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알을 낳는 거위] 3년의 키스, 그 뒷이야기

부부는 거위의 배를 가르지 않았습니다.

by 민보우

[백숙의 푹 삶은 이야기]

재밌지만 하루종일 생각나는 이야기, '황금알을 낳는 거위' 재창작 편입니다.



'쑹덩!'


"여보! 또... 또 낳았어요."

아침부터 거위의 밑구녕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부인이 소리쳤어요.

"어디, 어디?"

거실에서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안절부절못하던 남편이 헐레벌떡 뛰어들어 왔어요.


졸린 눈을 한 거위 옆으로 누렇게 반짝이는 알이 보였어요.

"정말 황금알을 낳는 거위네."

지난달 추수하는 날 황금알 하나를 낳은 다음

딱 한 달만에 또 하나를 낳았어요.

"지난번에 낳은 황금알은 이제 써도 되겠지요? 집에 먹을 것이 떨어져서.."

부인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어요.

"그래요. 빵도 사고 고기도 삽시다."

남편은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황금알 하나를 조끼 품에 고이 넣고 나갔어요.


매 달 비슷한 시기에 거위가 황금알을 하나씩 낳아준 덕분에 살림살이는 점점 풍족해졌어요.

황금알 덕분에 십 년 전 시장에서 샀던 다 해진 코트는 시내 양장점의 최신 모피 코트로 바뀌었어요.

굶는 날이 없어진 건 당연하고요.

귀족들이 먹는다는 코스요리도 매일 먹을 수 있게 되었어요.

집은 방 두 칸짜리에서 열 칸짜리가 되었어요.

집을 같이 쓰는 사람들도 늘어났어요.

집안일하는 하인, 농사일하는 하인, 가축을 돌보는 하인까지 생겼거든요.


그래도 여전히 부인의 하루는 바빴어요.

패티 코트를 잔뜩 넣은 치마와 꿩의 깃으로 장식한 모자를 쓰고 부인들의 모임도 나가야 했고요.

옷이며 신발이며 그날 하루에 사 온 물건 들을 입어보고 정리하느라 하루가 모자랄 지경이었어요.

농사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남편의 하루도 여전히 바빴어요.

아니 가장 고단한 하루를 보냈죠.

남편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집에 온 이후로 편하게 자본 날이 손꼽았어요.

'거위가 황금알을 안 낳으면 어쩌지?'

'거위를 누가 훔쳐가면 어쩌지?'

각종 고민들로 머리가 아팠어요.

대문 앞에서 거위를 지키는 경비병과 헛간 앞에서 거위를 지키는 경비병을 세워뒀지만

그 경비병이 거위를 훔쳐갈지도 모를 노릇이었어요.

남편은 이제 거위가 사는 헛간에서 잠을 잤어요.

푸엑푸엑하는 거위 소리에 잠을 깨기 일쑤였지만,

아직도 거위가 살아있고, 또 건강하다는 표시였기 때문에

음악소리보다 듣기 좋았어요.


남편은 여행을 커녕 외출도 제대로 할 수 없었어요.

언제 거위가 없어질지 불안했거든요.





어느 날 남편은 고심 끝에 부인에게 말했어요.

"우리 집에 황금알을 낳은 거위가 있어서 우리가 부자가 된 걸 온 마을에서 다 알고 있으니 도둑이 들지 않을까 걱정이요.

욕심에 눈이 어두워 내가 거위를 죽여버렸다고 거짓 소문을 냅시다."

"그럼 거위를 더 꽁꽁 숨겨야 하겠군요?"

부인과 남편은 일부러 황금알을 더 갖고 싶어서 거위 배를 갈라버렸다고 울면서 연극을 하기 시작했어요.

이 소문은 하인들의 입을 통해 온 동네에 퍼졌어요.


이제 황금 거위를 들키지 않기 위해선

아무도 몰래 거위가 지낼 수 있는 집과 산책로, 연못 등 더 큰 공간이 필요해졌어요.

그리고 모든 걸 숨겨도 거위의 숨 넘어갈듯한 큰 목소리는 숨길 수 없었기 때문에

다른 거위를 5마리 사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섞어서 키웠어요.

남편은 외딴집에 거위 6마리를 키우면서 홀로 살았어요.

여전히 거위 우리에서 먹고 자면서요.


양질의 금을 얻기 위해 거위들에게는 최고급 곡식과 채소들이 제공되었어요.

남편은 거위 우리 청소와 먹이 준비로 하루를 보냈어요.

말할 이도 없는 외로운 생활이었지만

다시 먹을 것을 걱정하는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어요.


거위는 한 달에 한 번씩 같은 크기에 황금 알만 낳았기 때문에

좀 더 부자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어요.

하인들에게 품삯을 주고, 사람과 거위의 음식을 사고 부인이 쓰는 씀씀이를 감당하고 나면 남는 게 없었어요.

