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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삽질 Jul 05. 2018

프랑스 혁명의 전조, 오페라 세비아의 이발사

“너의 취향은 계급의 반영이다” 프랑스 사상가 부르디외가 한 말이다. 오페라는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귀족문화다. 오페라와 같은 문화는 철저하게 계급적이었다. 지금은 그래도 보편화 되었지만 여태까지 가진 자들은 오페라와 같은 문화를 향유하며 즐겨왔다.



마나 비엔나의 오래된 오페라 극장 내부는 대단히 화려하다. 들어가는 입구의 화려한 장식과 천장의 샹들리에는 입이 딱 벌어진다. 과거 귀족들의 호사스러운 생활이 그대로 드러난다. 보통 정장을 입은 나이 지긋한 중년과 어깨를 다 드러내 보이는 드레스를 입은 귀부인들. 그들은 한껏 멋을 부리고 여유를 즐기며 공연을 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안은 썩을 대로 썩어있다. 즐기고 소비하는 사람이 썩어있으니 음악을 하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썩어간다. 김희애 유아인 주연의 드라마 ‘밀회’는 이런 음악계의 암투와 비리를 엿볼 수 있다. 서울대 성악과 출신 배우 김혜은은 "(음악계의 비리가) 드라마보다 실제로는 더하다. 내가 성악을 그만두게 된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라고 털어놨다.


프랑스 혁명의 전조


시작부터 너무 부정적이었나. 하지만 왠지 거북한 오페라 중 시대상을 잘 풍자한 작품이 있다. 프랑스 혁명 전에 만들어진 <세비아의 이발사>나 <피가로의 결혼>과 같은 작품이다.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귀족 사회의 썩어빠진 부조리를 통쾌하게 조롱하는 평민 피가로의 활약을 그린 작품이다. 프랑스 혁명의 물결을 차단하기 바빴던 루이 16세는 강한 불쾌감을 표시하며 이 연극들의 상영을 불허했다. 


당시 프랑스 희곡작가 보마르셰는 <피가로의 결혼>을 고치고 또 고쳐 1784년 검열을 통과했다. 노이즈마케팅 덕분인지 연극은 파리에서 대성공을 거둔다. 이 체제를 위협하는 불온(?) 작품은 오스트리아 등 주변국에서도 금지되었다. 하지만 나중에 모차르트에 의해 오페라로 재탄생하여 <피가로의 결혼>이라는 풍자적인 작품이 나왔다.


로시니의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로마에서 1816년 초연되었다. 유명한 <세빌리아의 이발사> 서곡은 로시니가 쓴 서곡 중 대표곡이다. 로시니는 24살에 이 오페라를 13일 만에 작곡했다. 웅장한 금관악기의 경적으로 시작하는 이곡은 경쾌한 오페라 전체의 사전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킨다. 


평민계급의 상징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독신의 영주 알마비바 백작이 세레나데를 부르며 로지나에게 구혼하려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늙고 엉큼한 로지나의 후견인 바를톨로는 재산을 노리고 로지나와 결혼할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 바를톨로는 로지나를 밖으로 못나가게 하며 구속한다. 


"날마다 불러주시는 세레나데, 정말 고마워요. 바를톨로의 너무도 엄한 감시 때문에 저는 발코니에서조차 마음대로 나오지 못한답니다. 부디 감옥과 다름없는 이곳에서 저를 구해주세요. 


그 때 이발사 피가로가 경쾌한 노래를 부르며 등장한다. 피가로는 백작의 하소연을 듣고 도와준다. 피가로는 이발사로서 종횡무진 활약을 하며 백작을 돕는다. 피가로는 로지나 집과 바를톨로의 집을 오가며 백작과 로지나 두 사람을 도와준다.


이 때 피가로는 이발사, 외과의사, 약장수, 정원사 일을 모두 도맡으며 만물박사 역할을 해낸다. 당시만 하더라도 이발사가 간단한 외과시술을 했기 때문이다. 붉은색, 파란색, 하얀색이 돌아가는 이발소 간판은 바로 외과시술에서 유래했다. 붉은색은 동맥, 파란색은 정맥, 하얀색은 붕대를 의미한다.


이 피가로는 새로 성장한 평민 계급의 활기와 신분계급 질서의 변화를 보여준다. 평민 계급이 귀족들이 시키는 일만 하던 수동적인 존재에서, 귀족 사이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며 그들을 골탕 먹이는 존재로 재탄생한 셈이다. 그래서 보통 주인공인 백작은 상대적으로 외소하고 피가로는 풍채가 좋게 묘사된다.


피의 세금


<세빌리아의 이발사> 1막 피날레의 내용은 당시 프랑스의 사회상을 잘 풍자하고 있다. 


줄거리를 살펴보면 1막이 끝날 즘 알마비바 백작은 군대 장교로 변장하고, 로지나의 집을 군대 숙소로 징발했다며 그 집으로 들어갈 계획을 세운다. 바르톨로는 이 집이 징발 대상에서 면제된다는 증서가 있다고 반발하지만 알마비바 백작은 못들은 척하고 들어간다. 그 와중에 진짜 군대가 로지나의 집에 들어와 한바탕 난리 통이 난다는 이야기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시절, 프랑스는 전쟁을 일삼았으며 국고를 바닥냈다. 월급을 못 받은 병사들은 총칼을 앞세워 민가를 약탈했다. 당시 프랑스에서 마을 유지는 군의 징발대상에서 면제됐지만 일반 민가에는 일상다반사로 군대가 들어왔다는 얘기다. 당시 이를 ‘피의 세금’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이런 장면은 2막에서도 잠깐 등장한다. 당시 일상이었던 군대가 민가에 들어오는 어이없는 일을 <세빌리아의 이발사>에서는 코믹하게 그리고 있다.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당시 프랑스 사회에 대한 풍자를 피가로의 넉살 좋은 연기와 백작과 여주인공의 사랑을 방해하는 바를톨로 코믹 연기로 버무려 재미있게 만들어진 작품이다.


비운의 여주인공


예술은 민감해서 사회에 가득 찬 불만스러운 기운을 미리 감지해 반응한다. 관중의 호응을 먹고사는 예술에는 민심이 그대로 드러난다. 서민의 삶이 황폐해질수록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기득권을 누리는 그들에 대한 분노는 커져간다. 


하지만 그들의 대응은 한결같다. 박정희는 3선은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깬 것이 찔려서인지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를 불신을 조장한다며 금지곡으로 선정했다. 그의 딸 박근혜도 별반 다르진 않다. 얼마 전 머리에 꽃을 단 광년이 대통령 전단을 뿌린 팝아트 화가 이하씨가 체포지 않았나.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금지시켰던 루이 16세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영원히 권력을 잡을 것 같던 박정희 역시 총탄으로 비참한 말로를 맞았다. 시대의 흐름을 읽어야 비운의 여주인공 신세를 면할 수 있다는 교훈을 그는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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