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거위의 배를 가르지 않았습니다.
나는 지난해 여름까지 난초 두 분을 정성스레, 정말 정성을 다해 길렀었다...중략... 아차! 이때야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난초를 뜰에 내놓은 채 온 것이다. 모처럼 보인 찬란한 햇볕이 돌연 원망스러워졌다. 나는 이때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그렇다, 나는 난초에게 너무 집념해 버린 것이다. 며칠 후 난초처럼 말이 없는 친구가 놀러 왔기에 선뜻 그의 품에 분을 안겨주었다. 비로소 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때부터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법정스님의 '무소유' 중에서
내 예술은 하나 변하지가 않았소.
여전히 항아리를 그리고 있는데 이러다간 종생 항아리 귀신이 될 것 같소.
한때는 항아리 속에서 산 적이 있다. 온통 집안 구석구석에 항아리가 안 놓여진 구석이 없었으니 우리 집을 일러 항아리 집이라 부른 사람도 있었던 것 같다. 이젠 다시 사들이지 않아야겠다고 몇 번이고 결심했던 덕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시중에 나가면 자연히 골동품 가게로 발길이 향해졌다. 들르면 으레 한두 개 점을 찍고 나오게 됐으니 흡사 내 항아리 취미는 아편중독에 지지 않았다. 그래서 다락, 광, 시렁 위까지 이 많은 항아리들을 포개어 쌓아 놓게 되었으니 이제 생각해도 내 청춘기는 항아리 열에 바쳤던 것만 같다...중략.... 그러던 항아리들, 부산 피난살이 3년 만에 내 집 뜰에 들어서니 우거진 난초 속이 온통 항아리의 파편 천지였다. 사금파리 무더기에 서서 나는 이상한 충격을 받았다. 무엇인지 통쾌한 그런 심정이었다.
김환기 에세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