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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삽질 Jul 05. 2018

변절과 증오, 전쟁 속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

봄이다. 따뜻한 겨울을 우리나라에서 보낸 겨울 철새들은 이제 다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아직도 못 돌아간 철새들이 우리나라 정치판을 기웃기웃 거린다. 이쪽 편에 갔다가 저쪽 편에 간 새. 시체를 찾아 해매는 까마귀 같은 새. 한 때 황새를 자처했다가 뱁새가 된 새 종류도 가지가지다.


거리에서 객사한 궁정화가, 프란시스코 고야


<1808. 5. 3 의 학살, 1814년, 캔버스에 유화, 266×345㎝,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자신을 버리고 이해관계를 따라 이쪽저쪽 옮겨 다녔던 이들의 말로는 별반 다르지 않다. 예술가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바로 고야다. 그는 스페인의 궁정화가로 살아가다 프랑스가 쳐들어오면 프랑스로, 영국이 쳐들어오면 영국으로 날아다니다 인생말로에 거리에서 객사한다.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 1746~1828)는 가난한 도금공의 아들로 태어나 1789년 궁정화가가 됐다. 스페인 왕과 귀족들은 고야에게 그림을 의뢰했고, 그는 당대 최고의 화가로 출세해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그는 불행했다. 그는 열병을 앓아 귀머거리가 되었으며, 잘나가던 스페인의 궁정화가로 떵떵거리며 살게 되자 프랑스의 침공을 받는다. 그리고 삶의 궤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당시 프랑스 군은 무자비하게 스페인 민중들을 탄압했다. 고문, 학살, 겁탈, 상상을 초월하는 만행은 계속 되자 1808년 5월 2일, 스페인 민중은 나폴레옹 군에게 항거하여 봉기했다. 그러나 이튿날인 5월 3일 밤, 수백 명의 민중이 무차별 총살을 당하고, 반란은 잔혹하게 진압된다. 그 뒤 스페인 민중들은 게릴라 전투를 하며 6년간 스페인 독립전쟁을 시작했다.


순결한 민중을 상징하는 백색의 사내가 순교를 암시하듯 두 손을 들고 두려움에 떠는 표정으로 제국의 군인들을 바라보고 있다. 아래는 선혈이 낭자하고 피가 웅덩이를 이뤘다. 차곡차곡 쌓여진 시신과 오열하는 여인들, 그들은 잔혹했다.


잔혹한 군인들의 뒷모습은 얼굴조차 보이지 않게 처리했으며, 차디찬 총구는 가슴을 직접 겨누고 있다. 폭력과 압제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 작품은 전쟁의 참상을 탁월하게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구원 따위는 오지 않는다


프란시스코 고야는 전쟁의 비극을 판화집 <전쟁의 참화>에 아로 새겼다. 팔과 다리 머리가 잘려나간 처참한 살육장면을 그린 판화에는 ‘구원 따위는 오지 않는다’는 절망적인 문구도 적혀있었다. 전쟁의 이면과 본질을 표현한 작품들, 최초의 반전(反戰)화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고야는 전쟁 중 프랑스군에 잡혀 나폴레옹의 형인 조세프(호세 1세) 앞에 끌려갔다. 그러나 고야는 목숨을 부지하려 침략자인 프랑스 편에 돌아서 호세 1세의 초상을 그렸다. 그는 위엄 있는 초상화에 담긴 충성심을 인정받아 훈장까지 받았다. 매국은 한번이 쉽지 두 번은 어렵지 않았다. 스페인 마드리드를 영국의 웰링턴 장군이 침공하자 그는 웰링턴의 초상화도 그렸다.


그는 기회주의자였다. 일제 강점기 친일파가 친미파로 변신한 것처럼, 고야는 권력과 돈에 충실했다. 그래도 일말의 양심이 있었을까. 고야는 프랑스 군대가 물러나고 스페인 왕정이 다시 들어서자 궁정화가로 일하다가 외딴 ‘귀머거리의 집’에 홀로 들어가 자신을 저주하고 학대하며 기괴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려진 별장 ‘귀머거리의 집’ 벽의 ‘검은 그림’ 시리즈 14편은 그가 죽은 지 40년 후 세상에 알려졌다.


자식을 삼키는 사투르누스, 모래 늪의 개


검은 그림 시리즈 중 대표작 <자식을 삼키는 사투르누스>다. 그리스 신화에서 농경의 신인 사투르누스는 자신의 아들이 자신을 거꾸러뜨리고 새로운 왕이 될 것이라는 신의 계시를 받고 자기 자식을 차례로 잡아먹는다. 그러나 아내의 방해로 신탁의 주인공인 막내아들 제우스를 놓치게 되고 결국 사투르누스는 제우스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왕위를 빼앗긴다.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1819~23년, 회반죽을 바른 캔버스에 유채, 146x83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그림에서 괴물로 그려진 사투르누스는 바로 고야 자신이다. 괴물로 변해버린 자신을 증오하며 자신이 창조한 모든 피조물을 없애버리고 싶은 욕망을 적나라하게 잘 담고 있다. 이 그림은 인간의 욕망과 타락, 광기에 대해 직관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검은 그림 시리즈 중에는 이색적인 개 그림도 있다. 모래에 묻히는 개는 사막에 삼켜져 구제불능의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개 역시 고야 자신이다.


모래 늪의 개, 1819~23년, 회반죽을 바른 캔버스에 유채, 134X80cm,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친일파, 변절자의 나라


고야는 괴로워했다. 과연 우리나라에 있는 속칭 철새들도 괴로워할지는 의문이다. 민주주의가 파괴된 그 자리에 들어가려 난리굿을 치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뜻과 의지를 모아 하나로 싸워야 이길 수 있는데 말이다.


그렇다. 우리 사회는 변절이 추앙받는 사회다. 한 때 독립을 이야기했던 자들이 친일로 변절하고, 민중해방을 외쳤던 자들은 뉴라이트로 변절했다. 이들은 사회요직을 독식하며 떵떵 거리고 살고 있다. 과연 그들에게 일말의 양심이 남아있을까.


자신을 부정하며 스스로를 파괴시킨 영혼은 쉽게 복구되지 않는다. 고야처럼 양심이 있다면 자신을 돌아보며 괴로워하겠지만, 그럴 기회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마주치는 자신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아마도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 간 사투르누스의 모습 직면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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