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비밀이 있는데
[백숙의 푹삶은 이야기]
이 동화는 디즈니 명작 동화 웃지 않는 공주를 재창작하여 만든 이야기입니다.
으악 정말 참기 힘들어.
내가 좋아하는
저글링 공연까지는 억지로 견뎠는데
2부 마술공연은 정말 위험했다구
내 앞에서 여자가 허리가 잘렸는데
깜짝 놀라서 다시 쓰러질 뻔했어
아바마마는 내가 웃지 못한다고 알고 있어.
그래서 세상에 온갖 재미있는 걸 가져오지
그때마다 너무 힘들지만 난 웃지 못하는 척해.
왜냐면 나에게는 숨기고 싶은 병이 있거든.
의사는 내 병을 '탈력 발작'이라고 하더라
이름도 어렵지 뭐니.
웃거나 놀라거나 슬프면
갑자기 쓰러지거나 잠이 들어버려
세상에.
웃을 수도 놀랄 수도 없는 병이라니!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병에 걸린 게 확실해
그래서 더 웃음이 안 나오기도 하고
하지만 내가 더 웃고 싶지 않은 이유는
나처럼 어여쁘고 품위 있는 공주가
광대들 앞에서 쓰러져봐
누가 누구를 구경하는 건지.
그리고 아바마마에게 들키는 날엔
난 아마 평생 병원 신세를 져야 할 거야.
검사란 검사, 수술이란 수술은 다 하겠지.
나.을.때.까.지.
아바마마는 내가 아프면
나는 안 보고 계속 병만 봐
웃지 않는 공주가 낫겠어
병든 공주가 낫겠어
난 시크함을 택할래.
의사는 내 병이 스트레스 성이라고 했거든
세상에.
공주가 스트레스받을 일이 뭐가 있다고.
그렇다고 내가 노력을 해보지 않았겠어?
난 그렇게 나약한 공주가 아니라고
신경에 좋다는 브로콜리를 한 트럭 먹어도 픽.
운동을 하루 종일 해도 스르륵 픽.
이렇게 불행한 나에게도 희망이 찾아왔어.
바로 구피란 녀석이지.
그 녀석은 다들 알다시피 아주 조금 어리석은 녀석이야
당근을 씻어오라면 빨래판에다가 빨아오고
달걀을 모자에 담아오라고 하면
우유도 모자에 담아서 온 몸에 뒤집어쓰지.
멍청한 놈.
졸리면 자고
안 졸리면 일어나고
시간 되면 일하고
시간 마치면 집에 가는 애였지
뭘 따지고,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성격이 아니었어
아니 그렇게 할 줄 모르는 거지
단순한 녀석.
구피는 가끔 나의 말을 보살펴줘
하루는 내가 말위에 올라타고 기품 있게 가고 있는데
말이 히히힝 거리는 바람에 깜짝 놀라 떨어질 뻔했어
다행히 떨어지진 않았지만 나는 놀라서 그 자리에서
힘이 스르륵 빠져 잠이 들어버렸지
일어나 보니 나는 그냥 말 위에서 자고 있는 거야
옆에는 구피가 지키고 있었고
난 말 위에서 이불을 덮고 있었어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구피가 아닌 다른 사람이 옆에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됐을까.
구피는 내가 웃지 않아도 걱정하지 않았어
나에게 우울증 있냐 묻지 않았고
'내 말 무시하냐'라고 하지 않았지
내가 구피에게 화를 낼 일도 없었어.
화를 낸다고 걔가 달라지는 게 없었거든
그저 우물쭈물하면서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릴 뿐이었지.
그리고 어느 날 구피가
생선을 어깨에 매달고 오라는 엄마 말에
소 한 마리를 어깨에 들쳐 매고 가는 걸 보았어.
내가 어디서든 쓰러지면
업고 갈 수 있는 튼튼함도 쏙 맘에 들었어.
무엇보다 구피는
성난 기색을 보이거나
크게 웃거나 혹은 웃기거나
근심에 잠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
언제나 잔잔한 파도 같았지
나도 기왕 못 웃게 된 거
화도 안 내고
근심도 없는 사람이 돼보고 싶어 졌어
웃으면 행복해진다고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