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dern Life is Rubbish
2021.06.22.
공원 벤치에 앉아 책을 읽다 보면 뭔가가 빠르게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느 순간 다가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지나가는 비둘기나, 사위를 경계하느라 분주한 까치의 움직임은 아니다. 이 짐승은 안전한 곳까지 단호하게 달려간 뒤에는 주위를 둘러보며 거리를 잰다. 그리고는 다시 나무를 타고 높은 가지 틈으로 몸을 숨긴다. 거기서 쉬지 않고 뭔가를 갉아먹는다. 청설모다.
청설모와 다람쥐는 엄연히 다르겠지만 나 같은 일반인은 색깔이나 귀의 모양 정도를 제외하면 그 다름을 엄격히 구분해 내기 어렵다. 둘은 몇 가지 유사성으로 인해 하나의 기억의 카테고리에 담겨있다. 우선 두 동물은 겉모습이 무척 귀엽다. 꼬리를 말아 올리고 귀를 쫑긋 세운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렇게 보이는 건 인간에게 큰 해를 끼치지 않기 때문이다. (마주치면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는 집쥐도 자세히 보면 정말 귀엽다. 하지만 그것들은 이미 징그럽고 혐오스럽다. 제대로 본 적도 없는데. 앎이 마음을, 마음이 감각을 주무른다.) 청설모와 다람쥐는 서식지가 도시의 변두리에 겹쳐 있어서, 항상 볼 수 있는 건 아니고 그렇다고 아예 볼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자주 볼 수 없으니 도시 사람은 둘을 만나면 반갑다. 마주쳤을 때 가던 길을 멈추고 하염없이 쳐다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둘은 같은 카테고리에 담겨있다.
책을 내려놓고 나뭇가지에 자리 잡은 청설모를 지켜본다. 그러고 있으니 이상하게도 전혀 다른 기억의 카테고리에서 이름 하나가 툭 튀어나온다.
땅강아지.
그러고 보니, 땅강아지들이 다 어디로 갔지?
불현듯 땅강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나 기억을 더듬어 보는데 만져지지 않는다. 삼십 년은 족히 됐을 것 같다. 앞발에 갈퀴 같은 게 달려 있고 등에 털이 난 작고 검붉은 땅강아지. 오랜만에 떠오른 이름과 생김새가 정겹다.
80~90년대 놀이터에는 땅강아지들이 있었다. 흙을 파고 놀다 보면 나타났다. 그때 우리는 땅강아지를 집어 흙구덩이에 던져 넣고 발발거리며 기는 꼴을 보며 웃었을 거다. 어지간히 놀다가 놀이터에 던져두고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으리라. 땅강아지를 손바닥에 올려두었던 감촉이 흐릿하게 되살아나는 것을 음미했다. 괜히 간지러워진다.
땅강아지들은 모두 사라져 버린 걸까? 모래가 쌓인 놀이터가 없어서? 시멘트와 유리로 둘러싸인 도시에는 살 곳이 없어서?
그러고 보니, 방아깨비, 메뚜기, 여치도 본 지 오래다. 참새도 예전처럼 많지 않은 것 같다. 발에 챌 정도로 흔했는데(실제로 너무 빨라서 발에 챌 리 만무하지만) 무리의 수도 적고 무리를 이루는 개체수도 확연히 줄어든 느낌이다. 포장마차에서 참새구이를 사 먹던 추억이 있는 세대에게는 그 격차가 더 아득하리라.
그것들은 도시 밖으로 밀려났을 뿐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모른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좋은 신호는 아닐 거다.
이름도 낯선 어떤 생물이 마침내 멸종했다는 뉴스는 마음 아프다. 피부로 와닿지는 않지만, 세상이 한 발짝 나빠진 것만 같다. 흔히 볼 수 있던 생물들이 주변에서 사라져 가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마음 아프다. 이렇게 뭔가가 자꾸 사라져 간다는 게 새삼스러워 주위를 한 번 의미 없이 둘러본다. 그것들은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는데, 내 생각이 거기에 미치고 나서야 걱정스럽다.
환경오염과 자연 파괴를 경고하는 목소리는 언제나 있었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귀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다. 내 생각이 거기에 미쳐야만 들린다. 걱정이 생활로 이어지지 않으면 그것도 순간일 뿐이다. 무관심이 플라스틱섬을 만들고 북극의 얼음을 녹였다. 편리해진 삶을 과거로 되돌릴 사람은 없다. 지구가 머지않아 그 결과를 보여줄 거다. 동물만 사라지는 게 아니다. 아마 우리는 전부 사라질 거다.
깊은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테이블에 둘러앉아 저녁 만찬을 즐기고 있다. 이미 허리까지 찼는데 아직 목까지 찬 건 아니라서 여유를 부린다. 사실 전부 내 잘못인 것은 아니다. 난 그냥 현대인의 삶을 살고 있을 뿐. 제품을 만드는 기업, 자국의 이익만 생각하는 각국 정부, 각성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제다. 종이 빨대를 쓰고, 배달시킬 때 일회용품을 받지 않고,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는 정도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있는 거니까.
사실 알고 있다. 전부 내 잘못이다. 우리는 단 한 명도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Modern life is rubbish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