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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삽질 Jul 05. 2018

산 인간을 그린 르네상스, 그 찬란한 시대로

신 중심의 유럽사회에서 단 한 순간, 산 인간을 그린 시대가 있었다. 바로 르네상스 시대다. 그 주인공은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다. 90년대 만화 ‘닌자거북이’의 주인공의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동시대를 산 천재들, 이들이 스쳐 지나간 르네상스는 참 아름답다. 


2015년 1월 <바티칸 뮤지엄>이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바티칸 뮤지엄은 3D로 바티칸 미술관을 생생하게 공개하고 명작의 비밀들을 알려주는 영화라고 한다.물론 직접 가서 보는 것이 제일 좋으나, 시공간적 제약과 금전적 한계가 있는 분들은 3D입체 안경을 끼고 관람하길 권한다. 


바티칸 미술관과 르네상스 예술


바티칸 정경


르네상스 예술 여행을 떠나려면 우선 바티칸으로 눈을 돌려야한다. 교황 중심의 사회에서 인간을 그린 이들의 걸작이 다시 교황의 품으로 모였기 때문이다. 


바티칸 미술관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 있는 시스티나 성당을 포함해 바티칸 안에 있는 모든 볼거리를 칭한다.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당대 유명한 예술가를 불러 바티칸 미술관의 초석을 닦았다.


라오콘 군상


그 출발은 16세기 초 한 농가에서 발견된 <라오콘>상이었다. 라오콘은 트로이를 멸망시키려는 신에 대항했고 신은 바다뱀 두 마리를 내러 라오콘과 그 두 아들을 죽인다. 이 실감나는 공포가 그대로 담긴 세기적 걸작을 전시하면서 바티칸 미술관은 시작된다. 


하지만 바티칸에 들어가기는 매우 어렵다. 연간 500만 명의 관광객이 몰리는 통에 기다리는 줄만 몇 시간이다. 물론 아침 일찍 가거나 웃돈을 주고 암표를 사면 빨리 들어갈 수는 있다. 엄청난 관광객 때문에 미술관 내 모든 통로는 대부분 일방통행이다. 오래된 작품이라 빛이 바래 잘 보이지도 않고 사람에 치여 한 군데 차분히 보기도 어렵다. 하지만 끈기를 가지고 보면 그 진가를 잘 볼 수 있다. 


미켈란젤로 <시스티나 성당천지창조> <피에타>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미켈란젤로를 불러 무녀 4년 동안 시스티나 성당 천정화를 그리게 한다. 높이 20m 길이 41.2m의 엄청난 크기의 성당 천정을 혼자 그린 미켈란젤로. 장인정신이 대단하다. 고개를 뒤로 젖히다가 물감을 뒤집어 쓴 적도 많고 웅크린 자세로 그림을 그리다가 온 몸에 종기가 생기기도 했단다. 이윽고 고통 속에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천장화는 1512년 11월 1일 사람들에게 공개되었다.


천지창조


미켈란젤로의 천정화 중 천지창조가 가장 유명하다. 미켈란젤로는 신의 모습을 따서 인간을 만들었다는 것을 유추해 최초로 신이라는 존재를 그려냈다. 인간의 손으로 신을 처음으로 그려낸 것이다. 신은 손가락으로 아담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아담은 신을 응시하지만 정면으로 그를 바라본다. 추앙하거나 경외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천지창조는 신 중심의 사회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신을 그리고, 살아있는 신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인간을 그린 걸작이다.


피에타 상


미켈란젤로는 사실 회화 보다는 조각으로 훨씬 유명하다. 그 대표작이 바로 <피에타>다. <피에타>라는 작품명은 김기덕 감독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타서 더욱 널리 알려졌다. <피에타>에는 미켈란젤로가 어릴 때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자신을 표현한 그 인간적인 감성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피에타란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이다. 예수를 낳은 성모 마리아는 상식에 맞지 않게 슬픔에 잠긴 젊고 우아한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예수의 성스러운 육신은 매우 길고 안정감 있게 조각되어 있다.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


교황 율리우스 2세는 1508년 시스티나 성당에 이어 라파엘로에게 그의 서재를 장식할 것을 명한다. 라파엘로는 여기서 <아테네 학당>이라는 작품을 그려낸다.


아테네 학당


이 그림에는 서양 최고의 학자들이 모여 있다. 최초의 민주주의 도시 국가였던 아테네(물론 당시도 노예는 인간으로 취급을 안 하는 노예제 사회였지만)의 최고 지성들을 그렸다. 이상주의자인 플라톤은 정중앙에서 이데아에 대해 설명하듯 하늘을 가리키고 있고, 왼편의 피타고라스는 약간 대머리에 쭈그려 앉아 책에 무언가를 열심히 기록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학(Eticha)'이라는 책을 허벅지에 받치고 땅을 가리키며 현실을 논한다. 


상상화지만 라파엘로의 조화와 균형미가 담긴 역작이다. 규모의 웅장함과 소실점에 의한 원근법으로 산만하지 않고 집중된 느낌을 준다. 여기서 라파엘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얼굴을 플라톤으로 그렸으며, 오른쪽에서 검은 모자를 쓰고 정면을 응시하는 자신의 얼굴도 그려 넣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광야의 성 히에로니무스>


광야의 성 히에로니무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유화, 나무, 130×75cm, 1480∼1482년, 바티칸미술관,


바티칸 미술관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미완작 <광야의 성 히에로니무스>(유화, 목판, 75 x 103cm)이 전시되어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성인이 아닌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은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놓았다. 


성 히에로니무스는 히브리 성서를 라틴어로 옮긴 학자로 4대 성인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이 작품은 히에로니무스가 온갖 유혹을 뿌리치려 자신의 몸을 채찍으로 쳤다는 것을 모티브로 돌로 자신의 가슴을 치려는 순간을 형상화했다. 


당시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이처럼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었던 배경은 메디치 가문의 지원 때문이었다. 메디치 가문은 금융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1476년 세계최초은행 설립해 토스카나 공화국 장악했다. 교황과 왕권 중심에서 예술에서, 신흥 자본 세력이 예술가들을 지원하면서 예술을 이해하고 예술의 가치를 인정한 셈이다. 


인간중심의 시대, 그 찬란한 예술의 원천 


인류역사에서 빛나는 예술 유산을 가졌다는 그리스, 그 시공간을 뛰어넘는 가치에는 바로 ‘인간’이 있다. 


인간의 찬란한 문화유적은 발전된 인간 중심의 사회제도 속에서 가능했다. 고대사회 노예제 사회에서 그나마 민주주의를 시행했던 그리스 아테네 문명, 그리고 중세시대 잠시 부활했던 인간중심의 르네상스 시대가 바로 그 증거이다. 아름다운 르네상스 시대 건축과 조각은 신중심의 헤브라이즘이 아닌, 인간중심의 사상이 반영된 헬레니즘 문화다. 


예술은 시대상의 반영이다. 돈이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지금, 현 시기 예술이 과거보다 미적으로 뛰어난지는 의문이다. 예술이 더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모습은 인간 중심의 사회가 아닌 현실의 반영이 아닐까. 


철쇄를 끊고 사슬을 헤치고 마지막 남은 속박을 끊어내기 위한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신 중심의 암흑의 중세는 이미 지나갔다. 하지만 돈 중심의 사회는 지금 이 시대를 흘러가고 있다. 언젠가는 인간 중심의 시대가 오기 마련이다. 그 때 예술은 다시 한 번 찬란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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