하지만 그 마저도 거위가 있을 때는 유지가 되겠지만

시장에서 사 온 이 거위가 몇 살인지, 앞으로 몇 년을 더 살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어요.

황금알이 없는 생활은 생각도 하기 싫었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거위에게 더욱 정성을 기울였어요.


뒤뚱뒤뚱 걷던 거위가 뒤우뚱 뒤우뚱 한 박 자라도 늦게 걷는 날이면 어디 아픈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됐어요.

울음소리도 푸웩인지 꺽꺽인지 매일 신경이 쓰였답니다.

남편은 날로 갈수록 늙어갔고 두통도 점점 더 심해졌어요.






십 년이 지난 어느 날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앉은자리에서 눈을 감은 채 다시는 눈을 뜨지 않았어요.

황금 거위를 잃은 남편은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어요.

황금알이 이제는 없다는 걸 아는 부인이었지만 매일 마시던 특제 홍차를 마시지 않는 것과

신상품이 나올 때 양장점의 발길을 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남은 황금도 다 써버리고 말았죠.


다시 가난해진 남편과 부인은 하인들을 모두 내보내고

집도 예전처럼 작은 곳으로 옮기게 되었지요.

부인은 삶이 무의미해졌다고 매일 푸념하기 시작했어요.

남편도 늙고 아픈 몸밖에 남은 것이 없었지요.

하지만 남편의 기분은 조금 달랐어요.

하루 종일 거위만 보이던 하루가 이제는 풀도 보이고 꽃도 보이게 되었고요.

이제 외출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왠지 마음이 홀가분해졌어요.

이젠 밤에 잠도 푹 잘 수 있게 되었고요.

남편은 말끔하게 씻고 침대에 들어가 푹신한 이불 안에 들어가서 편안한 자세로 누웠어요.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렸답니다.


"아함.. 지키는 것은 참 고단했어."





백숙의 인삼 노트


소중한 것을 얻는다는 것


나는 지난해 여름까지 난초 두 분을 정성스레, 정말 정성을 다해 길렀었다...중략... 아차! 이때야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난초를 뜰에 내놓은 채 온 것이다. 모처럼 보인 찬란한 햇볕이 돌연 원망스러워졌다. 나는 이때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그렇다, 나는 난초에게 너무 집념해 버린 것이다. 며칠 후 난초처럼 말이 없는 친구가 놀러 왔기에 선뜻 그의 품에 분을 안겨주었다. 비로소 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때부터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법정스님의 '무소유' 중에서


내 예술은 하나 변하지가 않았소.
여전히 항아리를 그리고 있는데 이러다간 종생 항아리 귀신이 될 것 같소.
한때는 항아리 속에서 산 적이 있다. 온통 집안 구석구석에 항아리가 안 놓여진 구석이 없었으니 우리 집을 일러 항아리 집이라 부른 사람도 있었던 것 같다. 이젠 다시 사들이지 않아야겠다고 몇 번이고 결심했던 덕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시중에 나가면 자연히 골동품 가게로 발길이 향해졌다. 들르면 으레 한두 개 점을 찍고 나오게 됐으니 흡사 내 항아리 취미는 아편중독에 지지 않았다. 그래서 다락, 광, 시렁 위까지 이 많은 항아리들을 포개어 쌓아 놓게 되었으니 이제 생각해도 내 청춘기는 항아리 열에 바쳤던 것만 같다...중략.... 그러던 항아리들, 부산 피난살이 3년 만에 내 집 뜰에 들어서니 우거진 난초 속이 온통 항아리의 파편 천지였다. 사금파리 무더기에 서서 나는 이상한 충격을 받았다. 무엇인지 통쾌한 그런 심정이었다.
김환기 에세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중에서


현재 한국 미술시장의 원톱이자

추상의 거장 김환기 화백에게 항아리는

거장에게 영감을 주는

가슴 뛰게 하는 연인 중 하나였지만

깨지기 쉽고 무거운 연인을 관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나 봅니다.



김환기 '여인들과 항아리' 앞에 선 방탄소년단 리더 RM. /방탄소년단 공식 트위터



황금, 난초, 항아리, 가족까지..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얻는다는 것은 찬란한 순간입니다.

드라마에서 연인이 사랑을 확인하는 키스처럼요.

갖고 싶은 것의 성취는

짜릿한 희열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큰 이익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열광이 어느 순간 시드륵해지거나

사랑이 오래 지나지 않아 빛바라고 나면

찬란함은 감당으로 바뀌고

족쇄는 고통이 됩니다.

한 때는 나의 목숨을 팔아서라고 가지고 싶었으나

이제는 쟤 때문에 못살게 되는 순간.


소유의 뒷 이야기,

지키는 것의 고단함은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이와

적극적으로 벗어나려는 이가 있을지언정

비켜갈 수 있는 치트키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내가 맹목적으로 얻고 싶어 하는 그것을 가진 후에

직후가 아닌

3년 후에

나는 어떤 기분을 갖게 될까요

그리고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생각해보는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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