, 제 차는 계속 주차 선을 벗어나서 앞으로 앞으로 조금씩 이동한 채 멍청하게 서있었어요. 왠지 주위 사람들이 저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 같았어요. 뭐, 그럴만했죠.

결국 렌터카 업체에 전화를 걸었어요. (국제전화비.. 또르르...) 그리고 렌터카 직원 분이 간이 휴게소에서 일하는 분에게 독일어로 설명을 해주고, 그 직원 분이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역시나 마법처럼 제가 할 땐 꿈쩍도 안 하던 차가 스르르 뒤로 후진을 합니다.

저에게 해보라고 합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하는 걸 보니 기어를 바로 넣는 게 아니라 한 번 PUSH PUSH 눌러주고 나서 기어를 넣어야 하는 거였어요... 아무튼 무사히 다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구름이 너무나 예쁜 날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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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3시간 반 정도를 달렸더니 드디어 목적지인 볼프강이라는 동네에 도착했습니다.





IMG_0518.jpg 섹시한 뒷태의 염소가 반겨주는 볼프강



숙소로 바로 가기 전에, 중심가를 둘러보고 가려고 일단 눈에 보이는 곳에 차를 세웠는데 참아왔던 생리 현상이 갑자기 괴로움을 호소합니다. 일단 주차장 바로 뒤에 있는 가까운 레스토랑에 들어갔어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급한 대로 화장실을 썼죠. 화장실만 쓰고 몰래(?) 나가려고 하는 찰나 입구에서 현지인으로 보이는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 순간 레스토랑 직원이 다른 손님들의 음식을 서빙하느라 제 앞을 지나갔는데 그녀의 손에 들린 음식의 비주얼은 단번에 저를 매료시켰습니다.

그때 제 본능은 이렇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여기는 맛집이다! 여기서 밥을 먹어야 한다!


그렇게 앉아서 메뉴판을 받고 'Wienner Schnitzel(비너 슈니첼)'과 스파클링 워터를 시켰습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동양인은 저밖에 없고, 온통 나이가 좀 있으신 서양인들로 레스토랑이 꽉 차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아닌 척하면서 힐끔힐끔 저를 훔쳐보기도 하더니 결국 자신들의 일행과 나누는 수다로 돌아가더군요. 제가 앉은자리는 따스한 햇살이 정말 충만한 게 비치는 자리였어요. 그곳에 앉아서 스마트폰만 만지는 건 장소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저는 몇 가지 사진을 찍고 가져온 노트에 이런저런 하루의 느낌들을 적어 내려갔습니다. 누군가 저를 찍어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평화로운 순간이었어요. 상상해 보세요. 오래된 목조 형식으로 지어진 호텔의 1층에 자리한 레스토랑에, 모두가 가족과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며 맛있는 식사를 함께 하고, 그 한가운데 오후의 강렬한 햇살을 받으며 노트에 글을 끄적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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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나오는 음식은 저를 더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감자튀김부터 슈니첼까지 모든 게 갓 요리한 신선함과 따뜻함이 듬뿍 묻어 나오는 음식들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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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트립어드바이저를 통해 찾아보니 그곳은 그 지역에서 2번째로 유명한 맛집이었어요. 아마 제가 인터넷을 쓸 수 있어서 검색을 해서 찾아갔다면, 그래도 이 음식은 맛이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 과정이 저에겐 너무나 다르게 다가왔죠. 맛있다는 것을 알고 맛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들어간 식당에서 기대만큼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오는 방식의 여행은 저에겐 '답습'처럼 느껴져요. 다른 사람들이 갔던 곳을 꽁무니를 뒤쫓아 가는 기분이죠. 거기엔 위험이 없어요. 실패할 확률이 없죠. (왜냐면 우리는 음식조차도 같은 걸 시키거든요!) 하지만 저는 '모험'같은 여행을 사랑해요. 결과적으로는 저는 똑같이 유명한 맛집을 갔어요. 하지만 저는 인터넷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후기를 통해서 찾은 게 아니라 정말 저의 오감의 본능을 사용해서 그 맛집을 찾아내었어요. 첫 번째로는 '정말 본능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욕구가 어쩔 수 없이 저를 그곳으로 데려갔고', '길거리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점심시간이 되자 이 곳으로 몰려드는 사람들', '직원이 서빙하던 음식', '훈기가 가득한 식당 내부', '오래되었지만 잘 관리된 듯한 가구들', '단정한 테이블 세팅' 등 그 모든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다음에 결론을 내린 것이죠. 오늘의 점심은 이 곳!이라고 말이에요.




