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은 아니었다. 한 4번째 사랑? 청소년 수련회 담당 선생님, 새끼손가락을 올리고 분필을 잡던 국사선생님, 개그맨인데도 고급스러움을 풍기던 이휘재.... 말줄임표에 몇 명을 더 담아야 할지 기억도 안 나지만.. 정확히 고2 5월 15일, 일찍 마쳐서 선생님께 감사하게 되는 ‘스승의 날’이었다. 친구를 따라 야구장을 가게 됐고, 매진이었고, 야구장을 두 바퀴나 도는 파도타기를 했다. 그리고 상대팀은 기억도 안 나지만 역전승을 했다.
그 후 다른 애들은 아이돌을 좋아할 때 나는 야구를 좋아하게 됐다. 야구 선수를 볼 수 있는 방법도 발견해서 야구 장 가는 날은 어김없이 경기장 뒤쪽으로 돌아들어가서 야구 선수들이 타는 버스 앞에서 기웃거렸다. 아이들이 많이 따라다니는 눈 꺼벙한 선수가 있었는데, 그 뒤에 알고 보니 그 선수가 이승엽이었고 팬들이 생일 케이크로 축하를 해줘도 심드렁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역시 눈이 꺼벙해 보이는 선수가 있었는데 그 선수는 양준혁이었다. 운동선수라는 사람을 처음 가까이서 보는 나는 모든 게 신기했다.
나는 그중 강동우라는 호리호리하고 얼굴이 작은 선수를 좋아했다. 아이돌은 하늘에 떠있는 별이라면 동우 오빠는 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별이었기 때문이다. 팬에게 친절한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야구 잘하고, 잘생기고 츤데레 같은 매력이 맘에 들기도 했다.
강동우 오빠에 눈에 들 방법은 없을까. 마침 학교에서 옆자리 짝이 손재주가 좋고 배구선수를 좋아하는 친구였다. 그 친구는 나를 위해 야구 선수가 절대로 좋아할 것 같지 않은 곰돌이 푸 꿀단지에 사탕을 수십 개 일일이 포장한 선물을 강동우 선수 갖다주라고 정성스럽게 만들어줬다. 작전의 그날, 야구 직관을 마치고 꿀단지를 안고 친구와 야구 선수들이 나오는 구단 버스로 향했다. 그리고 그 꿀단지를 담은 비닐 안에 실수인 것처럼 내 지갑을 흘려 넣었다. 물론 지갑에는 전화번호도 적혀있었다. 그 잔머리로 공부를 했으면 하버드를 가지 않았을까. 일을 저지르고 너무 긴장해서 다리가 후들거리고 심장이 파도타기를 했다. ’동우 오빠가 전화가 올까‘ 헛된 기대를 하며 걸어 나오고 있는데 어떤 남자분이 뛰어나오더니 내 지갑을 건네는 게 아닌가. 하지만 그 남자분은 동우 오빠는 아니었다. 아마 구단 관계자겠지. 부끄러운 기억을 안고 야구는 점점 내 생활에서 밀려났다. 꿀단지 사건 때문은 아니었다. 그 뒤로도 몇 번 야구를 보러 갔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의 흐름대로 나는 고3이 되었고, 당연히 저녁에 3시간씩 야구를 볼 여유는 없어졌다.
대학을 들어가게 된 후에도 다시 야구를 좋아할 수 있었지만 그땐 술자리, 동아리 활동, 현실 남자 친구까지 내 인생이 더 바빴다. 진지하게 생각해 본 건데. 대학교 1학년이 막 됐을 때 강동우 선수를 찾아갈까 생각해 봤다. 비 오는 라이온즈 파크에 물방울무늬 원피스를 입고 우산을 쓰고 동우 오빠를 기다리는 설정이었다. 머릿속에서는 다시 한번 청춘 드라마가 연출되고 있었다. 강동우 선수가 나한테 반하면 어쩌지. 아냐, 지금 스타를 감당할 시간이 없어. 떡 줄 사람과는 전혀 상관없는 미친 자신감이었다.
그게 내 인생에서 마지막 야구의 추억이라 생각했다. 2024년 야구는 다시 나에게 왔고 놀랍게 세련되어 있었다. 내 시간이 더 소중하다고 매정하게 야구에서 돌아서더니 내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큼 야구가 다시 좋아진 이유는 뭘까. 지금부터 야구의 매력을 알아보고, 야구를 인생에 무기로 만드는 방법을 소개한다. 요즘 야구, 그 매력적인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