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12월 13일을 마지막으로 BTS 멤버를 모두 군대에 보낸 한국 트렌드 세터들은 다음의 열광 장소를 어디로 정했을까. 아마 다른 아이돌그룹이거나 새로운 유행일 거라 예상하기 쉽겠지만 놀랍게도 그 돌풍의 주인공은 '직업을 잃은 아저씨들'이었다.
여기 병약한 아저씨가 있었다. 2018년 KIA 타이거즈를 은퇴한 후 코치 생활을 하다 2022년부터 최강 몬스터즈에서 뛰게 된 선수였다. 이번 달은 코로나, 다음 달은 목감기고, 무릎이고 어깨고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잔기침을 달고 살며, 계속 콜록거리다가 결정타치고 베이스에 쓰러져서 기침을 하는 허약미를 뽐냈다. 링거를 맞고 수비를 멋지게 해낸 후 점수차이가 많이 나자 편찮음으로 자진 교체되는, 캐릭터인지 진짜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최강 몬스터즈 시즌 2에서 다 쓰러져가는 저분은 타석에 그만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지만, 2023년 겨울을 지난 그는 달라졌다. 김성근 감독의 지옥 훈련을 견뎌내며 2024년 KT와의 개막전에서 훈련량을 인정받아 거포 이대호를 밀어내고 4번 타자로 마운드에 섰다. 그리고..
만루홈런을 때려냈다. 그동안의 부진과 훈련과정을 매 회 영상으로 지켜본 관중들은 온 힘을 다해 환호했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1980년생으로 44살의 나이었다. 2013년, 2014년 LG 트윈스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데 큰 공헌을 했고, 2015년 타율 리그 전체 1위, KBO통산 안타 기록 역대 5위를 기록한 천재타자 정성훈이다.
최강야구의 매력은 한때는 최고의 야구선수로써 다시는 야구할 수 없다는 사망선고를 받은 이후에 다시 살아난 삶을 사는 울컥함이다.
무릎이 쑤시고 어깨 연골이 닳은 나이에 한 타석, 한 타석을 소중히 여기는 감사함이고
여기서 무너지면 다시 직업이 없어진다는, 혹은 다시 사랑하는 마운드를 밟을 수 없다는 절실함이다.
이런 감동은 화면을 뚫고 시청자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최강야구는 은퇴한 선수와 독립 리그 등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모여 한 팀을 이루고 야구 경기를 하는 리얼 예능 프로그램이다. 이대호, 니퍼트 등 야구는 몰라도 이름을 안다는 전설의 선수들의 경기를 다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관심을 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시청자들은 더그아웃, 마운드, 1루, 선수 대기실, 중계 부스 등 모든 곳에서 출연자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을 수 있다. “콜드 게임은 영어로 뭐지? 미국에도 콜드게임하나? “ 라던지 “빨리 좀 끝내라. 배고파 죽겠다.”라던지 평소에 저기서는 무슨 말을 할까 싶었던 선수들의 대화는 최강야구에서 핵심 재미이다. 웃기려고 억지로 꾸며낸 개그가 아닌 생활 속에서 ‘놔둬도 알아서 웃기는 선수들'이다. 또 친절한 자막으로 야구 규칙이나 모든 상황을 재미있게 중계해 주기 때문에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도 같이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최강야구는 예능이지만 진짜 야구를 한다. 프로야구 경기와 똑같은 룰을 적용해 9회 말까지 다큐에 가까운 진짜 경기하는 모습만 보여준다. 하지만 그 안에 모든 기승전결이 있고, 짜릿한 승부가 있고, 울고 웃기는 드라마가 있다.
이런 요소에 힘입어 최강야구는 TV-OTT 통합 2024년 현재까지 비드라마 화제성 7번째 1위를 차지하며 흥행몰이를 이어가고 있다. 직관경기 13경기 연속 전석이 매진일 뿐 아니라 티켓 예매를 위한 동시접속자 수 15만 명이라는 역대급 기록을 세우며 폭발적인 티켓파워를 과시했다.