여행의 기술에서도 알랭 드 보통이 이야기해요. 옛날에 여행을 한 사람들은 새로운 세계에 대해 아는 정보나 지식이 없이 탐험을 떠나서 '새로운 앎'에 대한 성취감을 맛보고 오지만, 현대에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모든 정보를 다 가지고 가거나 아니면 도착해서도 궁금해하기도 전에 모든 정보에 노출된다고요. 그래서 여행은 예전에 비하면 더욱 따분해지고 지루해지는 거죠. 사실상 그래요. 우리는 랜드마크를 세우기 위해서 여행을 가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흥분되고 설레고 때로는 우울하고 좌절하는 인생의 축소판을 경험할 때 더 큰 의미로 남는 것이겠죠. 제가 볼프강의 1위 맛집에 가지 않았다고 해서, 제 여행이 의미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선 SNS, 후 일상





며칠 전 '말하는 대로'라는 프로그램에서 '정중원'이라는 화가가 나와서 '하이퍼 리얼리즘'에 대해서 설명하신 영상을 보면서, 저는 저의 이 여행담이 겹쳐져 생각이 났어요. 이 분이 설명한 바에 의하면 '하이퍼 리얼리즘'이란 '실재'같은 '허구'를 통해서 '실재'가 정말 '실재'인지에 관한 물음을 던지게 하는 개념이라고 해요. 살다 보면 우리는 무엇이 실재이고 무엇이 허구인지 모른 채 살아가게 된다는 거죠. SNS가 처음 나왔을 때, 우리는 내가 갔던 곳에서의 좋은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서 그리고 추억으로 남기고 싶어서 사진으로 남기고 이것을 SNS에 올렸어요. 내 일상(실재)이 먼저 있고, SNS(허구)가 나를 따라왔는데 이제는 SNS에 이쁜 사진을 올리고 싶어서 예쁘다는 곳을 찾아가죠. '선 일상, 후 SNS'가 어느새 '선 SNS, 후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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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필요한 정보를 미리 알아보는 것은 중요해요. 비행기표를 싸게 구하고, 공항에서 미리 알아야 할 정보를 숙지하고, 비자에 관한 정보를 파악하고, 그런 것들은 필요하죠. 하지만 어디로 무엇을 먹으러 가고 무엇을 보러 가고, 어디서 묵고 이런 일정들을 미리 일괄적으로 계획한 다음 계획대로 되지도 않을 그 계획을 따라 우리는 여행을 하고 와요. 저도 그런 여행을 했었어요. 그런데 그건 마치 교과서에 1번, 2번, 3번 숫자를 달고 시험에 나올 테니 외우라는 선생님 말씀에 따라 달달 외워서 답안지에 답을 체킹 해가는 시험을 푸는 기분이었어요.

내가 경험한 나만의 여행이 SNS에 올라갔을 때 그 의미가 있는 것인데, 다른 사람들이 여행한 SNS의 기록을 따라서 우리는 '내 삶(실재)'을 'SNS(허구)'에 맞춰 끼워 넣는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저는 억지로 힘든 여행을 하라고 하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조금만 더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면 귀중한 시간을 쪼개서 가는 우리의 여행이 나에게 더 뜻깊은 경험으로 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래서 저는 제 여행 후기를 쓸 때 가능한 어디를 갔고, 이름이 무엇이었고, 위치는 어디라는 정보 전달보다는 여행을 하면서 느낀 저의 조금은 특이했던 경험, 그리고 제 생각들을 위주로 쓰려고 해요. 여행지에 대해 궁금한 부분이 생기시면 댓글로 물어보시면 따로 답변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행지에서 그때 그때 사진을 포스팅해서 사람들의 좋아요를 받는 것도 기분 좋지만, 그때는 뭔가 허무했어요. 그런데 이번처럼 여행을 다녀와서 한 번 정리하는 마음으로 되돌아보니 좋아요는 조금 덜 받더라도, 더 의미 있는 작업이 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한 번쯤, SNS를 지우고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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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 후기는 '버킷리스트를 현실로 만드는 곳, 플라이어스'에서 진행하는 버킷리스트 달성 프로젝트의 하나로 여행 비용의 일부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지원금인 100만원을 넘어가는 여행 비용은 개인 비용으로 충당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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