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인생처럼 비전이 필요하다

그것도 아주 명확하고 구체적인 비전이

by 노이의 유럽일기

전편 읽기: https://brunch.co.kr/@noey/74




독일에 6개월을 살면서도 프랑크푸르트는 처음 가봤다. 앞으로도 프랑크푸르트에 갈 계획도 없었거니와, 썸남과 가게 될 거라고도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중간 즈음인 그 어드매가 프랑크푸르트였다. 나는 카셰어링 서비스인 블라 블라카를 타고 5시간을 넘게 달렸고, 그는 스위스에서부터 기차와 버스를 5번이나 갈아타면서 와야 했다. 차가 막힐 것을 대비해서 훨씬 일찍 출발해서 훨씬 일찍 도착한 나는 이미 수면 부족에 컨디션이 저조해져서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게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 날이 덜컥 찾아왔다. 그래서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해서 내가 처음 산 건 물과 독일 생리대였다. 그가 오지 못한다고 해도 혼자서 어디든 여행을 떠나고 싶던 차에 만남을 청한 거라, 주말에 쉬려던 그에게 너무 갑작스러운 일정을 제안한 것이 아닌지 계속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이제 내 몸한테 까지 미안해졌다. 왠지 엄청나게 피곤한 주말이 될 것 같은 예감.



그렇게 아침 일찍부터 서로를 향해 달려서 우리는 오후 1시 50분이 되어서야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8번 플랫폼에서 다시 만났다. 장난기가 발동해서 뒤로 몰래 다가가 놀라게 하려던 내 어설픈 계획이 실패함과 동시에 그리웠던 마음과 반가움이 서로의 마음에 밀물과 썰물처럼 오갔다. 날짜로 치면 1주일이 채 되지 않은 시간 정도가 지났을 뿐인데 마치 한 달이나 못 만난 것처럼 살짝 애틋함도 있었다. 사람은, 특히 사랑은 비교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좀 더 행복하고, 좀 더 성숙한 사랑을 하고자 하는 핑계로 끊임없이 내가 만난 사람들과 그 사람들과 겪었던 내 감정과 지금 이 사람을 비교한다. 그래서 가끔씩 나에게 연애라는 건 과거에 사랑한 그 사람보다 더 설레게 하고, 더 그립고, 더 애틋한 사람을 찾아가는 여정 같기도 하다. (그것이 옳은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렇게 따지면, 이 사람은 나에게 터질듯한 설렘과 가슴 여미는 그리움과 애틋함을 주는 사람은 아직 아니다. 그래, 아직 얼마 안 되었으니까. 그런데 조금 이르게 만났다. 누군가를 만난다면, 11월이 되어서 만나고 싶었는데. 아직 이전에 좋아하던 사람에 대한 감정이 몽글몽글 남아있는 상태라, 이 사람과의 관계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려웠다. 어릴 때는, 아직 누군가를 잊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걸 참 못했다. 미련이 참 많아서였다. 하지만, 내가 원한다고 계속 지속되는 사랑은 없다는 걸, 혹은 서로가 원해도 함께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걸 참 많은 이별을 하고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진실되게 행동하고 예의를 갖춘다면, 마음이 아직 아물지 않았어도 새로운 사람이 내미는 손을 잡아도 된다는 것도 늦게 깨달았다.




그를 처음 만났던 도시인 리스본도 개인적으로는 그냥 그랬는데, 두 번째 만나는 도시인 프랑크푸르트도 '와, 여행 왔어!'라는 느낌은 아니었다. 얼마 없는 시간상 우리가 중앙역 근처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만 돌아다녀서이기도 하겠지만, 중앙역 근처는 터키 식당으로 가득해서 마치 터키 타운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길거리에서 독일인을 찾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나는 평소에 터키 음식을 즐겨먹지 않는지라 더욱 흥미를 잃었다. 하지만 아시아 음식을 사랑하는 그의 손에 이끌려 나눠먹은 도너 케밥은 정말 맛있었다. 조금만 뺏어먹어야지 생각했는데, 사이좋게 한 입 한 입 번갈아가며 먹어치웠다. (생각하니까 또 도너 케밥이 먹고 싶다...) 하지만, 막간을 이용해 프랑크푸르트에 대해 한 마디만 하자면, 프랑크푸르트만 가보고 '독일이 이렇구나' 생각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랐다. 진심으로.




