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21.
비를 머금은 구름이 밤새 빗방울을 흩뿌려 미세먼지 알림에는 파란색이 떴다. 반팔 반바지만 입으면 조금 쌀쌀하지만 얇은 바람막이 하나면 얼굴에 스치는 청량한 바람을 기분 좋게 느낄 수 있는 봄의 절정이다. 작은 가방에 책을 한 권 넣고 장우산을 챙겨 올림픽공원으로 나간다.
목요일 오후 한 시 공원에는 중장년층과 백발 노인들이 한가로이 걷거나 벤치에 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은 냄새 맡느라 멈춰 서길 반복하는 개에게 무심하게 이끌린다. 드문드문 맑은 공기를 깊게 들이켜며 페달을 굴리는 자전거족도 지나간다. 인구 밀도가 낮아 여러모로 쾌적하다.
조금 걷다가 적당한 곳에 잔디밭 쪽으로 향한 벤치 하나를 골라 앉았다. 대기가 맑아서인지 하늘이 흐려서인지 잔디와 나무는 오늘따라 더 짙게 푸르다. 한참을 그 푸르름을 만끽한 후에 책을 꺼냈다. 물리학자가 대중을 위해 쓴 물리학 에세이 ‘떨림과 울림’. 물리학의 법칙과 이론으로 우주와 세계를 설명한다. 내가 앉아있는 나무 벤치, 다양한 소리로 지저귀는 새들, 쉴 새 없이 바람에 부딪끼는 푸른 잎들, 저 멀리 차양모를 쓰고 박수를 치며 지나가는 아주머니, 그리고 여기 앉아있는 나와 내가 손에 들고 있는 책. 나는 물리학에 대해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런 것들을 조금은 경이로운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둘러본다. 그동안 자연광 아래서 책을 읽을 기회가 많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렇게 좋은 줄 알았다면 진작 했을 걸 하고 무엇엔가에 책망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 대상은 나 자신일 수밖에 없어서 책망하고 책망받는 나는 서운함과 미안함을 동시에 느낀다.
여전히 하늘은 흐리고 빗방울은 뭉치지 못해 산발적으로 몇 방울씩 떨어지다가 말다가 한다. 자리를 옮겨본다.
산책로를 따라 조금 더 안쪽으로 걸으니 넓은 잔디 벌판이 펼쳐진다. 넓은 잔디밭 한가운데에 나무가 한그루 서 있다. 공원에는 나무가 수천수만 그루 심어져 있지만 이 나무는 특별하다. 그래서 이름도 붙어있다. 올림픽공원 9경 중 6경, 나홀로나무. 이 나무는 관상용인 측백나무로 사시사철 푸른빛을 띠고 있어 공원에 방문한 사람들에게 좋은 사진 배경을 제공한다. 어그러진 사각 프레임이 잔디 산책로에 세워져 있어, 프레임 안에 나무가 나오도록 사진을 찍으면 그럴싸한 작품이 된다. 그런 사진들은 인터넷에 올림픽공원 나홀로나무를 검색하면 수두룩하게 쏟아진다. 사진으로 나홀로나무와 몽촌토성 잔디밭의 사계절을 감상할 수 있다.
오늘도 나홀로나무 앞에는 작가들이 나와 있었다. 나는 멀리서 그들을 관찰했다. 장년으로 보이는 네 명의 여성은 모두 각자의 카메라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휴대폰 카메라가 아니고 렌즈가 튀어나온 DSLR 형태의 카메라였다. 네 명의 작가는 잔디에 쭈그려 앉거나 엎드려 가며 진지하게 나홀로나무를 촬영했다. 바람이 세게 불어오고 빗방울이 듣기도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촬영에 몰두했다. 처음에는 자리를 바꿔가며 나무만 나오도록 촬영을 하다가 그들 중 일부는 일행과 나무가 함께 나오도록 찍기도 했다. 5분 혹은 10분 정도였을까. 촬영을 마친 작가들은 다른 피사체를 찾아 떠났다.
