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이야기는 전래동화 '젊어지는 샘물'을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앞자리 꼰대는
잠은 집에 가서 잘 것이지
병든 닭처럼 꼬박꼬박 조는 것도 보기 싫은데
이제는 전화기 붙들고 기준에 맞니 아니니
1시간째 실랑이 중이다.
나 같으면 5분 내로 처리할 일을.
어디 귀마개 없나.
옆자리 후배는
휴가를 일주일씩이나 갔다 온 주제에
하루 종일 카톡질 중이시네
회사를 오는 건지 놀이터를 오는 건지
어디 눈가리개 없나.
위에서 눌리고
아래서 치받고
비린 햄버거 패티 같은 내 인생
늘어나는 건 흰머리와 화병
'화병 증상'을 찾아보니 나랑 딱 맞네.
'화병에 좋은 음식'을 검색해보니
파워 광고 맨 윗줄이 눈에 띈다.
좀 촌스러운 광고지만 왠지 믿고 싶어 진다.
'요즘은 물을 3리터 이상 먹으면 만병에 좋댔나.
'젊어지는 샘물'을 매일 마시고 있지만
흰머리 그대로
눈가 주름 그대로
"뭐야!"
당장 고객 센터에 전화를 건다.
"호갱님, 거기 주의사항에 보면 '1리터당 하루가 젊어진다'라고 돼있습니다."
1년 치를 무료 구독하셔서 매일 1리터씩 드시면
1년이 젊어지실 수 있습니다.
지금 특별 행사 기간으로
친구와 같이 정기 구독하시면
1명당 5%씩 할인 혜택이 들어갑니다."
'당했다'
당한 줄 알면서도
친구에게 전화를 돌리고 있다.
눈뜨고 호구되는 세상.
젊음 마케팅으로 성공한
'젊어지는 샘물' 은 다단계 판매 전략으로
제주 삼다수를 제치고 가뿐히 판매 1위를 기록했다.
과연 '젊어지는 샘물'은 효과가 있었을까?
분명히 나는 내 흰머리와 주름을 없애기 위해
마시기 시작했다.
근데 늙어가는 모습은 그대로였다.
그럼 왜 그렇게 택배 아저씨 발바닥에 불나게 팔린 걸까?
정말 이상한 일이었지만,
믿기 어렵겠지만,
거울 속 내 모습에서
구부정해지는 허리와
축 처진 살을 봐도 불안하지 않았고
꼬장꼬장 역정 내는 할아버지를 봐도
'으이그, 사람은 곱게 늙어야지.'라는 마음이 들지 않았고
나이 먹었다고 대접받고 싶은 생각도 아예 사라졌다.
갱년기의 변화도 늙어가는 서러움이 아니라
그저 사춘기를 겪을 때 호르몬 변화를 겪는 것과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늙는다는 건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공포가 아니라
그저 하나의 변화일 뿐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만 공포가 없어지는 증상을 겪는 것이 아니었다.
'젊어지는 샘물'을 먹는 전 국민,
전 세계인들이 겪는 일이었다.
나의 노화를 늦추거나 없애지 않았지만
나의 영혼을 늙지 않게 해 주는 느낌이었다.
젊은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이들도
더 이상 '꼰대, 틀딱'이란 말을 생성하지 않게 되었다.
물을 1년 이상 장기 복용하자
사람들이 점점 나이 듦을 받아들이는데 익숙해졌고
'젊었다, 늙었다'라는 말 자체가 없어져 버렸다.
예전으로 60살이 되든 70이 되든
언제든지 배우고 싶으면 정규 학교를 진학할 수 있었고
다양한 세대 문화가 모여
좀 더 다른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일도 자기가 할 수 있을 때 시작해서
이직이나 건강으로 인한 휴직 등 사유로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면
본인이 하고자 할 때까지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나이 차별'이라는 문화가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시절에 존재했는지
중세시대에 존재했는지도 가물해졌고
역사 시간에 '차별의 역사'라는
단원에서 배울 뿐이었다.
유행은 언제나 오르막 내리막이 있듯이
'젊음'이란 단어가 중요해지지 않게 되자
'젊어지는 샘물'은 식상한 브랜드가 되었다.
그리고 계룡산 아래 흐르던 샘물도 이제 바닥이 보여
젊어지는 샘물 공장은 70년간의 인기를 뒤로 하고
'세상을 바꾼 브랜드' 명예의 전당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