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21.
장모님과 형님이 살고 계신 진도를 다녀오는 일이 연중행사다. 엄마가 보고 싶어지면 참지 못하는 아내 덕에 많을 때는 1년에 서너 번도 다녀온다. 매번 차를 가지고 갈지 버스를 탈지, 목포까지는 기차를 타고 거기서 차를 빌릴지 고민하다가 결국엔 차를 몰고 가기로 한다. 혼자 하면 먼 길이지만 둘이 번갈아 하면 운전도 할 만하다. 결혼 전에 혼자 대여섯 시간을 꼬박 혼자 운전하던 아내는 이젠 정말 할 만하다고 반색한다. 백지장은 몰라도 운전은 확실히 나눠서 하면 낫다.
남은 거리를 십 킬로미터 단위로 체크하다 마침내 세 자리 아래로 내려가면 다 온 것처럼 힘이 난다. 그래봤자 아직 함평 부근이다. 고속도로 마지막 휴게소인 함평나비 휴게소는 올라오는 길에는 첫 번째 휴게소. 이러나저러나 좀처럼 들르게 되지 않아 아름다운 이름만 뇌리에 남았을 뿐이다. 목포에 들어선 후에야 신호에 정차해 뻐근한 목을 풀어준다. 그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온다. 아파트 외벽에 흐른 페인트 자국을 보며 저기 사는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고 살까 궁금하고, 인적 없는 어느 대학교 앞 인쇄소의 낡은 간판이 괜히 쓸쓸해 보인다. 학기가 시작되면 여기도 술 마시러 가는 소리로 왁자지껄할까. 군데군데 모여 서서 쓸데없이 진지한 대화를 하고 자기들만 아는 농담을 하며 해찰할까. 내가 학교를 다니던 때에서 시간이 한참 흘러서인지, 이 학교가 지방 소도시의 변두리에 있기 때문인지 몰라도, 어쩐지 그런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 아무 데도 도움 되지 않을 편견을 스스로 강화한 후에 엑셀러레이터를 밟는다.
저 멀리 이순신 장군의 실루엣이 얼핏 스치는 진도 대교를 건너면 드디어 진도다. 울돌목의 거센 물살을 차에서는 볼 수 없다. 잠시 차를 세우고 내려서 볼 생각도 없다. 목적지가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처럼 높은 곳에 서서 명량대첩을 상상해 보는 일은 매번 다음으로 연기된다. 진도에 들어선 후에도 한참을 달려야 읍내에 들어선다. 몇 년 전 처음으로 읍내에 들어갔을 때는 이 큰 섬에서 가장 번화한 곳의 규모가 고작 이 정도라니 참 초라하다고 생각했다. 한 블록씩 교차하는 사거리에 작은 일이 층 건물들이 나란하고, 한두 동이 전부인 작은 아파트 단지 몇 개가 전부다. 그런데 하나하나 상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있을 건 다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빵이나 아이스크림 브랜드 체인부터 커피숍, 술집, 당구장, 요가, 필라테스, 편의점, 그리고 꽃집까지. 그중에도 가장 많은 건 식당과 유흥업소다. 먹고 노는 게 제일 중요한 법이니까.
진도는 인구가 3만 명이 채 되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다. 인구 밀도가 상당히 낮다. 읍내에서도 사람 볼 일이 없는데 읍내를 벗어나면 눈에 들어오는 건 자연뿐이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시골에 오히려 자가용이 흔하다. 대부분 차를 타고 돌아다니니 걸어 다니는 사람을 보는 일은 더 드물다. 멋지게 지어 놓은 향토문화회관도, 국립남도국악원도, 진돗개테마파크도, 사람 그림자 하나 없이 휑하다. 사람이 싫어 도시를 떠났다가도 다시 사람이 그리워질 지경이다.
장모님은 읍내에서 식당을 운영하셔서 쉴 틈이 없다. 아내와 나는 장모님이 차려주시는 밥을 얻어먹고 나면, 그만, 할 일이 없어져 버린다. 일손을 돕겠답시고 주변을 서성거려 봤자 일에 방해만 된다는 걸 깨달은 후론, 미련 없이 가게를 나와 버린다. 이번에도 우리는 연휴의 분주함을 모른 체하고 바닷가 카페를 찾아가기로 한다. 어딜 가나 사람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니 카페에는 사람이 제법 들어차 있다. 작은 섬이 앞을 길게 가로막고 있어서 뻥 뚫린 바다가 아닌데도, 해송이 아름답게 뻗어있고 썰물에 게를 잡는 꼬마도 하나 있는, 제법 멋진 풍경이 연출된다. 그 풍경을 감상하며 아내와 나는 책을 읽거나 대화를 나눴다.