최근에 공원을 산책하다가 그럴듯한 카메라를 매고 나뭇가지나 꽃송이 앞에서 이리저리 렌즈를 들이미는 장노년의 사람들을 보는 일이 잦다. 그 사람들이 전업 사진작가인지 아니면 취미로 출사를 나온 사람인지는 모른다. 머리카락이 하얗게 샌 할머니가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렌즈를 조정해 가며 날아가는 새를 향해 셔터를 누르는 모습은 새로웠다. 나이가 많으면 전문적인 카메라 장비를 못 다룰 거라는 건 아니다. 그냥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멋있음이 새로웠다. 새로운 형태의 멋있음이었다. 일바지 위에 대충 걸쳐 입은 등산복 점퍼에, 흰 머리는 바람에 흩날리고, 주변 사람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사진에 몰두해 있는 모습. 세상의 변화는 모든 세대를 통해 드러난다.
자식들이 사 놓고 쓰지 않는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고 해도 좋다. 휴대폰 카메라와 DSLR 카메라는 분명히 다르다. 결과물 뿐 아니라 카메라를 들고 나올 때의 마음가짐과 목적의식부터 다르다. 좋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은 좋은 취미가 될 수 있다.
젊었을 때 기회가 없어 배우지 못했다가 노인이 된 후에 재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있다. 글을 처음 배운 할머니가 쓴 시 앞에서 우리는 숙연해진다. 삐뚤빼뚤한 글씨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시적 감수성 때문이다. 얼마 전 국내에서 성공적으로 전시를 마친 영국의 할머니 화가 로즈 와일리는 40대 중반에 화가에 도전했고 76세에 일간지에서 신인작가로 선정되며 제2의 삶을 살게 됐다고 한다. 먹고 살기 바빠서 미처 계발할 수 없었던 ‘자기’를 은퇴 후에 발견할 수 있다면 여생은 더 이상 남아있기만 한 나날은 아닐 것이다.
나는 우리 엄마도 저런 취미 하나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출사를 나와 몰두하는 저 아주머니들처럼, 엄마도 뭔가에 몰두하고 즐겼으면 하고. 나는 엄마에게 재미있는 소설책을 추천하기도 하고 영화관에 모시고 간 적도 있다. 그런데 영 재미를 못 붙이셨다. 엄마랑 보려고 뮤지컬을 예약했다가 너무 먼데 굳이 거기까지 그걸 보러 가고 싶지는 않다는 이유로 다른 친구랑 간 적도 있다. 오케이. 꼭 문화예술 분야일 필요는 없지. 뭐든, 언제든, 엄마와 맞는 걸 찾을 수 있으면 된다. 이런 내 바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그냥 동네 아주머니들이랑 커피 마시면서 수다 떠는 게 가장 좋다고 했다. 오케이. 엄마에게 취미를 가지라고 강요할 순 없다. 수다와 출사를 비교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기회가 된다면 좋은 카메라를 쓱 내밀어 볼 생각이다. 그것도 영 흥미가 안 생길 수도 있다. 그럼 그것으로 된 거다. 다만, 이렇게 좋은 줄 알았으면 진작 할 걸 하고 스스로 후회하거나 무언가를 책망하는 마음이 들지 않도록, 그런 마음보다 이제라도 알아서 참 다행이다 하고 기쁜 마음이 들도록, 인생을 떨림으로 채울 수 있도록 서로 울렸으면 좋겠다.
바람이 점점 세지자 새들이 기우뚱 날아다닌다. 비는 쏟아지지 않고 후두둑 나뭇잎을 스쳐 머리에 떨어진다. 우산을 펼쳐 들고 천천히 산책로를 걸어 나간다. 바람에 우산이 뒤집어질까 신경 쓰이지만 사실 뒤집어져도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