김난도 교수의 저서 ‘트렌드 코리아 2022’에서 10대 트렌드 중 세계관을 말하는 ‘내러티브 자본(Tell me your narrative)'이라는 개념이 있다. '서사를 잘 만들어 낸 것이 자본이 된다는 의미로 강력한 서사, 즉 내러티브를 갖추는 순간 단박에 대중의 강력한 주목을 받는다.'라고 설명한다. 영화 마블의 세계관, 게임 세계관, 메타버스 세계관 등 가상의 현실 속 세계관뿐 아니라 기업에서도 브랜드 스토리나 서사들 곁들인 캐릭터를 개발하여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지향 작가의 ’ 세계관 만드는 법‘에서 언급한 세계관의 네 가지 필수요소는 캐릭터, 시공간, 톤 앤 무드, 설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강야구는 적절한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는 브랜드이다. 야구라는 한 가지 주제로 모인 은퇴한 선수, 독립야구, 대학 야구 선수들 그리고 갈등 상황이 되는 야구 경기, 승패를 알 수 없는 접전 속에 7할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폐지가 되는 설정. 선수들의 고된 훈련 현장과 신인 선수들의 눈물겨운 프로야구 선수 도전기, 손가락 뼈가 부러지는 상황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를 외치는 선수들의 근성, 그 모든 상황은 가상의 세계관이 아닌 진정성을 갖춘 현실의 야구 세계가 된다. 시청자는 관중으로 그들의 세계관에 참여할 수 있고, 예쁜 굿즈를 구입하면서 선수를 응원하고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을 표현할 수 있다.
올 초 들면서 프로야구 방송이 일부 유료화가 되면서 프로야구 방송 채널이 줄어들었다. 일부에서는 프로야구의 흥행에 악영향을 끼칠 거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야구 덕후가 아니고서야 굳이 돈을 내면서 까지 야구를 시청하겠냐는 반응이었다.
예전보다 프로야구 경기가 방송을 통해 노출되는 시간은 줄었지만, 최강야구가 jtbc 각 채널을 통해 부지런히 본방, 재방을 하고, 한화 이글스 팬인 연예인 차태현, 인교진, 이장원 등이 한화를 응원하는 예능 인 '찐 팬구역'도 전파를 타고 있는 상황이었다.
예능 프로그램뿐 아니라 삐끼삐끼 춤, 김문호 선수의 아내 성민정 님의 화끈한 댄스 등 다양한 야구의 볼거리들이 숏폼을 타고 퍼지면서 야구 영상이 아닌 영상과 예능 프로그램이 야구의 흥행을 이끄는 아이러니한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또한 예능 야구의 육성 선수들이 실제 프로야구 드래프트에서 지명되면서 리얼리티를 더해줄 뿐 아니라 예능야구팬이 프로야구팬으로 넘어가는 발판이 되어주기도 한다. 고영우(키움 히어로즈), 정현수(롯데 자이언츠), 황영묵(한화 이글스) 선수등이 그 주인공이다. 그리고 원성준 선수도 드래프트에 지명되지 않아 그의 어머니가 '집에 가자, 집에 가자'하면서 눈물을 흘렸지만 이후 키움 히어로즈에서 인터뷰 요청이 와서 뒤늦게 입단하게 되었다.
그중 황영묵 선수는 중앙대학교 시절 드래프트 지명을 받지 못하고 중퇴하여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독립야구에서 뛰었다. 그 뒤 최강야구 육성선수로 입단하여 김성근 감독에게 몇 시간씩 일대일로 훈련을 받는 모습을 지켜봤던 시청자들은 이제 황영묵 선수가 한화 이글스에서 3할대 타자로 자리 잡는 성공스토리를 함께 응원하며 지켜보고 있다. '내가 스토리를 아는 그 선수'가 성장하는 드라마 같은 감동을 최강야구를 넘어서 프로야구에서 느끼는 것이다.
올해로 3년째를 맡는 최강야구는 회가 거듭될수록 그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 최강야구는 야구라는 단일 주제를 가졌지만 확장성을 많이 가진 프로그램이다. 야구 경기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의 출근 장면부터 선수 대기실, 선발 라인업 공개, 더그 아웃, 불펜 등 야구장 곳곳으로 확장되었다. 뿐만 아니라 김문호 선수의 아내 성민정, 이대은 선수의 아내 트루디를 비롯한 야구 선수의 가족, 최강 야구단 코치, 트레이너, 상대팀 선수, 감독 등 다양한 인물의 등장으로 신선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해마다 신입 선수 영입으로 새로운 스토리가 펼쳐지며 장시원 PD가 장단장의 캐릭터로 프레임 안의 적극적인 개입하고, 다른 스태프들의 스토리까지 확장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진다.
현재까지는 모든 공간과 등장인물의 확장이 자연스러운 스토리 안에 녹아들었다면 앞으로의 관건은 같은 포맷으로 매번 반복되는 설정이 아닌 ‘새로운 확장을 얼마나 더 가져갈 수 있는가’와 ‘그 스토리를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하는가’가 롱런의 비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