이 섬에서 사람들은 점을 찍으며 움직인다. 정해진 몇 군데를 다니면 하루가 끝난다. 그 정해진 몇 군데 외에는 갈 곳이 딱히 없다. 야트막한 산도 많고 길은 끝도 없이 뻗어있지만 하이킹이나 산책하기 좋은 길은 아니다. 이 섬에서 가장 큰 점은 남서쪽 바닷가에 찍힌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높은 언덕에 거대한 리조트가 들어서 있는데, 외지인들은 이 리조트에 묵기 위해 진도에 온다. 금요일 저녁이면 섬에 들어선 차들이 숨도 돌리지 않고 리조트를 향해 줄지어 간다. 어두운 도로에 일렬로 늘어선 노란 불빛들의 행렬은 거대한 궁전 같은 휘황한 불빛 속으로 속절없이 빨려든다. 몇 집 되지 않는 작은 마을과 가로등 하나 없는 도로는 리조트의 강력한 흡인력에 얼마 되지 않는 빛마저 모두 빼앗기고 더욱 깊은 어둠에 잠긴다. 리조트에 놀러 온 사람들이 바닷가 카페도 가고 읍내 식당에도 간다지만 리조트 안에서 소비하는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리조트는 사람도 돈도 풍경도 모두 빨아들여 버린다. 리조트 덕에 사람들이 섬에 발을 들이지만 여전히 사람 보기는 어렵다.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섬 여기저기를 다니다 보니 절로 이런 소리가 나온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산과 들과 바다뿐이구나! 지겹게 똑같이 생겼네!
도시를 떠나고 싶어 발버둥 친 게 엊그제인데 어느새 인적 없는 자연이 지겹다. 이상(李箱)이라도 된 것처럼 진절머리 나게 이 풍경이 싫어진다. 머릿속에 권태의 구절들이 대중없이 흘러나온다.
‘어서- 차라리- 어두워 버리기나 했으면 좋겠는데 벽촌의 여름날은 지리해서 죽겠을 만치 길다.……곡선은 왜 저리도 굴곡이 없이 단조로운고? 서를 보아도 벌판, 남을 보아도 벌판, 북을 보아도 벌판. 아, 이 벌판은 어쩌라고 이렇게 한이 없이 늘어 놓였을꼬? 어쩌자고 저렇게까지 똑같이 초록색 하나로 되어먹었노?……모두가 그게 그것 같이 똑같다.’
시골에 간 모더니스트는 유배자와 마찬가지로 절망한다. 첨단의 서울에 사는 나에게도 이곳은 유배지와 같은 느낌인 걸까. 나는 왜 갑자기 이곳의 풍경이 지겨워졌던가. 어차피 새로 지은 카페와 있을 거 다 있는 읍내에만 머물다 해안가에 잠깐씩 차를 세워 사진 찍고 나면 곧 서울로 돌아갈 텐데.
사람이 없을 뿐만 아니라 특색도 없다. 멋진 건물도 재밌는 시설도 하나 없이 그저 아무 개성 없는 이름 모를 나무들과 회색 포장도로가 전부다. 그런 풍경이 십분, 이십 분을 가도 똑같이 이어진다. 나는 겁이 났다. 이런 곳에 축제를 하고 홍보를 해서 사람을 끌어들인들 뭐가 달라진단 말인가. 사람들은 점점 더 사람이 많은 곳에서 살고 싶어 한다. 우리의 뇌는 더욱 말초적이 되어 가고, 볼 만한 영상을 찾아 손가락을 놀리듯 마음에 드는 장소로 점을 찍으며 이동한다. 그 사이에 개성 없는 풍경이 십분 이상 이어져선 안 된다. 지방 소멸은 자명하고, 지방에 살고 싶다는 나의 바람은 거짓말인 게 들통난다. 모던한 삶에 발목 잡힌 모더니스트들은 떠난다는 거짓말을 뒤로하고 전국의 아름다운 리조트에 짐을 풀었다가 싸기를 반복하고…….
편하고 깨끗하고 산뜻하고 사진이 잘 나오는 곳에서 찍은 사진 속에 사람들이 웃고 있다. 진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웃고 있는 사람들이 사진 속에는 잔뜩이다. 볼 만한 사진을 찾아 손가락을 놀리다 보면 개성 없는 풍경과 개성 없는 사람은 알고리즘에 묻혀 어느샌가 없어진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예쁜 것과 예쁜 것과 예쁜 것뿐. 지겹게 똑같이 예쁘게 생긴 사람들만 잔뜩 남아있다. 조금 겁이 난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산과 들과 바다뿐인 지겨운 풍경이 차라리 낫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