'그 날'의 여파로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았던 나 때문에, 우리는 걷다가 작은 먹거리 하나를 사서 나눠먹고, 또 하나를 사서 나눠먹기를 반복했다. 그도 나도, 프랑크푸르트의 지리에 익숙하지는 않아서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둘러볼만한 곳을 찾아갔다. 첫 번째 만난 사람들이 가르쳐 준 곳으로 가니 작은 광장에 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바로 옆의 작은 교회에서는 종소리가 끊임없이 울리고, 마켓에는 독일 전통 길거리 음식을 여기저기서 팔고 있었고, 중앙의 한 작은 무대에서는 동남아시아에서 온 듯한 사람들이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미 랩과 케밥을 먹어서 무거운 음식은 당기지 않던 차에, 내 눈에 띈 디저트. 쪼르르 달려가서 딸기 타르트 케이크를 사달라고 졸랐다. 손바닥 만한 딸기 타르트 케이크는 4유로. 또 지나가다 먹은 고구마 후렌치 프라이에 그는 완전히 반해버렸다. 스위스에는 고구마로 만든 후렌치 프라이가 없다고 한다. 태어나서 고구마로 후렌치 프라이를 한 건 처음 먹는다며, 게눈 감추듯이 먹는데 좀 귀여웠다. 문화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건 이런 소소한 재미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나도 굉장히 솔직한 편이라 서로가 서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었는지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그중 가장 재밌었던 이야기는 리스본에서 우리가 만나 처음으로 같이 저녁을 먹었을 때의 이야기였다. 나는 그 날 저녁을 먹으면서 계속 알쏭달쏭했다. 이 사람이 나에게 이성적으로 관심이 있는 건지 아니면 친구로서의 친근함인 건지 잘 파악이 되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원체 모든 사람들에게 친근한 성격이기도 했고, 여자를 많이 만나본 것 같으면서도 뭔가 노련하게 파고들어오는 건 없었다. 그런데 그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고 했다. 밥을 다 먹고 계산할 때가 되어 일단은 그가 계산을 하기에 내가 칼같이 20유로를 손에 쥐어줬는데, 그는 그게 내가 자신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표시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더치페이한다고 들었다며...



하하하. 나는 그 부분에서 빵 하고 터졌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도 한국에서 예전에 소개팅을 할 때 상대가 마음에 안 들면 의도적으로 내 밥값을 칼같이 계산하긴 했었다. 그래서 그는 속으로 '이 여자가 내가 유럽 사람이라 독일식으로 더치페이를 하는 건가? 그래도 독일에 6개월밖에 안 살았는데? 한국식인 건가?'라고 생각하며 한참을 헤맸다고 했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라 서로 멀리 사는데 언제 다시 밥을 사줄 수 있을지 모르니 낸 거라고 하자, 이해를 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건 어디서 배웠냐고 하니 한국인 친구에게서 들었다고 했다. 한국의 입지가 해외에서 많이 올라갔다고는 해도, 사실 대부분 독일인을 만나 한국에 대해 나누는 이야기가 한국 음식 아니면 북한과의 위기인지라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하였다.






그와 나눴던 많은 이야기들이 인상적이었기에, 하나하나 다 기록하고 싶지만 그중에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바로 우리가 공유했던 '리스트'였다. 프랑크푸르트로 서로를 만나러 가기까지의 5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 질문을 하나씩 주고받는 게임을 했는데, 그중 그의 질문 하나가 '만나고 싶은 남자의 이상적인 모습 10가지'였다. '10가지나? 10가지 까지는 안될 텐데...' 하며 에버노트에 적어둔 오래된 이상형에 관한 리스트를 뒤졌더니, 이미 12개였다.(;) 한국어의 의미를 최대한 살려 영어로 번역을 하다 보니 문득 프랑크푸르트로 떠나기 전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강조했던 내용이 떠올랐다.



사랑도 인생처럼 비전이 필요하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이고 명료한 비전이.



그것이 조금씩 바뀌기도 하고, 늘기도 줄기도 하지만, 나는 2013년 11월부터 이 비전을 구체적으로 기록해두었다. 그것이 흐릿하게 머릿속에서만 있을 때보다 훨씬 명료해지는 순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2017년 9월에 다시 꺼내보면서도 대부분의 내용은 지금의 내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나하나 조심스레 번역해서 그에게 보내주며, 같은 질문을 그에게도 던졌다. 그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본인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이상형 리스트를 캡처해서 이미지로 보내주었다. 구구절절 하나하나 설명이 긴 내 비전과는 다르게 공대 출신답게 간단하고 명료한 하지만 분명한 리스트였다. 심지어 항목이 20개!



나는 조금 많이 신선한 문화 충격을 받았다.

리스트의 형태로 원하는 이성의 모습을 정리해놓은 사람을, 그리고 그걸 나에게 보내주는 사람을 실제로 만난 게 처음이었다. 나도 내 리스트를 누군가가 요청한 적도 없었거니와, 그래서 건네준 적도 처음이었다. 대화로 나누는 것보다 훨씬 명확하게 다가왔고, 다시 곱씹으면서 읽으며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다. 무엇보다 더더욱 신뢰가 갔다. 처음 만난 사이에는 보통 서로의 환심을 사려고, 혹은 괜히 실망시켜서 관계를 어긋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내가 원하는 모습과 상대의 모습이 일치하는 부분만 이야기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걸 고려할 시간 따위 없이 서로가 가지고 있던 리스트를 허심탄회하게 공유했다.



이 20개의 항목을 읽으면서, 절반 이상은 나와 공통점이 있어 보였지만, 나머지는 스스로도 애매모호하거나 일치하지 않았다. '결국은 충족되지 않는 부분들 때문에 날 떠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생각은 곧 사라졌다. 비전은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하지만, 그것이 항상 현실에서 100% 일어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리스트는 내 이상형에 꼭 맞는 사람을 찾기 위한 체크리스트가 아니다. 사람은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나는 이미 그의 단점을 보고 있고, 그도 아마 그럴 것이다. 게다가 지구 상에서 만나는 인연의 확률을 생각해 본다면, 이상형의 절반 이상이나 일치하는 사람을 만나다니,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소중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국 이 사람이 계속 내 옆에서 머무르고 싶게 만들려면, 내가 그 사람의 100% 이상형이 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나'라는 사람과 함께라서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감동과 에너지를 주는 것, 그게 앞으로 내가 집중해야 할 일이라고도 느꼈다.







그도 나도, 연인들이 서로가 처음에는 좋은 모습만 보여주다가 곧 서로의 숨겨둔 모습들을 보일 때쯤 실망하거나 싸우는 걸 무척 싫어한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특히, 남자가 연애 초반에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별도 달도 다 따줄 것처럼 하다가 변하는 경우. 누구든 그런 모습은 싫어하겠지만, 대신 그도 나도 그것을 위한 철칙이 있었다. 나는 남자가 처음에 '엄청나게' 잘해주는 모습을 보면 그 순간은 즐기되 '언젠가는 이 모습이 바뀔 거라는 걸' 예상하고 너무 익숙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 모습이 계속 계속 가면 좋겠지만, 나는 여자가 남자에게 너무 희생적인 것도, 남자가 여자에게 너무 희생적인 것도 싫다. 그는 그런 모습이 싫어서 자신은 처음부터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쓴다고 했다. 그래서 아마 지금 내 눈에 벌써부터 그의 단점이 여럿 보이는 것도 같다. 그러면서 나는 생각하게 된다. 내가 이 단점을 이해하고 존중해줄 수 있는지 없는지를.








순탄치만은 않았던, 나름 파란만장한 20대를 보내고 난 이후 나는 어떤 인연으로 만나서, 사귀게 되든, 사귀지 않고 끝나든, 얼마큼 아파하든 모든 관계에서 '내가 인격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배울만한 점이 있는가?'를 가장 중요시하게 되었다. 설령 그게 짝사랑이라도 말이다. 그렇게 배워나가면, 이별이 아프긴 해도 적어도 허무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리고 나는 더 나은 내가 되어서, 더 좋은 사람을 만나, 더 아름다운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왠지 이 사람과의 만남에서도 배울 것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은 하루라도 더 빨리,

지금보다 더 많이,

심장이 쿵쾅대는 사랑을 하고 싶다고 바라다가도,

물리적인 거리와 마음속의 아직 덜 무너진 벽들에 가로막히곤 한다.

그런데 이게 마치,

이 사람과 내가 걸어가고 있는 이 속도가 마치,

샛노랑 낙엽진 바닥을 바라보며 천천히 음미하며 걸어가는,

가을날 산책길 같아서,

그것이 또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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